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지 못하는 일은 이뤄질 수도, 시도할 수 조차 없다고들 한다. 상상 만큼 즐겁고 창조적인 일이 또 있을까.
14개월에 가까운 여행을 마친 뒤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여행의 모든 과정 중 가장 설레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그때는 다름 아닌 떠나기로 결정하고 여행을 준비하던 기간이었다.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나라들과 만나고 싶었던 민족들을 떠올리며 매일 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가고픈 곳을 죄다 찍고 머릿속에 그려가며 설렘으로 가득찬 하루 하루를 보내곤 했다. 여행준비를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린시절부터 막연히 꿈꿔오던 세계일주의 꿈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 열방의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렌즈를 통해 ‘10/40 선교의 창’ 그리고 ‘아시안 하이웨이’ 루트로 범위가 좁혀졌다.
그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멋진 곳을 구경하는 것보다 하나님 지으신 다양한 민족들을 만나 교감하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알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길 위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마주하며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접했다. 각자가 다른 꿈과 목표를 가지고 여행하고 있었고, 그들도 나와 같은 청년들이었다.
3개월 가까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3개국을 여행하는 가운데 엉뚱하고도 유쾌한 상상초월 여행자들을 몇 만났다. 이들은 모두 내가 묵었던 저렴한 배낭여행자 호스텔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다.
전직 독일 언론사 피디 크리스천 보겔
그는 듬직하고 단단해 보이는 검은색 BMW 모터바이크에 짐을 한가득 싣고 세계를 질주 중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모터바이크를 실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 동부부터 캐나다 북서부를 지나 알라스카까지, 다시 비행기에 바이크를 싣고 바다를 건너 서울에서 동해로, 동해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그리고 러시아-몽골-중앙아시아-파키스탄-인도-중동-동유럽-스칸디나비아 3개국, 그리고 고향 독일까지, 언제 끝날지 모를 기나긴 라이딩 모험 가운데 틈틈히 영상을 찍어 셀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하는 포부를 가진 와일드남이다.
스키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르네
이 친구는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느 여행자들보다 익스트림한 케이스다.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히치하이킹으로만 4000km 거리인 이르쿠츠크까지 단 3일만에 도착한 King of 히치하이킹! 그 긴 거리를 5번의 히치하이킹으로만(운송트럭, 승용차 등등)이동하는 도중 그가 쓴 돈은 미화 20불도 채 안되었다는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그가 독해서가 아니라 그가‘좋은 사람이어서’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5번의 히치하이킹 내내 기사들과 잡담, 수다는 곧 인생살이 푸념과 카운셀링으로 이어졌고 헤어질 땐 서로 아쉬워하며 격려해주며 내렸다고 한다.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동일한 거리를 67시간 만에 이동했으니 르네의 히치하이킹과 별반 차이가 없는 셈.
핀란드 출신 응급구조대원 요아네스
8개월간의 유럽-러시아-몽골-중국-동남아 일주 중인 그는 몽골에서 한 달 정도 말을 타고 몽골의 광활한 대지를 누빌 계획이라고 한다. 좀 특이한 점은 말 한 필을 직접 사서 타고 돌아다닐 계획이라 한다. 이건 뭐 삼국지도 아니고… 몽골 한복판 가축시장에서 말을 구매해 달리다가 되판다니! 심지어 이런 정보를 공유하는 몽골 승마 모험가들의 온라인 포럼까지 있었다.
두 호주 청년 루이스와 제라드
멜번에서 대학 졸업 후 독일로 떠나 중고 Ford 초소형차를 흥정해서 400유로에 구매해서 서부유럽 런던에서 출발-동부유럽-터키-중앙아시아-러시아-몽골 울란바타르까지 이르는 이른바‘몽골 랠리’대장정 중인 그들.
런던에서 카자흐스탄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10주, 두 명이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는데 떄론 GPS에 찍히지 않는 길도 헤쳐 어떻게든 생존해서 가야한다고 하니, 보통 깡이 아니면 시도하기 힘든 여정이 분명했다.
소형차 트렁크엔 비상 타이어 4개가 실렸는데 기적적으로 아직까지 단 한 번의 교체 없이 이 곳까지 왔다며 스스로들 놀란다. 자동차 정비기술이나 지식을 가졌는지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아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연장이 아예 없어. 허허…. 스페어타이어 가는 것 말고는 노답이지”
울란바타르에 도착하면 차는 어찌할거냐 물으니, 세관에 기증하거나 푼돈 주고 고철상인에게 팔거나 둘 중 하나라는데, 몇백 달라를 받고 안받고를 떠나 이들이 몽골 랠리 완주 후 얻게 될 자신감과 성취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리라.
전세계의 무모한 모험가들
각자가 나름의 신념과 꿈을 가지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멋진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모험을 머릿속에 그렸고, 현실로 실행 중에 있으며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끝까지 두고봐야 알겠지만 (히치하이커 르네를 제외) 내 눈에는 이미 ‘실패를 뛰어넘은 도전자들’ 로 보이기에 이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청년 스피릿의 표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멋진 여행자들은 놀랍게도 하루 하루 주어진 소소한 일상 가운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조용히 십자가의 모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본향으로 향하는 GPS 를 켜고 열방 구석구석에서 묵묵히 믿음의 여행길을 걸어가고 계신 선교사님들을 보며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낮고 좁은 길을‘사랑 때문에’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늘에서 영원히 기억될 모험가들이 아닐까.
내가 만난 멋진 청년 모험가들에게 도전 스피릿이 충만했다면 좁은 길을 걷는 수많은 하늘 모험가들에겐 ‘순종 스피릿’이 충만할 터.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라고 세상은 말하지만 우리는 믿고 있다. ‘믿음은 상상도 현실도 뛰어넘는다’ 는 사실을. 이런 귀한 믿음의 인생들, 여행하며 찬찬히 더 많이 만나보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