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신뢰의 토양 위에 쓰여지는 정답

어릴 때 아버지는 나에게 “수진아! 좋은데 갈래?” 하시며 종종 마을 뒷산으로 데려가곤 하셨다.

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었지만 어릴 적 내 기준엔 얼핏 봐도 산새가 깊어 보여 혼자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좋은 곳에 데려간다는 아버지의 말에 기대 반, 걱정 반, 항상 뭔가 미심쩍고 불편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나서곤 했다.

그렇게 따라나선 발걸음의 처음은 항상 무거웠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가는 길도 험할뿐더러 날씨도 무덥고 또 울창하게 우거진 풀숲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나무들 사이사이를 헤매는 일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아빠~ 얼마나 더 가야 돼?”
“다 왔어! 조금만 가면 돼!”
“아니, 어디까지 가는 거야?”
“가면 알게 돼. 그냥 따라 오기만 해!”

아버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하게 반복됐다. 그래서 소요되는 시간도, 가는 목적지도 전혀 모른 상태에서 “가면 알아, 따라오기만 해”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도무지 믿기 어려웠고 그 여정은 몸도 마음도 늘 힘들었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건, 그렇게 아버지의 뒤를 따라 마지막까지 가노라면 늘 기대이상의 선물을 만나곤 했다.

어떨 땐 입술이 부르트도록 먹었던 ‘무화과 열매’ 밭을 만나기도 하고, 또 때론 새콤달콤하고 붉은 산딸기가 가득한 밭이 눈앞에 펼쳐지는가 하면, 또 어떨 땐 지금은 흔한 과일이지만 어릴 적에는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양다래라 불렸던 지금의 ‘키위’ 밭을 만나곤 했었다.

어렵사리 만난 뜻밖의 과일 밭이 신기하고 놀랍고 기쁜 나머지 정신없이 이 나무 저 나무 뛰어 다니며 마음껏 과일을 따 먹으며 행복해 했던 어릴 적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이 있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고, 하나님께 우리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린 이후에 시작된 거룩한 여정 곧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가야 할 마지막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고 만만치 않아 이 여정의 첫 발걸음을 떼게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결코 그 발걸음의 시작을 마칠 수 없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 삶, 그것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 2년 전, 인생과 목회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늘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은 가장 명확하고 확실한 방법인‘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려운 선택의 문제 앞에서 답을 찾게 하셨고, 또한 그 정답은 항상‘하나님과의 신뢰’라고 하는 토대 위에서만 정답이 되게 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의 말씀은 가족들도, 가까운 지인들도, 친구들도“왜 거기까지 가려고 해? 여기서도 할 일이 많은데…”라고 만류했던 이곳 파머스톤 노스라는 도시에서의 첫 목회의 여정을 용기있게 시작하게 하셨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을 선택할 것인가? 불안정하고 외롭고 불편한 길을 선택할 것인가?의 선택의 순간에 말씀하셨던 그리스도인의 좁은 길, 곧 ‘부르심과 사명’은 ‘개척’이라고 하는 어려운 길,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그 길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게 하셨다.

실제로 이곳에 와서 목회를 해보니 이 부르심의 길은 분명 좁고, 협소한 길이 맞는 것 같다. 또한 계속해서 이 길을 가려면 그냥 길 가는 대로, 시간 가는 대로 흘러 갈 수 없기에 매 순간순간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고 변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도 있어야 했고, 또 이 길은 가도가도 편치가 않고 불편하다.

가다 보면 평지만 있지 않고 굽이굽이마다 꼬부랑길이 있고, 가파른 언덕도 많고, 가는 길 자체가 고생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길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환영해 주는 길도 아니다. 그래서 외롭다. 사람들은 웬만해선 피하고 싶어하고, 웬만하면 그 길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길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길에 들어선 이상 지금보다 더 헌신해야 하고, 지금보다 더 희생도 해야 하고, 포기 할 것도 더 많아지고, 또 그 길 가려다 보니 지불해야 할 비용도, 대가도 더 많다. 이 길 제대로 가려고 하니까 걸리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닌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길이 영생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진정 복된 길이라 하신다. 그리고 실제로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내려온 이 곳에서의 목회와 사역을 뒤돌아보니 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좁은 길이 복된 길인지? 왜 협소한 길이 더 값진지 깨달아 가고 있다.

아니 상황과 현실은 녹록하지 않고 어렵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영적으로는 훨씬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적 평안함 속에 살고 있음을 확신한다.

무엇보다 이 좁은 길, 협소한 길 위에 펼쳐지고 있는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경험하고 또한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꿈꾸고, 기대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을 말하고,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나의 모든 것, 즉 나의 생각과, 내 뜻과 소망과, 의지와 감정까지도 기꺼이 하나님께 내어 맡길 뿐 아니라 그분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말씀하심에 온전히 신뢰함으로 삶의 주도권을 맡겨 드리고 그분을 따라 나설 때에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획하신 위대한 일들의 성취와 완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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