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주도 하에 52일 만에 황폐하게 무너져 있던 성벽을 다시 세웠다.
그런데 우리의 예측과는 달리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여호와의 율법 책을 가져다가 읽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느헤미야나 에스라가 백성들의 정신교육을 위해서 일부러 모은 것이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백성들이 먼저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청한 것이다.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갈급한 심령으로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지금까지 그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옷도 벗지 못하고 성벽 밑에서 쭈그리고 새우잠을 자면서 성벽을 쌓았다. 그러니 예루살렘 성이 완공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반면에 그들의 심신은 얼마나 지쳤을까? 그러므로 이제 만족스럽게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만 세워지면 기쁠 것 같았고 만족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영혼은 곤고했다. 성벽 재건을 최상의 목표로 생각하고 모두가 힘을 합해 전심전력해서 마침내 성벽이 완공되었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외적 성벽의 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즉 내면의 성벽이 회복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사 에스라를 청하여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모세 오경을 경청했다.
에스라는 임시로 만든 높은 나무 단 위에 서서 율법을 낭독했다. 그들은 에스라가 율법 두루마리를 펼 때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낭독되는 동안 선 채로 말씀을 경청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마다 백성들도 아멘으로 화답했고 모두 엎드려 경배했다.
레위인들은 히브리어로 낭독되는 말씀을 아람어로 통역해주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소수의 종교 엘리트들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어를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레위 인들이 그들에게 아람어로 통역해 주어야만 했다.
백성들이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지난 고난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겪었던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망각한 채 욕심에 이끌려 살아왔던 삶에 대한 회한의 눈물로 바뀌었다.
과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욕심을 좇아 살고 싶은데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죄의 열매를 먹고 마침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성벽을 재건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결단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지 알고 싶어 말씀도 경청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을 때 지난 인생이 너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교회사를 보면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말씀이 선포되었다. 병든 심령이 회복될 때 가장 먼저 눈에 눈물이 고이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애통하는 심령으로 울었는데 영혼에 기쁨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눈물은 반드시 기쁨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앙인의 기쁨은 슬픔이 없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을 거쳐서 얻는 기쁨이다. 죄의 길에서 방황하며 세상 것에 집착하며 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의 황홀한 기쁨이다.
백성들은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있지 않았다. 비록 하나님 앞에 큰 잘못을 범한 죄인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덧입자 영혼의 기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좋은 음식과 단 것을 먹고 마시고 자기 것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줌으로써 공동체 안에 큰 잔치가 벌어졌다.
말씀을 깨달았을 때 주의 백성들은 죄에서 벗어나 큰 위로를 얻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덧입는다. 그들은 오직 자기중심성의 장벽을 깨뜨리고 자기를 초월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제부터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이요 부흥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만난 사람은 이미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추라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어두운 영혼에 말씀의 빛을 비추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다르다. 그것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생명이요 하나님 그분 자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들어올 때 우리는 비로소 진리를 깨닫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며 말씀을 좇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창조하시고 보라 얼마나 좋으냐! 감탄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어느 성현이 말하기를 고통은 좌절된 욕망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에서 고통은 사라지고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차고 넘친다.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 눈을 떼면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 자존심의 꽃이 떨어지면 인격의 열매가 맺히는 법이다.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는 다시 성경으로 돌이켜야 살 수 있다. 하나님 말씀만이 무너진 내면의 성벽을 다시 세울 수 있다.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말씀이 선포되고 모든 성도들이 그 권위에 순종할 때 나의 무너진 성벽은 재건되고 우리 가정의 성벽이 다시 세워지고 이 땅의 교회들은 이 시대를 향한 생명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할 수 있다.
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인간의 목소리는 아무린 힘이 없다. 왜냐하면 죄인인 인간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그러므로 교회가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고 성도들이 말씀의 권위에 복종할 때 비로소 개혁은 날마다 계속될 수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백성들이 거룩한 군대로 다시 일어나 이 땅에 부흥의 불씨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