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유쾌한 시간 되십시오”

동방의 예루살렘 어찌 무너졌나
하나님 탄식소리 삼천리 쟁쟁한데
7천만 남북동포 15억 중국동포
60억 열방민족 방황하는 그들에게
감각없는 민족에게 피의 복음 선포하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사명자여 일어나 가라 주님 함께 하시니
사명자여 일어나 가라 실크로드 생명길로
“실크로드 생명길로… 실크로드 생명길로…”
천관웅 곡 [사명자여 일어나 가라]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7년 9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이 찬양의 가사가 대학을 갓 졸업한 오클랜드의 한 스물한 살 코리안 디아스포라 청년의 심장을 뒤흔들어 깨웠다.
남북동포, 중국동포, 열방민족, 피의 복음, 실크로드, 생명길….그리고 아버지, 아들, 성령…

당시 갓 대학을 졸업하고 구체적인 미래의 비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던 나의 귀에 들려온 이 찬양은 당연하게 생각해왔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나의 나됨’과‘하나님의 부르심’을 동시에 각인시켜주었다.

‘나는 왜 5대양 6대주로 이뤄진 넓은 지구별의 가장 큰 대륙, 아시아에서 태어난걸까? 아시아 대륙에서도 하필이면 왜 현존하는 최후의 분단국가인 코리아에서 태어난걸까? 두 개의 코리아 중 하필이면 왜 민주주의, 시장경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한반도의 남쪽 절반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태어난걸까? 서울 땅에서 15년을 살았던 유년기, 청소년기가 아닌 하필 뉴질랜드라는 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유학 중이던 청년기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이곳에서 땅끝까지 다시 일어나 가라고 부르시는 걸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수많은 특권과 더불어 꼭 지켜야 할 명령, 즉 책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소망 없는 그늘진 곳, 무너지고 황폐한 땅, 방황하며 길을 잃은 민족’을 향해 나아가 그들을 ‘생명길’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시작되어 서쪽 끝, 즉 유럽과 아프리카의 문 앞까지 이어지는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열방 민족들 가운데 하고 계신 일들을 두 눈으로 두루 보길 소원했던 것이 바로 ‘아시안 하이웨이 모험’의 시작이자 동기였다.

한여름 태양이 내리쬐던 2015년 7월말, 누가봐도 자유로운 배낭여행자임을 알 수 있는 차림의 나는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한 재래시장 한복판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목을 축이기 위해 시장 구석에 있는 작은 상점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 캔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시원하다~’

다 마신 음료수 캔을 버리기 위해 휴지통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나의 앞으로 짙은 카키색의 자켓과 바지를 입은 한 중국인이 양손에 건축자재를 잔뜩 들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시장 구석에서 건축 일을 하는 인부인가 보다 하고 무심코 지나칠 수 있던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짙은 카키색의 상하의, 검게 그을린 피부, 160cm 정도의 단신인 이 남성이 빠른 발걸음으로 향하고 있는 시장의 변두리 건축현장을 향해 따라가고 있었다.

‘중국인? 중국인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카키색 아저씨의 발걸음을 따라 걸어간 건축현장에는 검게 그을린 피부와 작은 키를 가진 네 명의 또 다른 동료 인부들이 벽돌과 철근 등을 바삐 운반하며 땀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중국인 같지는 않았다. 몇 초후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중국어도 러시아어도 아닌 한국 말임을 엿듣게 되었고 그제서야 나는 이분들이 북한에서 파송된(?) 외화벌이 노동자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순간 심장이 뛰었다. 이전에 알고 지내던 ‘탈북민’ 혹은 ‘북향민’이 아닌 러시아 땅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시커멓게 그을린 이 북한 아저씨들의 얼굴엔 땀방울이 가득했고, 제한된 시간 안에 급히 작업을 끝내야했기 때문에 재빠른 손발 놀림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있는 그들의 노동 현장을 말없이 지켜보며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 시끌벅적한 재래시장 안에는 러시안, 중국인, 우즈벡, 카작, 타직, 타타르 등 수많은 민족들이 뒤엉켜 물건을 사고 팔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눈에는 시장 구석 한켠에서 가장 고되고 힘들어보이는 일을 하고 있는 이 다섯 명의 북한 아저씨들만 들어왔다.

‘하나님, 저 아저씨들은 왜 북한에서 태어난거죠? 저는 왜 서울에서 태어나게 하셨죠? 제가 잘한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호사롭게 카메라를 들고 음료수를 훌쩍거리면서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고 있고, 저 아저씨들이 잘못한게 뭐가 있다고 자기 가족도 아닌 북한 정권을 먹여살리기 위해 저렇게 고된 노동을 하며 뼈빠지게 일해야 하냐고요? 저야 감사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요? 대답 좀 해보시라고요!’

불공평하신 하나님은 배부르게 하소연하는 내게 이런 마음을 주셨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지…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내 마음을 나눠주지 않았니?’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 앞을 스쳐 지나갔던 바로 그 카키색 복장의 북한 아저씨가 잠깐 허리를 세우고 숨을 돌리고 있는 순간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앞으로 걸어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시죠?”

대뜸 다가와 웃으며 인사하는 나를 보며 잠시 놀란듯 했지만 이 아저씨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일 없습니다”

“저는 뉴질랜드에서 왔고요, 지금 러시아 여행중입니다. 더운날에 고생이 많으세요. 힘내세요!”

내가 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짧은 시간안에 어떻게든 긍정의 힘이라도 나눠드리고 싶어 고작 내뱉은 말이 “고생이 많으세요. 힘내세요!”라니… 마음이 착잡했지만 오히려 뜻하지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유쾌한 시간 되십시오”

땡볕에서 고된 노동으로 인해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가 해맑은 미소와 함께 내게 건네준 그 한마디가 하루 종일 나의 귀와 마음을 울렸다.

“유쾌한 시간 되십시오. 유쾌한 시간 되십시오.”

한반도 코리아 관련 뉴스 보도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어두워 보이는 요즘이다. 실크로드 생명길, 아시안 하이웨이, 코리안 디아스포라. 민족과 열방을 화평케 하는자. 하나님의 마음을 유쾌하게, 시원케 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렇게 어두운 시대일수록 결코 우연이 아닌 ‘나의 나됨’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사명자여 일어나 가라 주님 함께 하시니 사명자여 일어나 가라 실크로드 생명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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