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교회에서 길 위로 사역지를 옮기다

2013년 11월쯤부터 기도하며 졸랐던 것 같습니다.

전도사로 16년을 사역을 했는데 이제 좀 쉬고 싶다고요. 별다른 공급의 기회없이 뉴질랜드에서만 11년을 사역했는데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고, 이민 사회에 살면서도 마땅히 이 사회를 이해할 기회가 없었노라고, 또한 처음 하나님께 약속으로 드렸던 콘텐츠 양성 사역에 대한 마음이 많이 흐려졌노라고, 이제는 머리를 식힐 때도 되었다고 졸랐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교회와 담임목사님께서 양해해 주셔서 2014년 회기가 끝나는 6월말을 기준으로 장기간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막상 휴직을 결정했지만 정작 마땅히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장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은 아이들 보기에도 좋은 것은 아니이어서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휴직에 앞서 파트타임으로 전환하면서 Work and Income(이하‘워캔인컴’)에 실업수당 신청을 해 놓은 상태였는데 워캔인컴은 저에게 규칙적인 풀타임 직업을 가질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워캔인컴에 택시기사를 하려면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택시드라이버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버스기사를 준비하면 택시기사도 가능하다는 솔깃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두 말 할 이유가 없었기에, 저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망설임 없이 버스기사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버스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Class 2 면허와 Passenger Endorsement라는 승객면허가 필요한데, 이 과정을 개인적으로 준비하면 약 1500~2000불 정도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저는 실업수당을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것을 지불할 금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이거 교육과정에 얼마나 돈이 드나요?”
“걱정 마세요. 정부에서 이거 다 지불합니다. 몸만 오시면 되요. 아! 도시락은 알아서 싸 오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실업수당수령자가 정부에서 위탁하는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워캔인컴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그 비용뿐만 아니라 교육기간 동안 열심히 배우라며 교통비까지 지원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뉴질랜드에서 11년을 살았지만,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닌데다 운전 관련된 용어들은 워낙 생소한 것들이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매일매일 자리를 지키며 강사의 인도를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종이에 쓰라면 쓰고, 양식을 완성하라면 완성했으며 사인을 하라면 사인을 했습니다. 제가 이유를 달고 토를 달 필요가 없었던 것은 제가 전혀 모르는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형면허와 승객면허를 취득하여 버스기사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냥 교실에 앉아 있다가 운전 몇 번 했을 뿐인데요.

혹 이 글을 읽으시며 버스기사가 되기 원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뉴질랜드에서 버스기사가 되려면 Class 2 면허와 P Endorsement 승객면허가 있어야 되며 한국의 대형면허를 전환하셔도 됩니다. 관광버스(Coach) 운전은 Class 4가 있어야 됩니다.

그 다음은 취업의 문제였습니다. 여전히 버스와 관련된 용어들은 익숙지 않은데, 영어가 서툰 나를 써 줄 회사가 있겠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교육기간 중 함께 배우던 사람 중에 한 젊은이가 유독 제게 아는 척을 했었는데 알고 봤더니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해 본 적 있는 친구였습니다. 교육을 마쳐갈 때 즈음 이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임스, 나 레드버스에 이력서를 낼 건데 너 같이 안 갈래? 나 혼자 가기가 좀 그래.”

뭐 딱히 제가 거부할 이유도 없고 해서 같이 가서 이력서를 냈습니다. 설마 나를 쓸 생각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내가 언제 뉴질랜드 회사에 이력서를 내 보겠는가 싶어 함께 갔습니다. 인터뷰를 따로 진행했는데 매니저의 말이

“그럼 제임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하자.”
하며 손을 내미는 게 아니겠습니까?

에잉? 나를? 왜? 정말 내가 필요한 거야? 견습기간 지나고 나면 해고하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이 또한 좋은 기회라 여겨 악수를 하고 나왔습니다. 함께 갔던 그 친구는 레드버스랑 자기는 안 맞는 거 같다며 포기했다더군요.

정말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실 저는 풀타임 사역중에 영어 때문에 고심이 컸습니다.

생존영어는 충분히 하는 거 같은데 잘 늘지 않고 또 국적불명의 콩글리시 남발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사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 전통,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그런 이유로 저는‘키위문화를 이해할 기회를 주십시오.’하고 기도해왔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가 막힌 방법으로 제 기도에 응답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역사와 전통(?)의 레드버스(Red Bus)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운전 좋아하는 저에게 딱 맞는 자리입니다. 사실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편인데다 운전은 오래해도 별로 지루해하지 않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자리이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저에게 ‘키위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라는 기도제목에 정확하게 응답하시며 안정적인 자비량 사역의 배경을 열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어떤 이는 이제 업종을 전환(?)했으니 뭐라고 불러야 되느냐 뭐 이런 질문을 좀 하셨습니다. 업종변경(?)은 당연히 아니구요, 사역자로서의 사명을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계속 똑같이 불러주십사 대답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뼈역자(뼛속까지 사역자)입니다.

저는 여전히‘백승진 전도사’이구요. 공식적으로는 ‘백전도사’라고 많이들 부르십니다. 그리고 또 가까워지면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오지랖도 넓다고 ‘백도사’라고들 부르시더군요. 그러니 그냥 앞으로도 쭉 ‘백도사’로 불러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제가 있는 크라이스트처치는 한국이나 오클랜드처럼 복잡한 도로상황도 아닌데다 노동시간, 법규준수에 엄격한 뉴질랜드인지라 근무환경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키위사회에 깊이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고무적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절묘했습니다. 제가 감히 고백드리는 것은 이 일이 전적으로 제 결정이 아닌, 그분의 인도하심이라는 점입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접하게 해주셨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저는 이 지면을 통해 약간은 생소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크라이스트처치 길거리 얘기를 전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길에서도 내가 가는 곳에 하나님도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귀한 깨달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들을 앞으로 함께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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