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스마트폰의 기능을 백 퍼센트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전화를 받는 정도로 사용하고 좀 더 하면 뉴스를 본다든지 카카오톡을 한다든지 하는 정도로 사용한다.
아마 스마트폰의 그 많은 기능을 개발한 기술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 울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이런 첨단 전자 기기들 만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다 보면 우리가 그렇게 가까이 하고 있는 십자가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저자는 교회가 어떻게 다른 여러 가지 표상들을 뒤로 하고 그 당시 형벌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십자가가 교회에 가장 중요한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한번 십자가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하도록 초청한다.
저자는 십자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서문에서 한 예화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십자가는 복음주의의 지도자로서 비견할 데가 없는 위치에 있었던 마틴 로이드 존슨 박사의 사역의 전환점이 되었다.
1929년 어느 날 밤 그는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고 설교를 마친 로이드 존슨 목사에게 그 교회의 목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공로’에 대한 언급이 설교에 거의 없다고 도전하였다.
그 말을 들은 존슨은 헌 책방에서 속죄에 관한 대표적인 책 두 권을 사서 읽었고 그 책들을 다 읽고 난 후로 그는 ‘복음의 참된 핵심과 기독교 신앙의 깊은 의미’를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 후로 그의 설교 내용은 바뀌었고 설교의 능력도 변했다.
저자는 기독교의 거장인 마틴 로이드 존슨의 예를 들어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십자가의 바른 복음을 깨달아 그들의 삶이 변화되고 능력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방대한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을 오가면서 인용을 할 뿐 아니라 주제에 관련된 저명한 학자들의 주장들도 많이 싣고 있다. 그런 자료들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의 옳음을 증명하고 틀린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함을 통해서 십자가에 바른 이해로 나아가도록 독자들을 돕고 있다.
저자는 십자가의 ‘대속’에 대한 네 가지 이미지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다 이해하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교사들, 설교자들, 그리고 다른 증인들의 책임은 그것을 분명하고도 확신 있게 강해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속의 영광을 더욱 잘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을 대속하신 그 분을 더 쉽게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장을 마무리 하면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토론 문제를 싣고 있다.
이 문제를 통해 저자는 그 장에서 우리에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게 해 주며, 한 장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그 장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함께 읽고 서로 토론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은 연중행사가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끝으로 그런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십자가의 사건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십자가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고 그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세상의 이리 저리 요동치는 일들로 인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사야 40:8)는 말씀처럼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고 세상 속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