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겨울로 진입하는 11월 초, 요르단의 수도 암만 (AMMAN)에 무사히 도착했다. 낯선 땅, 새로운 여행지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신 한국인 선교사님의 환대와 따뜻한 전기장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새날이 밝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한 아침, 특별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암만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지역에 위치한 동네로 향하는 차 안. 설레는 마음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작고 소소한 이곳의 풍경들을 감상했다.
성경의 땅, 요르단. 열살 쯤 되어보이는 어린 목동이 막대기를 들고 휘파람을 불며 수십마리의 양떼를 인도하며 걸어가고 있다. “GIVE WAY”라는 표지판은 어느 곳에도 적혀있지 않지만 도로에서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면 차보다는 양떼들이 먼저인 듯 하다.
우리 차도 잠시 멈춰서서 이들이 길을 건나갈 때까지 잠잠히 기다렸다. 저 어린 목동이 얼마나 우렁찬 목소리로 카리스마있게, 또 여유롭게 양들을 잘 이끄는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짙은 황색의 흙모래바닥, 주먹만한 짱돌들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황량한 공터에서 축구공 같지도 않은 다 헤어진 공을 차며 힘차게 뛰어노는 청소년들도 보인다. 맘같아서는 차에서 내려 이 친구들과 한바탕 땀흘리며 뛰어놀고 싶은데, 아… 오늘은 더 귀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기 맞은편에 푸르른 잎과 무성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감람나무(올리브 나무) 여러 그루가 보인다. 그 옆에 돌담 넘어 보이는 작고 어여쁜 건물 한채, 바로 이 동네에 있는 시리아, 이라크 난민들을 섬기는 현지 교회라고 한다. 외관상으로는 교회인지 가정집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실내로 들어가보니 거실 쯤으로 보이는 공간 벽에 걸린 검소해 보이는 나무 십자가가 눈에 띈다.
조만간 도착할 귀한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 30여개도 보인다. 매주 이곳을 섬기는 여섯 명의 한국인 선생님들과 함께 나도 귀한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곧이어 마당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발걸음 소리. 천방지축 해맑기 그지 없는 서른여 명의 꼬마 아이들이 꺄르르륵 신나는 소리를 지르며 교회 건물 안으로 쿵쾅거리며 입성한다.
수줍게 쭈뼛거리는 네 살 꼬마숙녀, 들어오자마자 선생님들께 크게 인사하며 손을 흔드는 늠름한 아홉살 소년, 얌전하게 들어와서 어린 동생들을 자리에 앉히는 히잡을 쓴 열두살 쯤 되어보이는 소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입장했다.
다름 아닌 요르단 바로 옆에 위치한 시리아에서 전쟁을 피해 피난온‘시리아 난민’아이들이다. 피난민의 신분으로 기약없이 머무르고 있는 요르단에서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 아이들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이곳이 얼마나 설레고 기다려지는 곳인지 아이들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라크 출신의 여선생님과 한국인 선생님들을 따라 귀여운 율동과 함께 신나게 노래 부르는 시간. 천사들의 합창이 따로 없다. 곧이어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그들의 언어인 아랍어로 성경암송을 하는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 씩씩하던지.
그 아이들이 외치는 성경 구절 한 음절 한 단어가 이 아이들을 당신의 형상 따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귀에도 들릴거라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지난 10년 가까이 요르단에서 섬기고 계신 한 선교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이 땅에 놀랍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끝없이 몰려오는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이 딱히 믿고 의지할 가족과 공동체가 없기에 그들을 반겨주고 섬겨주는 곳곳의 지역교회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결정도 할 수 없는 부인들은 남편에게 묻는다고 한다.
“여보, 저기 동네에 있는 교회에서 우리 아이들 공부도 시켜주고 영어도 가르쳐준데요. 일주일에 딱 한번 뿐이라고 하던데… 우리 고향에서 온 옆동네 새댁이 자기 딸도 보낸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들도 보내면 안될까요…?”
“아니 그걸 이제서야 알았단 말이야? 우리 아이들도 얼른 보내자고! 당장!”
이렇게 기적처럼 가장의 허락을 받은 수많은 무슬림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매주 곳곳에 있는 교회로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시리아나 이라크 안에 있었다면 감히 상상하기 조차 힘든 일인데 말이다.
곧이어 서른여 명의 아이들이 연령대별로 흩어져 만들기, 음악, 그림, 영어 등 소그룹 수업이 진행되었다. 열심히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들떠있는 내게 요르단 여선생님께서 다짜고짜 물으신다.
“두루, 뉴질랜드에서 왔다고 들었어요. 오늘 미국인 영어선생님이 아파서 못왔는데 하루만 영어선생님이 되어줄래요?”
“네? 영어쓰는 뉴질랜드에서 온 건 맞는데요, 전 아무 준비도 한 게 없는데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죠?”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선생님이 가르칠 교재는 다 준비되었어요. 알파벳‘B’를 가르쳐 주세요. 여기‘B’로 시작하는 단어들이랑 그림 보이죠? 색연필 잔뜩 들어있는 저 통 들고 어서 방으로 들어가서 수업 시작해주세요. 아이들이 기다려요!”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이제 막 처음 만난 여덟 명의 시리아 꼬마아이들의 유치원 초등학교 영어교사가 되어 30여 분간 알파벳 ‘B’를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쳤다.
“Bear~ Bat~ Balloon~”
“Ball~ Boy~ Bell~”
아, 자격증도 없는 야매(?) 영어선생님의 수업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따라와주는 꼬마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편 나를 비롯한 우리 1.5세대 2세대 뉴질랜드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또 가뿐하게(?)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지 깨닫는 시간이다.
특정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들어가야 하는 선교지도 있지만, 이렇게 작고 미천한 알파벳 ‘B’하나를 가지고도 이 아이들이 일주일 중 가장 고대하는 30분의 시간을 나누어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수업을 마치고 그곳에 계신 선생님들이 간곡히 부탁을 하신다. 뉴질랜드에 있는 한국인 청년 선생님들을 이곳으로 더 좀 불러달라고. 한 달이고 세 달이고 일 년이고 다 좋다고. 아이들은 많은데 선생님이 부족하다고..
뉴스는, 또 세상은 이 천사같은 아이들을 ‘시리아 난민’이라 부르지만, 하늘 아버지는 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사랑하는 자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계신다.
눈 빠지게 다음 수업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C’ 와 ‘D’를 가르쳐줄 고학력(?)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선생님들 계시다면 언제든지 여기 여기 붙어라! 대학생도 좋고, 취준생, 직장인도 좋다!
열방은 넓고, 추수할 곳은 많은 이 시대에 우리를 준비된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불러주신 주님의 아름다운 계획이 나를 비롯한 코리안 디아스포라 젊은이들을 통해 열방 곳곳에서 두루두루 이뤄지는 모습을 보게 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