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삼손의 위대한 나귀 턱뼈여!

나귀는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것 같다. 짐을 주로 싣고 다니지만, 어떨 땐 사람을 태우기도 한다. 아벨은 나귀가 왠지 좋았다. 어쩌다 나귀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를 보는 것 같은 푸근함이 절로 느껴졌다.

그런데 유독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나귀 가족 중엔 아벨보다 어린 놈이 한 마리 있었는데, 어른 양들이 이 어린 나귀만 보면 마치 더러운 물건을 본 것처럼 얼른 눈을 돌려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엄마! 어른들은 왜 어린 나귀를 싫어해요?”
어느 날 내가 궁금증을 못 이겨 엄마에게 물었다.
“글쎄, 싫어한다기 보단…..그 어린 놈을 보면 걔를 대신해서 죽은 우리 양이 생각나서 말이야.”
“예? 양이 나귀를 대신해서 죽어요?”
“응, 그랬었지.”

엄만 슬픈 눈빛을 띠었다. 모세 율법이 그렇단다. 가축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모두 제물로 바쳐야 되는데, 다만 나귀는 양으로 대신 바치게 되어 있단다. 나귀 대신에 양을 바치기가 싫으면, 그땐 나귀의 목을 꺾어야 한단다.

아벨이 알쏭달쏭 고개를 갸웃거리자, 엄만 설명을 좀 더 보태주셨다.
“처음 것은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여호와께 바쳐져야 하는데 나귀는 제물로 바칠 수 없는 부정한 짐승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우리 양이 대신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란다.”
헉! 아벨은 가슴이 쓰라렸다. 양이란 참 슬픈 존재구나. 사람 대신에 죽고, 나귀 대신에 죽고…. 근데, 저 어린 나귀는 자기를 위해 양이 대신 죽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어느 날 밤에 비둘기 샬롬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양 우리로 날아왔다. 아벨, 술람미, 아사셀이 모두 샬롬 주위로 모였다. 샬롬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 놀라운 장면을 봤어!”
“뭔데?”
“나귀 말이야.”
“난데없이 나귀는 왜?”

“아벨이 하도 요즘 나귀, 나귀 하길래 나도 관심이 생겨서 그쪽 우리를 한번 가봤는데, 나귀가 글쎄, 해골에게 절을 하며 이상한 주문을 중얼중얼 외는 거야. 아무래도 이상해. 양이 나귀 새끼땜에 죽었다더니 혹시 귀신이 붙은 게 아닐까?”

“뭐?”

모두의 머리칼이 곤두섰다. 아벨이 조그만 목소리로 제안했다.
“내일 밤에 함께 가보자.”

다음날에도 나귀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어리숙한 표정으로 묵묵히 짐을 나르고 있었다. 저들에게 무슨 비밀 같은 게 숨겨져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매일매일 힘든 노동을 저토록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면, 혹시 이상한 힘이 저들을 지켜주고 있는 게 아닐까?
밤이 되자, 다들 울타리 밖으로 살그머니 빠져 나왔다. 샬롬의 안내를 따라 길을 건너 나귀 축사가 들여다보이는 헛간으로 숨어들었다.

한동안 지켜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샬롬! 잘못 본 거 아냐?”

성격 급한 아사셀이 눈을 흘겼다. 아벨도 조바심이 생겨 술람미에게‘돌아갈까?’하며 눈짓을 하는 바로 그때, 나귀 축사 안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엄마 나귀였다. 그녀가 구석의 짚 더미 속을 부스럭 부스럭 뒤지더니 뭔가 입으로 쓰윽 끄집어냈다. 어스름한 달빛에 보니, 그건 다름아닌 해골이었다!

‘앗’하는 술람미의 비명을 아벨이 앞발로 급히 틀어막았다. 축사 안에선 아빠 나귀가 나타나더니 여물통을 가져와 그 안에 해골을 곱게 모셔다 놓았다. 그리곤 새끼 나귀까지 그 앞에 서서 아빠 나귀, 엄마 나귀와 함께 해골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오! 삼손의 위대한 나귀 턱뼈여!”
삼손? 나귀 턱뼈? 아, 이 얘기라면 가축들 사이에 너무도 유명해서 아벨도 잘 알고 있었다.

옛날에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힘센 삼손이 나귀의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였다는 그 사건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턱뼈가 삼손의 그 나귀 턱뼈라도 된단 말인가?
“우리에게도 힘을 주시어 나귀의 위대한 시대를 열게 해 주십시오!”

그러더니 그들은 다같이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들이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이 주문이 끝나자 아빠 나귀가 여물통 앞에 서고, 엄마 나귀와 새끼 나귀는 그 앞에 앉았다. 아빠 나귀가 감정이 북받치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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