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이스라엘 네게브 농장

농부 가족들과 함께한 샤밧샬롬 안식일 저녁식사

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내겐 꿈의 직업 (Dream Job) 이 있었다. 바로 이스라엘 땅에서 가축을 돌보는 목동이 되어 살아보는 것. 목동이 아니라면 농부도 좋았다.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난 무척 진지했다.
‘내 죽기 전에 꼭 예수님이 사셨던 땅에서 가장 성경적인(?) 직업을 가지고 살아보리라!’

꿈을 실행에 옮길 작정을 하고 국제 유기농 농장 팜스테이(Farm Stay) 자원봉사자 네트워크인 우프(WWOOF-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s) 프로그램을 통해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Negev) 지역에 위치한 유대인 개인농장에서 2주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곧 이스라엘 땅에서 가축을 칠 수 있겠구나! 씨뿌리며 추수하며 농부 아버지의 마음을 더 배워야지! 쉬는 쉬간엔 물맷돌 연습도 해보자!’

별다른 이력서 없이 농장주인과 개인적 이메일을 몇 번 주고 받고 얻은 새 직장(?)이었지만 내게는 말 그대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네게브 지역에 위치한 넓직한 들판이 펼쳐져 있는 심심해 보이는 마을,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황량하기 그지없다. 걸어서라면 두 시간 족히 더 걸렸을 외진 농장에 히치하이킹으로 편하게 도착했다.

나와 체격은 비슷해보이지만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빈틈없어 보이는 또렷한 눈동자를 가진 이 농장 주인 유대인 아저씨 체덱(Tsedek)이 투박하지만 정감이 가는 영어로 나를 반겨주며 다부진 팔뚝으로 환영의 악수를 건넨다.

“환영하네! 네가 두루 맞지?”

아무리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자원봉사 팜스테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2주간 이곳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나의 노동을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기에 보스 농부에게 ‘저 이곳에 열심히 일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신뢰감 가는 눈빛과 함께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그의 환영에 화답했다.

“Hi Boss!”

젖소 80마리, 황소 2마리, 염소 800마리, 양 250마리, 닭 50 마리, 앵무새 20 마리, 그리고 유대인 농부의 가족 다섯 명,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버지와 아들 목동 두 명, 염소젖으로 치즈를 가공하는 치즈메이커 두 명, 그리고 각종 곡물과 밀가루로 농장 가족들이 먹는 빵을 매일같이 직접 굽는 베이커 두 명이 무려 15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농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도착한 이 농장의 유일한 자원봉사자 나.

농부는 아랫층에서 직접 가공시킨 염소치즈를 종류별로 시식할 수 있도록 정성스레 잘라주었다.
‘염소치즈는 이런 맛이로구나~ 음~’

신기하고 맛있게 치즈의 신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내게 농부가 말했다.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은 사람도 동물도 다 한 가족이니, 쉬는 시간엔 언제라도 이 곳에 직접 와서 치즈를 가져다 먹어도 좋아. 그리고 주방에 있는 모든 음식, 과일, 모두 마음껏 먹으라고! 일을 하다보면 배가 많이 고플테니!”

우와… 이런 친절한 농부가 있나. 마치 ‘농장 각종 치즈와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일을 마친 쉬는 시간에만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자비로운 농부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곳은 정말 에덴 동산과도 같았다! 그 귀한 석류가 박스째로 쌓여져있고 원하면 언제든지 직접 석류즙을 짜서 생과일쥬스를 만들어 마실 수 있었다.

농장에서 나는 각종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빵과 치즈, 우유 그리고 농부 아내가 지어주는 건강한 렌틸 볶음밥까지, 모든 메뉴는 무한리필이 가능했다. 차가 마시고 싶어 주방을 훑어보고 티백이 보이지 않자 농부에게 물었다.

“차를 마시고 싶은데 안보이네요. 차는 어딨죠?”

왜 차를 주방에서 찾느냐는 듯 의아해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농부는 나를 데리고 각종 꽃, 풀, 나무들이 심겨진 집밖 정원으로 나갔다.

나를 정원 한가운데 세워놓고 그는 주변에 보이는 이 풀, 저 풀, 심지어 꽃까지 한움큼씩 쥐어 뜯어 내 손에 건네주며 말한다.

“앞으로 차는 주방에서 찾지 말고, 정원에 와서 직접 가져가 끓여먹으면 된다데. 이 정원에 심어놓은 식물들은 몸에 해로운 게 하나도 없으니 취향대로 골라 마시면 된다네”

실로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그렇게 끓여먹은 이름모를 풀로 끓인 차는 맛도 향도 놀라웠다. 이럴수가… 이게 바로 유기농 농장의 위대함이로구나. 과일, 치즈, 차 외에도 나는 전날 갓 짜낸 염소우유를 냉장시켰다가 다음날 아침 씨리얼에 부어 먹곤 했다. 슈퍼마켓에 가지 않아도 이곳에선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며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딱 하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고기, 육류제품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농장 식구들은 채식, 베지테리언이었던 것이다.

소와 양과 염소가 떼로 몰려다니는 광경을 매일 같이 보면서 식탁에선 고기를 구경도 못한다니, 얼마전까지만 해도 천하 부러울 것 없었던 이 에덴동산으로부터 배신당한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농장에서 일한지 4일째가 되자 고기를 그리워하는 나의 위장이 내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아니 이스라엘 유대인이면 코셔(정결음식법)에 따라서 고기 먹으면 될 것이지 왜 채식을 하는 거야, 이 농부는? 일하는 사람 배려도 좀 해줘야지! 고기! 고기! 고기를 줘야 일을 하지!’

위장에 설득당한 나는 농부를 찾아가 정중히 부탁했다.

“이곳에서 먹는 모든 식물과 양식들이 건강하고 풍족하오나 내 한가지 아뢸 것이 있사오니, 농부께서 마을에 나가시거든 고기를 먹지 않고는 힘을 내어 일할 수 없는 이 종을 기억하사 부디 소시지 한 봉지만 사다주소서”

농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소시지? 소시지가 뭔데?”
“소시지 모르세요? 도톰하고 먹기 좋게 둥그스럼하게 가공된 고기 조각, 소시지요”

농부는 정말로 ‘소시지’를 생소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아~ 그 쓰레기~ 그걸 왜 찾지? 탐욕스런 농장의 산업화가 가져다준 불쾌한 음식이잖아. 어떻게 함께 사는 가축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농부는 그 다음날 나를 위해 마을에서 소시지 한 봉지를 사다주었다. 고마워해야 할지 미안해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나에겐 절실했던 고기였기에 신나게 먹고 신나게 일했다.

나중에야 알게되었다. 농부가 왜 그렇게 산업화된 농장 시스템과 인위적으로 가공된 식품을 혐오하는지.

13살 때부터 이스라엘 땅, 햇빛, 비, 식물, 가축들과 호흡하며 평생 농장생활을 해온 그의 철학인즉슨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 때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섭리요 법칙이라고. 자신의 농장에 있는 모든 가축들을 자신은 자연에서 나는 최고의 것을 먹이며 정성으로 기르고 돌본다는 것. 그리고 실로 이 농장에서 만들어지는 염소 치즈는 이스라엘 정부가 찬사하는 최고의 부티끄 치즈농장 제품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 고집스런 유대인 농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켜보며 하나님과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잊은채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도시속의 나와 우리를 돌아본다.

“그래도…… 소시지는 내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었다고요, 농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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