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바람 잘 날 없는 런던

브렉시트, 몇 건의 흉기테러사건, 독극물 테러사건, 화재 사건들. 또 최근엔 러시아 스파이 사건까지.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났지만 내 기억 속 가장 기억되는 사건들이다. 오기 전부터 브렉시트로 긴장했건만 여러 차례 일어났던 테러사건 때문에 집에 가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미국의 뉴욕보다도, 한국의 서울보다도 작은 땅을 가진 도시이지만 전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도시로 손 꼽히는 이 곳 영국의 런던. 현재도 바람 잘 날(?) 없는 런던이지만 런던에 와서 공부해 본 역사 속 런던도 바람 잘 날은 없었던 듯 하다. 런던을 공부하며 또 런던에서 살면서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해보자 한다.

런던 대 화재 ‘The Great Fire’
어찌 보면 가장 오래 되었고 가장 참담했지만 내가 런던의 역사를 배우는 동안 가장 흥미로웠던 사건이었다,

1666년 9월, 중세시대의 일이었다. 런던이라는 도시의 4/5를 집어삼킨 큰 화재였는데, 시작은 작은 빵집이었다. 한 자그마한 빵집에서 시작된 불이 바람에 점점 거대해지며 자그마치 5일 동안 꺼지지 않아서 무려 13,200채가 넘는 집들이 타버렸고, 87개의 교회가 불에 타 없어졌으며, 당시에 런던의 8만명의 사람들 중에 7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이 화재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도 큰 피해를 입었다. 원래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은 사실은 현재 우리가 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둥근 돔이 포인트이고 매력이 되어버렸지만, 초기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형을 보니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뾰족한 지붕이었다.

현재의 모습이 오랫동안 보존되어 있은 줄만 알았던 나에게는 조금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어쩐지 보존이 너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흥미로웠던 사실인데 5일 동안 런던을 삼켜버린 이 불길 속에서 사망자는 단 6명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상 기록일 뿐인 사망자 수라, 아마도 불이 너무 뜨거워 시체가 녹아버렸을 수도 있다고. 시체의 신원이 파악되지 못해서 사망자 기록 수가 단지 6명뿐일 수도 있단다.
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산층의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왜 불이 잡히지 않았을까? 라고 질문한다면 정말 황당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도 런던에 소방 시스템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 모든 시스템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민간인들이 내는 자금으로 본인들이 운영하는 제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불이 난 빵집은 돈을 낸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출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종종 말하기를 영국의 ‘흑 역사’라고. 그 이후로부터 소방 체계가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런던 박물관에 가면 이 때를 그림으로 남겨놓은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보기만 해도 암담하기만 하다. 가장 중요하고 큰 사건임을 기념하기 위해 ‘Monument’라는 거대한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런던의 ‘Great Smog’
이 단어를 아시는가? 아마 요즘에는 흔히들 사용하는 단어일 수도 있다. ‘Smog’는 ‘smoke’와 ‘fog’의 합성어인데, 런던에서 발생한 대기 오염에 의한 최악의 공해 사건이라고 한다.

1952년 12월 런던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일주일이나 넘게 발생을 했고, 이 때에도 거의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런던’이라 하면 다들 어두운 구름과 우중충한 날씨를 떠오르게 된다. 처음에 내가 런던에 올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걸리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 적도 많으니 말이다.

특히나 런던은 겨울에도 워낙 안개가 자주 끼기 때문에 행여 이상한 징후가 보인다 해도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에도 그랬을 것이다. 안개가 자주 끼는 기후 특성과 그 때는 훨씬 많았던 공장들의 매연이 섞여 스모그가 많이 발생했는데 사람들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시에 대중교통을 버스로 전환하는 작업이 한창이어서 대기가 점점 나빠져 갔고, 날이 너무 추워 난방을 강하게 틀자 집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12월 초의 어느 날, 엄청난 스모그가 런던을 덮치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였느냐 하면, 바깥뿐만이 아니라 실내로도 들어오게 되어 영화관, 극장들에 영사기나 무대를 가리게 되어 상영 중간에 중단해야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스모그가 어떻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한번 검색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사진을 보니 오후 2시에 찍었다던 사진이 밤 10시에 찍은 사진처럼 새까맣게 보였다, 스모그가 너무 심해 가시거리가 짧아져서 바로 눈 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아무래도 오염이다 보니 사람들의 호흡기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실내로도 들어오게 되다 보니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까 얘기했듯이 가시거리가 너무 짧아 구급차가 다닐 수조차 없었고, 그래서 호흡기 질환-폐렴 또는 심장 질환 – 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엄청났다고. 이 사고가 파장이 너무 커 세계적으로 스모그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영국 의회에서는 ‘청정대기법’ 이라는 법까지 만들게 되었다.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 화재사건
가장 충격이었던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 화재사건. 런던의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나에게는 더더욱 피부로 와 닿지 않았나 싶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해리포터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이 있는 곳이며, 프랑스로 넘어가는 유로스타, 영국 각지로 다니는 수많은 기차들 덕에 런던에서 가장 큰 역으로 손 꼽히는 곳이라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지만 그 이후로 청소를 한번도 안 했다고 하듯이 100년 역사를 그대로 가지고 아직도 운행 중이다. 화재사건이 발생한 건 비교적 최근인 1987년 11월. 하지만 신기했던 것은 이 당시에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런던은 역 내에서, 지하철 내에서 술과 담배가 금지되어 있다. (담배는 못 보았지만 술은 그래도 몰래 가지고 타는 사람을 본 적은 있다.)

그런데 화재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조사해 보니 에스컬레이터 시작점에서 누군가가 버린 성냥과 담배가 발견된 것이다. 말인 즉 슨, 흡연자들이 버린 담배와 성냥이 원인이 되어 런던 교통의 중심이 되는 큰 역을 불구덩이로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더욱 위험했던 것은 처음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불꽃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화염은 에스컬레이터 밑으로 빠진 담배꽁초 덕에 모두 그 밑에 깔려있어서 후에 갑자기 불길이 커지며 터널과 매표소 등을 순식간에 덮쳤다고 한다.

런던 지하철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잘 아는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너무 무서웠다. 솔직히 얘기하면 런던 지하철 승강장은 굉장히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다.

가장 최근, 작년에 일어났던 런던의 몇몇 테러사건 이후에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이용하기가 무서웠던 이유 중에 하나도 그랬다.

워낙 역이 좁고 미로 같고, 지구의 핵과 맞닿아 있는 듯이 지하로 내려가기 때문에 혹시나 사고가 나면 도망갈 출구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항상 역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여름에 좀 더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이라면 무의식적으로 겁부터 먹게 되는 것 같다.

자꾸 무서운 얘기만 하다 보니 런던이 정말 사건사고 많은 무서운 도시 같아 보이지만, 세상에 조용한 곳은 없다. 여기가 위험한 것 같아서 다른 곳에 가려고 생각해 보아도, 다른 곳이 더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아, 뉴질랜드는 정말 안전한 것 같다). 안전한 곳도 있겠지만, 나는 도시 속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보니 안전하면 너무 조용하고, 조용하면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여유로움은 좋지만 조용함은 참을 수 없달까?

런던을 공부하며 나는 많은 것을 또 배웠고 내가 살아가고 내가 사랑하는 곳에 대해 더욱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런던의 사건사고에 대해 다루어 보았는데, 이런 글을 내가 쓰게 될 줄도 몰랐다. 앞으로도 더 많은 런던 이야기들을 전하고, 유럽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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