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샬롬중창단 스무 해, 리더 장영혜권사 인터뷰

“찬양은 성도의 의무지요.”
올해로 창단 스무 해를 맞은 샬롬중창단의 리더 장영혜권사(오클랜드감리교회)가 내린 찬양의 정의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성도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라는 뜻이다.

1996년 9월 성악 전공자 중심으로 창단
1996년 9월 둘째 주, 당시 오클랜드한인교회 성도 가운데 성악 전공자를 중심으로 한 중창단(리더: 방남희집사, 7~8명)이 교계와 한인 사회에 선을 보였다. 선교 목적으로 창단된 샬롬중창단의 찬양은 그 뒤 오클랜드는 물론 뉴질랜드 전국에 퍼져 나갔다.‘찬양선교단’ 하면 남성중창단 잌투스와 함께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를 정도였다.

스무 해,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샬롬중창단은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찬양했다. 그 찬양의 물결이 뉴질랜드를 수(繡) 놓았다. 때로는 감격의 눈물이 흘렀고, 때로는 위로의 손길이 역사했다. 모두 하나님이 찬양을 통해 하신 일이었다.

“저희 중창단의 목적은 오로지 ‘선교’에요. 그 외에는 아무것에도 눈길을 두지 않았어요. 힘들고 지친 영혼, 죄 속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찬양으로 달래 주었지요.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렇게 할거고요.”

장영혜 리더. 그녀는 샬롬중창단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창단 두 해 뒤,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중창단에 합류했다. 대학에서 성악(소프라노)을 전공한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중창단을 섬겼다. 오래전부터 든든한‘왕언니’로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했다.‘선교’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고귀한 일이다.

그녀가 리더로서 중창단을 이끌어 오면서 가장 보람있게 느낀 것은 무엇일까?
“교도소 공연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남녀 교도소를 몇 차례 들어갔는데 조건은 가장 나빴지만, 보람은 가장 컸어요. 재소자들의 손을 잡고 함께 찬양을 부를 때 천사들의 합창 같았어요. 영어도 잘 못하는 동양 여자들의 공연을 보고 들으며 그들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어요.‘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을 때 모두 눈물범벅이 되기도 했죠.”

노스쇼어 병원 사역 10년 넘게 펼쳐
장영혜리더의 간증은 계속 이어진다.
“병원 공연도 저희 중창단이 맛본 큰 기쁨이에요. 노스쇼어 병원 사역을 10년 넘게 해 왔어요. 다들 몸이 아픈 분이시고 더러는 죽음의 문턱을 앞에 둔 사람들인지라 더 애타게 우리를 기다려 주었어요. 찬양을 한 뒤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해 주면 정말 좋아하셨어요. 물론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도 했지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흥분됐다. 지난 사역을 돌아보면 ‘간증’할 것이 너무 많아서였다. 10년 넘게 수첩에 써 오고 있는 공연 일정표만 봐도 그 동안 전국 곳곳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두 번이나 맞은 샬롬중창단. 그동안 펼친 공연 숫자만 헤아려도 300번이 넘는다. 한 해 평균 열다섯 번은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셈이다. 해마다(더러 2년에 한 번) 가진 정기 공연 외에도 그들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곳이 바로 ‘선교지’였다.

“크고 작은 교회 행사 때마다 우리의 힘을 보탰어요. 교회가 작다고, 거리가 멀다고, 시간이 안 맞는다고 해서 피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떨 때는 저희 단원 숫자보다 성도 숫자가 더 적은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찬양을 하며 주고받은 성령의 역사는 더 뜨거웠어요. 하나님이 그 순간 내려주신 찬양의 능력이 그렇게 만들었죠.”

샬롬중창단은 의미 깊은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장영혜리더는 아이티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공연, 피지 선교 공연, 탈북자 선교 공연, 세월호 위로 공연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밖에도 호주를 두 차례 방문해 찬양으로 교회 연합에 힘을 보탰다.

현재 단원 17명…거쳐 간 단원은 70~80명
교회 임직식이나 부흥 사경회 혹은 선교 집회 같은 교계 행사에 샬롬중창단 공연은 늘 함께 해왔다. 빠지면 허전할 정도로 기다려지는‘시간’이었다. 그동안 여러 선교 중창단이 생겼다가 사라졌지만, 샬롬중창단 만큼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샬롬중창단이 장수(?)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장영혜리더의 말은 이렇다.
“저흰들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찬양으로 위기를 돌파하게 해 주셨어요. 찬양하고 기도하는 순간 단원 사이의 갈등이 사라졌어요. 저희 모임은 작은 교회나 마찬가지예요. 저희 안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게 이루어졌어요. 단원 한 분 한 분의 헌신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지요.”

샬롬중창단의 현재 단원은 장영혜리더를 포함해 모두 15명, 거기다 한결같은 동반자요 반주자로 오랫동안 섬겨준 김봉미권사(기쁨의교회)와 6년 전부터 찬양 지도를 해 주는 양경숙사모(기쁨의교회)가 함께 하고 있다. 김권사는 15년 전에 동참, 연습과 정기 공연 때마다 멋진 반주로 단원들의 힘을 북돋워 주었다. 양사모는 한양대 성악과 교수 출신으로, 샬롬중창단의 찬양 격(格)을 높여주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샬롬중창단과 한두 번이라도 호흡을 맞춰 온 단원은 모두 70~80명. 다들 전문가 수준에 이를 정도로 실력 있는 보물들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이십 대부터 사회생활에서 물러난 환갑에 이르는 나이까지, 쉽게 말씀드리면 엄마와 딸 사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원 간의 나이 차가 많이 나요. 하지만 찬양 앞에서는 그 어떤 벽이 없어요. 찬양만큼 모두를 하나 되게 만드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스무 해 찬양 연습만 3,000시간 넘어
하나님 찬양 스무 해, 그 뜻깊은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일상(하루)이 모여 평생’이 되듯, 꾸준한 연습과 한결같은 헌신이 오늘의 샬롬중창단을 만들어 냈다. 그동안 연습한 시간만 따져도 3,000시간이 넘는다. 주마다 두세 시간씩은 연습을 해 왔다. 월(月)로 바꾸면 넉 달이나 된다. 그 숱한 시간에 찬양 연습만 한 것은 아니다. 기도 또 기도가 있었고, 사랑 또 사랑이 있었다.

“바라기는 좀 더 많은 단원이 들어 왔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단원이 더 보강되면‘주니어’와‘시니어’로 나눠 공연을 할 생각이 있어요.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 주었으면 해요. 노래를 꼭 잘할 필요는 없어요. 기본(악보 볼 정도)만 되신다면 누구나 가능해요. 창단 20주년을 제2의 도약의 계기로 삼고 싶어요.”

샬롬중창단은 큰 잔치를 앞두고 있다. 창단 20주년 특별 공연이다. 오는 11월 12일(토) 저녁 7시 30분 오클랜드 노스쇼어에 있는 뉴라이프처치(24 Akoranga Drive Northcote)에서 갖는다. 이를 위해 옛날 단원 세 명을 포함, 모든 단원이 공연 준비에 목청을 높이고 있다.

“행사 전 그동안 한두 번이라도 저희랑 함께 공연해 온 옛날 단원과 저희 사역을 기도로 또 물질로 도와준 분들을 모시는 시간으로 마련했어요. 그 뒤 한인 교회 성도들과 저희를 사랑하는 교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축하 공연을 할 거예요. 부디 시간을 내서 자리를 빛내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샬롬중창단이 걸어온 하나님 찬양 외길, 스무 해. 말은 쉬울지 몰라도 절대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 길에 하나님의 동행이 있어 가능했다. 그 아름다운 찬양의 길이 계속해 이어지길 기도한다. 성도의 의무인 찬양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계속해서 울려 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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