캄보디아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잠시 싱가포르에서 쉼을 가진 후 다음 사역지인 태국으로 넘어갔다. 사실 태국으로 가기 전에 마음은 캄보디아를 가기 전보다 더 두려웠다. 캄보디아는 처음이 아니었지만 태국은 선교사님의 얼굴조차 모르고 소개받아 가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역을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믿을 수 있는 분의 소개로 그냥 북한선교를 하신다는 것 하나만 듣고 별 고민 없이 다음 도착지로 정한 곳이었다. 그만큼 걱정도 기대도 컸다.
반반의 마음을 안고 태국의 치앙마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도시에 도착해 드디어 선교사님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교사님은 태국 현지 친구 한 명을 데려오셨고 우리 셋은 그렇게 어색하게 선교사님의 사역지에 도착했다. 저녁에 도착해서 이미 다른 친구들은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인사하고 나는 새로운 곳에서 잠을 청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침에 시끄러운 노래 소리에 깼었는데 이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닭 울음소리에(선교사님이 뒤뜰에서 닭을 엄청 많이 키우고 있었다)새벽에 깼다. 선교사님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은 중고등 학생 아이들이었는데 내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학교를 가고 없었고 선교사님과 그 집의 집사(?) 같은 역할을 해주는 친구만 있었다.
선교사님은 오랜 시간 극한 북한사역을 해오셨으며 태국을 넘나들며 그 사역을 계속 하고 계셨다. 갑작스럽고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는 북한 사역 스타일이 익숙하셔서 인지 미리 말씀 주시는 게 없으셨고 어딜 가도 물어보지 않는 이상 말을 해주지 않으셔서 처음에 나 혼자 멀뚱멀뚱‘난 뭐해야 하지.’하며 약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말해줘야 한다는 개념이 잘 잡혀있지 않으셔서 궁금해하지 않는 이상 먼저 얘기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셨고 내가 있는 내내 선교사님은 그러셨다. 그래서 그것도 새로운 경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내가 갔을 때 선교사님 댁에 있던 아이들은 6명 정도였지만 나중엔 16명 정도로 늘어났다. 아이들은 어리면 12살, 많으면 19살까지 있었고 그 아이들은 모두 소수민족 출신이었다. 태국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터라 소수민족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산지마을에서 주로 산다는 것도 몰랐다.
소수민족들은 같은 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이 아닌 태국사람들에게서 은근 무시를 당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너무 마음이 여렸고 소심했다. 그 친구들이 사는 마을은 튼튼한 사륜차로 힘든 길을 5시간 내지 7시간 정도는 가야 나오는 고산지대였다. 산지 마을은 대부분 멀리 떨어져있었고 농사를 하며 먹고 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은 초등학교까지밖에 대부분 학교를 못 갔고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을에서 계속 살면서 15살이나 이런 어린 나이에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산다고 했다. 목사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공부의 기회를 주고 더 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제자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데려왔다.
그런 기회를 준다고 하면 너도나도 줄을 서지 않을까 하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삶이 너무 평온하기 때문에 뭔가 더 힘든걸 굳이 도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자기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은 그나마 생각이 튼 부모님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다른 아이들을 데려온 적도 있었지만 학교를 가고 1주 후 적응하지 못해 다시 다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내가 있을 때에도 나중에 온 아이들 중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부모님이 보고 싶어 매일 밤 집으로 가겠다고 운 아이들도 있었고, 그럴 때는 좀 공격적이 되어 다루기 어려운 아이들도 있어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대부분 대학교 이상의 친구들이었고 선교사님과 훈련한지 오래되어 신앙도 잡혀있고 영어도 어느 정도 해서 커뮤니케이션을 그나마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언어적인 부분이 꽤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태국에 오니 더 막막했다.
태국어는 캄보디아보다 더 어려웠고 아이들은 어리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기에 커뮤니케이션이 더 힘들었다. 또 다시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야 하는 부분이 처음엔 좀 지쳤지만 아이들과 지내면서 또 그렇게 하나씩 배워갔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마음을 열었나 싶으면 또 닫아버리는 아이들, 그리고 또 사춘기 나이의 아이들을 상대하려니 너무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또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나에겐 정말 사랑이 없구나’ 였다. 정말 내 안에 사랑은 없고 성령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품어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진정으로 상처 많은 사람을 품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또 아이들과 태국에서의 삶에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