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걸어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흙바람과 물비린내를 먼저 코끝으로 느낀다. 비록 마른 하늘일지라도 곧 비가 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곧이어 빗소리가 들리고 눈으로 비를 보게 되고 몸으로 비를 맞게 된다. 비가 걸어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비를 피할 수 있다. 흙내와 물비린내를 느낄 수 있는 사람도 비를 가릴 곳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빗소리를 듣고 피하려고 하면 때가 늦게 되어 비를 맞고 만다.
예수님도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는 것을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며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시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악하고 음란’하다.
겉으로는 미소 머금고 유순한 인상을 주고 배려하는 듯한 몸짓을 가지고 부드러운 말을 하지만 생각은 과대 망상에 빠져 자기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고 있다. 권력지향적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심각한 자기중독 증후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 생각이나 가치 그리고 신념과 성공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성공을 위한 허영을 비전으로 포장하여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기도로 최면을 걸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남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남의 감정이나 필요는 철저하게 무시한다. 잘 하면 내가 한 것이요, 못하면 반드시 남의 탓이라고 한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 그리고 실패와 부정한 일도 인정하지 않는다. 온갖 거짓 가운데 상식이나 도덕이나 윤리는 모두 무시하고 끝까지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 덮어 씌운다. ‘조금만 더’ 돈을 모으고 싶어하고, 하고 싶은 욕망을 은밀히 즐기며 자기의 확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소명(Calling)과 감정(Feeling)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감정의 자극에 따라 흥분되어 함부로 서원하고, 구원을 자신확신으로 인정하고 살다보니 사회의 사고와 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로서 종교인도, 전문인도 아니고 스스로 자영업자라고 한다.
악하고 음란한 니느웨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요나가 이 시대에도 꼭 필요하다. 먼저 요나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처럼 우리 모두도 요나처럼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한다. 진정한 회개가 없다면 소생할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기회는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고 지갑을 회계할 때 찾아온다. 스스로 돌이켜 회개하고 회계하라. 그래야 마지막 시대에 살길이 있다.
이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