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필자는 선교전략의 일환으로 선교적 목표를 미전도 종족 선교로 전환 할 것을 논의한 바 있다. 그 만큼 선교의 우선적 과제 가운데 미전도 선교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논의한 것이다.
1990년 이후 불기 시작한 미전도 종족 선교운동과 더불어 나온 전략용어 중 하나가 바로 10/40창이라는 용어이다. 1990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 용어는 루이스 부시에 의해 사용되었고 선교단체들이 규정하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북위 10도~40도 사이에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이 창 지역은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가장 영적으로 어두운 세계의 3대 종교가 바로 이 지역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 부시는 그리하여 10/40창은 바로 음부의 권세를 잡은 사단이 장악하고 있는 영적인 요새와 같은 곳이라고 표현하였다.
왜냐하면 전세계의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고 두번째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지역의 나라들이 밀집해 있는 나라이고 세번째는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지역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필자는 왜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여전히 세계선교사 파송 현황이 보여주는 것은 오직 적은 % 만이 가장 선교적으로 필요한 미전도 종족 가운데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기관의 통계를 보면 세계종교현황 분포를 보여주고 있는데, 범 기독교는 23억 5400만명으로 전세계 33%, 이슬람 16억 3500만으로 22%, 힌두교가 9억 8200만으로 13%, 불교가 5억 900만명으로 7.1% 기타종교가 16억 4800만명으로 23.2% 나 차지하고 있다(IBMR).
특별히 가장 강력한 세계종교인 이슬람은 중앙 아메리카 0.01% 남아메리카 0.08% 북아메리카 0.38% 아프리카 26.9% 아시아 47.04% 중동이 19.08 % 중앙아시아 4.71%를 보여 줌으로서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가 가장 강력한 이슬람의 교두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종족 별 종교현황을 보면, 이슬람교에 4100개의 종족, 힌두교가 2700종족, 불교가 1000종족, 부족종교에 2000종족, 기타가 600종족으로 미전도 종족 가운데의 가장 많은 종족들이 이슬람, 힌두, 불교순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선교적 시사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우리가 가야할 가장 강력한 종교인 이슬람이 바로 우리 아시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단일국가중 가장 큰 국가는 인도네시아 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인도, 파키스탄, 아프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슬람을 믿는 무슬렘권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여전히 아시아를 눈 여겨 지켜 보고 선교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이유이다.
최근 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어쩌면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부르시는 성령의 바람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 북미에서 자라난 한국의 젊은 2세들이 선교에 가세 한다면 커다란 선교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가장 큰 종교인 힌두교의 본산 역시 인도와 네팔, 스리랑카, 티베트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권이라는 점이다.
힌두교에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불교이기에, 전통적인 불교문화권을 가졌던 한국의 젊은이들이 힌두권에서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배우는 일은 다른 서양선교사들 보다는 훨씬 빠르고 쉽게 배우고 적응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네팔과 같은 곳은 우리의 주요한 경제교역국으로도 자리를 잡고 있음은 바로 선교적 기회로도 연결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불교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참으로 필요한 때이다.
중국으로부터, 동남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불교는 아시아의 큰 종교이다. 그만큼 이슬람과 힌두, 불교의 모든 종교들이 아시아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영적인 선교적 사명과 의무가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한국에 영적인 부흥을 반세기 동안 허락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이 한국을 이 거대한 종교적 집단 가운데 놀라운 영적인 부흥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또 한가지 하나의 장점은 현지 어를 배우기 전에 쉽게 영어로 사역을 접근할 수 있는 접근성이 무엇보다 크다는 사실도 큰 전략적 이유가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환상 가운데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도우라”(사도행전16: 9)는 비전을 본 것처럼,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주의 뚜렷한 음성과 비전을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인을 이 거대한 세계 종교권 가운데 선교사로 보내시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곳을 향하여 나아 갈 것인가?
어쩌면 당신이 오늘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