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은 ‘이번 크리스마스 때 아무 할 일이 없다’고 말했어. 하지만 내가 보낸 대본으로 작곡하도록 그를 설득할 생각일세. 그가 모든 재능을 바쳐 이 작품을 써주었으면…. 그래서 이 작품이 그가 쓴 최고의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네. 이 작품의 주제는 다름 아닌「메시아」일세.”
1741년 7월 10일 대본작가 찰스 젠넨스가 친구 홀스워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위대한 인류 문화유산인 ‘메시아’가 최초로 언급되었다.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이 곡을 쓸 당시 헨델은 독실한 신앙인이 아니라 대중의 인기만을 추구하던 음악가였다. 그리고 오라토리오‘메시아’를 쓰기 직전에는 더 이상 인기 있는 음악가도 아니었다.
한때 온 영국 국민의 사랑과 명성을 한 몸에 받았던 헨델은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개최한 연주회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빚만 쌓여가고 있었다. ‘돈을 위해 음악을 팔아먹은 사기꾼’이라는 비평가들의 혹평도 들었다. 좌절감과 실의에 병까지 들어 버린 최악의 상태에 있을 때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자선음악단체(Philharmonic Society)로부터 작곡 의뢰가 들어왔다.
그때가 1741년, 51세의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작곡에 착수한 이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초라하고 황폐했던 헨델은 갑자기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열광하며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오로지 작곡에만 몰두하기 시작, 불과 24일 만에 이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6백석 규모의 극장에 7백 명이 들어찬 더블린 초연에서 이 세상은 음악으로 ‘메시아’의 강림을 지켜보았다.
헨델은 ‘메시아’를 작곡한 후 더 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다.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뜨린 오페라 대신 ‘오라토리오’가 헨델을 살렸던 것이다. 돈과 명성만을 쫓던 속물적인 헨델이 ‘메시아’ 공연을 통해 들어온 수익금 전액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였다. 사람들은 그런 헨델을 두고 ‘메시아’께서 ‘메시아’를 통해 헨델을 변화시켰다고 한다.
헨델의 메시아는 초연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이다. 이번 11월 26일 토요일 7시 30분에 파넬 대성당에서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이 제2회 공연을 하게 된다.
50여 개 교회에서 모인 70여명의 합창 단원과 30여명의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어 합창과 반주를 하며, 오스트리아에서 오는 바리톤 김정호씨와 미국에서 오는 테너 진철민씨, 그리고 교민 성악가 소프라노 김나영씨가 솔리스트로 나선다. 특히 키위 성악가 알토 케이트가 한국말로 아리아를 부를 예정이어서 기대가 크다. 이번 공연에서 나오는 후원 업체의 도네이션과 티켓 판매 수익금은 전액 선교기관에 기부된다.
관객을 위한 공연 관람 TIP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하는 시간은 적어도 2시간 30분이다. 그래서 이번 헨델 메시아 공연 관람 팁을 준비해 보았다.
1. 어떻게 음악만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나
오페라는 의상이나 조명이나 연기 그리고 여러 가지 무대 장치로 극적인 면을 연출할 수 있지만 오라토리오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오로지 음악으로만 승부를 걸어야 한다. 헨델이 어떻게 극적인 장면을 음악으로 풀었는지를 눈여겨보는 것이 첫 번째 팁이다. 하나만 힌트를 준다면 오페라에서는 솔로 아리아가 극적인 면을 연출하고 합창은 그저 솔로를 도와주는 것이 주이지만,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합창이 오히려 클라이막스다.
2. 찬송가가 아니라 복음성가의 측면으로 시각을 바꿔보기
헨델의 메시아는 찬송용이 아니라 선교용으로 작곡 되었다면? 음악이 어떻게 다르게 들릴까?‘이 땅에 죄인을 구하러 오신 메시아를 어떻게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전할까’를 고민하고 쓴 헨델의 용기와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 바로크 음악 감상의 정석 세 가지 챙겨 듣기 – ‘다카포 형식’, ‘멜리스마’, ‘대위법’
A. ‘다카포’란 반복이다. 반복을 한다는 것은 이게 아주 중요하다며 강조하는 의미다. 덕분에 관중들이 멜로디를 익히게 되고 어느새 친숙하다고 느끼게 된다.
B. ‘멜리스마’는 긴 프레이즈, 즉 늘어지는 음이라고 해석을 해야 할 것 같다. 멜리스마가 나오면 이 단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엄청난 기교를 발휘하는 멜리스마는 바로크 음악의 꽃이기도 하다.
C. ‘대위법’이란 용어는 어렵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한 이론이다. 이 파트에서 음이 올라가면 다른 파트는 음이 내려가고, 이 파트 음이 두 박자이면 다른 파트 음은 그와는 다른 박자를 쓴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엄청난 통일성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4파트 모두 자기 멜로디를 노래하는 거다. 보통의 합창이 주요 멜로디 파트가 있으면 다른 파트가 그 멜로디에 종속 된다. 그러나 대위법에서는 같은 멜로디지만 각각의 음역에 맞게 개성 있게 부르는 데도 절묘한 화음을 이루는 멋진 음악의 방법이다.
4. 그 밖의 포인트
A. 키위 알토가 부르는 한국말 메시아
B. 영어와 한국말 자막
C. 오르간과 챔버 오케스트라의 절묘한 만남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는 것이다.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 헨델의 메시아 대공연
세속 음악이 아니라 교회 음악 하려는 ‘소명’으로
50여 개 교회 성도들이 자원하고 공연으로 모여진 수익금 전액 자선에 써
2016년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의 헨델 메시아 대 공연을 앞두고 헨델과 메시아에 관한 궁금증을 오클랜드 음대에 재학 중인 딸 수지의 질문에, 아빠인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 운영위원장인 박성열목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풀어본다.
<편집자 주>
헨델, 남자? 여자?
아빠: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 딸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니 정답을 알 수 있을 거야.
수지: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아빠: 땡! 틀렸어요. 정답은 ‘음악’이야? 넌센스 문제거든 하하하.
수지: 아~ 그렇구나. 그럼 바흐와 헨델 두 분은 무슨 관계에요?
아빠: 사실상 바흐와 헨델은 독일 출신 동갑내기임(1685년생)에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어. 더구나 바흐가 20명의 자녀를 둔 반면 헨델은 74년 인생 동안 화려한 솔로였단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칭해서인지 웨이브 머리를 한 헨델을 여태껏 여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지. 그러나 가발은 그 당시 남자 패션의 완성이었어. 그리고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칭에서 ‘어머니’란 상징이지 생물학적 지칭은 아니야.
수지: 오대에서도 바흐나 헨델을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칭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바흐나 헨델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 위대한 작곡가들이 많이 있었는데 꼭 이 두 분이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해요.
아빠: 바흐, 헨델을 ‘음악의 아버지’,‘음악의 어머니’ 라고 부른 것은 독일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아. 아마도 100년 만에 잠자던 바흐를 부활시켰다는 멘델스존(1809-1847) 시대에 붙여진 별칭인 것 같아.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극적으로 발굴하고 연주한 후, 그 작품성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독일 음악인들이 급기야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칭한 거지. 그리고 영국으로 귀화한 독일사람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칭하면서 균형을 잡은 거야.
메시아, 세속음악? 종교음악?
수지: 그런데 아빠! 요즘 학교 음악시간에 헨델에 관하여 배우는데 선생님께서 메시아가 표절이라고 했어요. 헨델이 자기 작품을 표절해서 메시아에 넣었다며 음악을 들려줬어요. 잠시만요. youtube에서 찾아볼께요. 아 여기 있네요. 링크 보내 드릴게요. 헨델의 ‘이탈리안 칸타타’라는 작품에서 “No, di voi non vuo’ fidarmi”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여성 듀엣 곡이에요. 더구나 내용이 연인끼리의 사랑싸움이네요. 세속곡인 거죠. 자 한번 들어 보세요.
아빠: ‘우리를 위해 나셨다’와 ‘양과 같이’이 두 합창곡이 이 5분짜리 듀엣 곡에 다 들어있네. 나도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들어본 건 처음이야. 이게 세속곡이라고 했지? 가사 내용이 무슨 뜻이래?
수지:‘아니야, 난 너를 더 이상 믿고 싶지 않아’라는 뜻이라네요.
아빠: 헨델이 연인의 사랑싸움 노래를,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기쁨을 표현한 곡으로 절묘하게 바꾸었네. 대단하군!
수지: 아빠! 그런데 그 멋진 합창이 세속 음악에서 왔다는 게 말이 되요? 마치 평소 나쁜 아이들이랑 욕하면서 놀던 아이가 주일에 교회 와서 성가대에서 찬양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아요.
아빠: 그러니까 네 말은, 종교 음악과 세속 음악이 뒤죽박죽 섞이는 게 이상하다는 거지? 그렇다면 우리 딸은 종교음악을 뭐라고 생각해?
수지: 거룩한 음악?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담긴 음악? 이런 거 아닐까요?
아빠: 그래. 그런데 종교음악이 오롯이 거룩에서 길어 올린 것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더러운 수렁에서 건져 올린 것도 있어. 바흐 작품이 거룩에서 종교음악을 길어 올렸다면, 헨델은 수렁에서 종교 음악을 건져 올렸다고 볼 수 있어.
수지: 아빠? 더러운 곳에서 거룩을 건져 올린다구요?
아빠: 이건 두 사람의 삶이 증거하는 거야. 바흐는 교회와 가정 이것 이외는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헨델의 삶은 넓은 세상을 방랑하며 독신으로 살았어. 마침내 빚더미 위에 앉게 된 헨델은 사업 실패에 따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뇌출혈까지 일으켜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어. 이때 쓴 작품이 메시아야.
수지: 세상사에 물이 든 음악이라면 차라리 세속 음악 아닌가요?
아빠: 너 ‘어메이징 그래이스’ 찬송 알지? ‘존 뉴톤’이라는 영국 목사님이신데 그분이 메시아를 수도 없이 듣고는 ‘메시아는 종교 음악이 아니라 세속 음악’이라고 결론을 내렸어. 어쩌면 이 목사님 말처럼 메시아만큼 위대한 세속 음악은 없을 거야!
수지: 아빠? 너무 오버하신다. 메시아를 극단적으로 세속 음악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메시아는 성경 말씀만 뽑아서 만든 거 아닌가요?
아빠: 현재 교회가 아닌 연주회장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이 뭔지 아니? 또 클래식 음악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많이 연주된 음악이 뭔지 아니? 그게 바로 헨델의 ‘메시아’야.
수지: 그러니까 메시아가 종교 음악계 뿐만 아니라, 세속 음악계에서도 수백 년간 Top을 지켜왔다는 거네요. 헨델 메시아가 진짜 대단한 작품이네요 아빠. 그런데 어떻게 종교음악이 동시에 세속음악이 될 수 있는 건지 참 신기하네요.
아빠: 모차르트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뭐냐? ‘레퀴엠’ 아니냐?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인데 장례식장에서 듣기보다는 주로 연주회에서 인기가 높은 작품이야. 그러니까 성당에서 죽은 자를 위해 사용되는 종교음악이어야 하는데, 그 용도와 관계없이 세속 음악이 된 거지. 모차르트 레퀴엠을 감상하기 위해 연주회장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도 장례식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
수지: 그렇다면 종교 음악과 세속 음악의 차이가 뭐에요?
아빠: 작년에 있었던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의 메시아 공연 뒷이야기를 하면 네 질문에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 같네. 작년에 공연 때 오르간 반주를 하신 ‘자넷’이라는 분이 계셔. 이분이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 회지에 글을 남기셨지. 호주나 뉴질랜드에 메시아 연주를 하는 단체들이 많이 있고 이 단체들과 많은 연주를 같이 했었지만 우리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이 최고라고.
수지: 격려 차원에서 말씀하신 거 아닌가요? 거긴 프로고 여긴 아마추어인데.
아빠: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자넷은 그런 격려 차원이 아니라 영성을 말한 거야. 여기는 영이 살아있데. 그래서 둘 중에 하나에 참석하라면 자넷은 무조건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을 선택하겠다고 말한 거지. 아무리 멋지게 메시아 연주를 한다고 해도 세속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공연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수지: 그러니까 헨델 메시아가 연주하는 사람에 의해 세속 음악이 되기도 하고 종교 음악이 되기도 한다는 이론이시네요.
아빠: 또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이 50여 개 교회 성도들이 자원해서 연합하여 모인 단체라는 것과 공연으로 모여진 수익금 전액을 자선에 쓴다는 것이 놀라운 가봐. 수지뿐만 아니라 작년에 관객으로 오신 분들도 같은 마음일거야.
수지: 저는 ‘헨델 메시아’랑 ‘공연’이라는 말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티켓을 팔기까지 하니까요.
아빠: 메시아 연주는 헨델이 처음 연주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자선이었어. 공연 수익금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도우는 일을 한 거야. 헨델의 삶에서 보여준 신앙은 거룩한 메시아께 예배드리는 제사장이라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아 예수를 보여주는 선교사였어. 교회당을 건축하기보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는 것을 택한 거지.
수지: 그래서 헨델이 처음 메시아 공연을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극장에서 한 것이군요. 이제야 ‘메시아 예배’, ‘메시아 콘서트’라는 말 대신 ‘메시아 공연’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매년 메시아 공연을 하는 이유
수지: 어떤 사람이 작년에 메시아 공연을 봤다면서 매년 같은 공연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어요. 저는 뉴질랜드의 한국 교민들이 한국말로 공연 하니까 봐야 된다고 애국심에 호소를 했는데 썩 좋은 대답은 아닌 것 같았어요.
아빠: 메시아를 교회에서 부르면 교회 음악 되고, 극장에서 부르면 세속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야. 짐작을 했겠지만 ‘메시아’는 부르는 사람에 의해 세속 음악이 될 수도 있고, 교회 음악이 될 수 있어. 작년 단원 중에 메시아 합창단 단원 되는 것이 버킷 리스트인 분들이 많았어. 그런데 버킷 리스트를 완성했는데 그만두지 않고 이번 해에 계속 하시는 분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까‘시대적 소명’이라고 하시더라고. 세속 음악으로 메시아 공연을 하는 단체는 뉴질랜드에도 많아. ‘한국말로 뉴질랜드 교민이 연주 한다’는 것으로 대답이 시원치 않은 이유를 알겠지?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은 세속 음악이 아니라 교회 음악을 하려고 하는 거야. 매년 같은 공연을 하냐고 물었다고 했지? 나는 이 질문을 ‘왜 매주 안하고 일 년에 한 번만 하냐’고 질문을 바꿨으면 해. 매 주일 공연할 수 없어서 일 년에 겨우 한 번 하는 거야. 대신 매 주일 연습하니까 그나마 변명은 되는 거지.
수지: 너무 좋은 취지네요. 이번 공연에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작년 이상으로 영적인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빠, 말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