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서비스에 종사하다 보니 버스 안에서 종종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만나고는 하는데요, 오늘은 버스 안에서 일어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희(喜), 기쁨
시내버스를 운행하다 보면 가끔 만나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항상 정장을 입으시고 멋진 넥타이를 하고 계시며 할머니는 늘 밝은 빛깔의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다니십니다.
버스에 오를 때면 할아버지는 항상 할머니를 뒤에서 보호하시며 함께 오르시고, 내리실 때도 할아버지가 먼저 내리셔서 할머니를 안전하게 하차시키시고서는 두 분이 다정히 손을 잡고 갈 길을 가신답니다.
게다가 매번 기사에게 따뜻한 칭찬 한 마디와 미니 초콜릿 하나를 팁으로 주시는 일도 잊지 않으시지요. 이 러블리 커플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아내와 함께 저렇게 손잡고 걸으며 예쁜 사랑을 해야겠구나 다짐을 하게 됩니다.
노(怒), 화가 난다
저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안하무인의 무례함을 목격했을 때 주로 화가 나는 편입니다. 버스 안에서 음식을 먹는다던가, 먹고 나서 남는 쓰레기를 버스에 방치하고 내리는 경우, 큰 소리로 떠들거나 전화 통화를 쉼 없이 하는 경우, 심지어 손톱을 깎는 경우 등등 상상을 초월한 무례함들이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주의할 수 있는데 그 자그마한 배려가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지요.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은 경우가 있었는데요.
버스기사가 되고 나서 첫 연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종점에서 출발해 서너 정류장쯤 지났을 때 나이가 지긋한 초로의 남자와 30세가 넘어 보이지 않는 세 청년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 중에 한 청년이 F워드를 남발하며 기사인 제게 말했습니다.
“F!!! 내가 잔돈이 없어서 F 슈퍼마켓에 갔었는데 F 거기도 잔돈이 없다네. 나 F 100불짜리 지폐밖에 없는데 F 바꿔줄 수 있어?”
술 냄새가 확 퍼지는 게 불길했습니다. 제가 가진 잔돈이 충분해 보이지 않아 잔돈이 없다 했더니 역시 F워드와 함께 그럼 그냥 태워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더군요.
일단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치 작전이 성공했다는 듯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장애인석에 넷이서 앉아 큰 소리로 저렴하기 이를 데 없는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손님들이 계속 올랐고 초저녁이었던 탓에 어린 손님들도 여럿 있었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얘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얘기에 열을 올리는 동안, 저도 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그날따라 현금손님이 좀 탔던 탓에 이내 잔돈이 충분해졌기에 제가 그 청년을 불렀습니다.
“이제 잔돈이 충분하니 100불짜리로 요금을 내시겠소? 이제 잔돈을 줄 수 있어요.”
그랬더니 한참 신나게 잡담을 나누던 일행에게 이 청년이 외쳤습니다.
“F 튀어!!!”
애(哀), 슬픔
딱히 정해진 정년이 없다 보니 함께 일하는 기사들의 평균연령은 꽤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분명 지난 term까지 같이 일하며 인사하고 얘기하고 하던 사람의 부고가 어느 날 회사 게시판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난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에 큰 지진이 일어난 날, 시내버스 기사 Andrew는 시내 한 가운데를 지나다가 지진을 만났습니다. 그는 놀란 승객들을 안전하게 먼저 대피시켰지만 자신은 피하지 못한 채 버스 안에서 희생되었습니다.
이 일은 다른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헌신적인 희생에 경의를 표하게 하여 매년 지진이 일어난 날마다 그를 기념하게 하고 있습니다.
락(樂), 즐거움
버스를 몰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사람들의 편의를 돕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지요. 저는 이민자라면, 사회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자기가 속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원들이 사회로부터 받기만 하고 기여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그 생각의 연장에 놓고 일하는 편인데요, 사실 내가 생계만을 위해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듭니다.‘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요것밖에 안 줘?’이런 생각이 계속 드니까요.
내가 속한 지역사회를 위해 내 재능을 사용하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성의 표시도 받았으니 이제 그에 걸맞도록 더욱 열심히 섬기게(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이야 인터넷이 발달하여 스마트 폰으로 어디든 척척 찾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정보들도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기사들이 알고 있는 생생한 정보만 못하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더러 기사들에게 확실한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공항이나 시내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사역자로서의 직업병 같은 것일까요? 어디가 길인지 몰라 헤매는 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밝혀주는 것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이 됩니다.
십여 미터 길이의 버스를 하루 10시간 안팎으로 몰며 뭐 별다른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 안에도 희로애락이 존재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만약 우리 인생이 늘 기쁜 일만, 좋은 일만, 즐거운 일만 일어난다면 얼마나 위험해질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즐거움도 하나만 계속 지속된다면 무척 위험해집니다. 희로애락은 우리 삶 가운데 늘 언제나 함께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굴곡과 기복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더 다져지고 튼튼해져서 언젠가는 든든한 반석이 되는 것이겠지요.
어느 산 속에 한 흙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이 흙덩어리는 산 속에 묻혀 때론 젖기도 하고 때론 마르기도 하며 오랜 세월을 지나 바위가 되었습니다. 이 바위는 지진을 만나 산 속에서 굴러 나와 물이 흐르는 강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위는 이 강물에 젖고 밀리고, 때로는 태양빛에 마르며 갈라지고 쪼개져 작은 돌이 되었습니다.
이 돌이 큰 강물에 휩쓸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깨지고 깎여 어느 날 조약돌이 되었습니다. 조약돌은 어느덧 물길에서 벗어나 강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겉은 매끄럽고 윤기도 흘렀지만 그가 차지한 자리는 물기라고는 전혀 만날 수 없는 아주 마른 땅이었습니다.
지척에 강물이 보이지만 혼자서 그곳으로 갈 수도 없고 그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버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 조약돌은 점점 단단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에 있던 돌 몇 개와 함께 강가에 내려온 한 소년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조약돌은 그 소년의 주머니에서 선택을 받아 어디론가 재빠르게 던져졌습니다. 이내 단단한 조약돌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한 거인의 이마에 명중해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희로애락은 서로 완전히 다른 감정이지만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우리 삶은 진행되어 갑니다. 기쁨이 있다가 화가 났다가 슬픔이 왔다가도 다시 즐거움이 찾아오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삶은 더욱 단단해져 갑니다.
그래서 희로애락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를 더욱 큰 사람 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단 받고 연단 받아 마침내 주인의 부르심에 쓰임 받게 되는 그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담아 운전대를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