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의 법칙이 있습니다.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는 데 최소 21일이 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디지털 디톡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식 개선에서 시작하지만, 문제를 인식하고도 과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과의존을 일으키는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고,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과의존은 다른 중독과 결과는 비슷할 수 있지만 해법은 다릅니다. 다른 중독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지만,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을 똑똑하게 사용하는 것, 곧 건강한 디지털 사용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한 번 결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과의존으로 돌아가는 재발(relapse)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0단계는 우리가 언제든 다시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디지털 과의존을 장려하는 사회
디지털 과의존을 단순히 개인의 의지박약으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복잡합니다. 닐 포스트먼은『죽도록 즐기기』에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한 산업사회의 끝에 등장한 텔레비전이 세상을 안방으로 가져왔고, 늘어난 여가를 채우는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텔레비전은 잠재고객을 만들어 내고 노동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했습니다. 그는 여가를 넘어 사람들을 ‘죽도록 즐기게’ 만드는 미디어의 특성을 비판합니다.
욕망은 보여주는 것을 바라보는 미디어에서 점점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미디어로 발전했고, 스마트폰은 세상을 손바닥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AI가 우리의 욕망을 채워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인비서처럼 식당을 예약하고, 송금하고, 자동차를 호출하고, 옷을 준비하고, 편지와 인사까지 대신해 주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세상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일마저 건너뛰기 쉽습니다. 바로 그 틈으로 재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더구나 디지털 미디어는 자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익을 얻는 구조 속에서 광고와 다양한 콘텐츠가 우리의 사용을 계속 자극합니다. 따라서 재발은 개인의 나약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끊임없이 우리를 디지털 과의존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웰빙의 습관 기르기
10단계의 목적은 디지털 기기를 파괴하거나 디지털 문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을 잘 이해하고 과의존하지 않는 똑똑한 사용, 곧 디지털 웰빙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매일의 점검이 필요합니다. 10단계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도덕적 점검과 회개를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 지속적인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반복적인 점검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경험했지만, 광야에서 넘어졌습니다. 은혜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다시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니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 시간이 줄어들고 디지털 기기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느낄 때, “이 정도면 되었다”는 마음이 들 때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습관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조용해졌을 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발을 막는 첫걸음은 내가 여전히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미루지 않고 즉시 하나님과 타인 앞에서 인정하고 고백함으로써 영적 웰빙을 유지해야 합니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권면합니다.
재발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개 자신의 상태를 축소하거나 숨기는 것입니다. “이번만 그랬다”, “별일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은 바로 앞에서 빛 가운데 행하면 서로 사귐이 있다고 말합니다.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공동체와의 사귐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고백하는 사람을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재발은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미루지 않고 인정할수록 돌아오는 길은 짧아집니다.
끝으로 회복이 진행될수록 자만하기 쉽습니다. “선 줄로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임을 기억하고, 늘 깨어 있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과도한 사용의 징후를 파악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자기 점검과 말씀 묵상을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샌드박스 교회 공동체
그러나 혼자서는 재발의 신호를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과의존은 공동체의 돌봄이 필요한 문제이며, 교회는 디지털 미디어를 대신할 수 있는 공동체 활동을 제공해야 합니다. 교회의 역할은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함께 점검하는 자리입니다. 소그룹이나 믿을 만한 짝과 함께 한 주간의 디지털 사용 습관을 나누면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정죄하지 않고 고백할 수 있는 안전한 자리입니다. 재발했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수치심 때문에 숨는 것입니다. 숨는 순간 회복은 멈출 수 있습니다. 교회는 “또 넘어졌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셋째,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자리를 채울 대안을 제공해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함께 먹고, 걷고, 운동하고, 예배하고, 봉사하는 시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비어 있는 시간이 다시 디지털 화면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삶의 자리를 공동체로 채워 주어야 합니다.
재발에는 대개 신호가 있습니다. 외로움, 피곤함, 분노, 지루함, 불안이 밀려올 때 우리의 손은 자동으로 스마트폰을 향합니다. 문제는 스마트폰 자체만이 아니라 그 직전에 우리의 마음과 감정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는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호는 혼자서는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살펴 주시기를 구하는 동시에, 믿을 만한 형제자매에게 “요즘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 주세요”라고 부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의 신호를 살펴 주는 것이 공동체의 돌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디지털 과의존에 다시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기보다, 넘어져도 숨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난과 수치심 대신 안전하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샌드박스’와 같은 교회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넘어졌다고 해서 수치심과 자기 무가치감에 빠져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도록 돕는 공동체가 있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그 횟수와 지속 시간은 점차 줄어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교회
이번 밀알 바자회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했습니다. 장애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모였고, 서로 나누고 만나고 격려하며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거의 누구도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의미 있고 좋은 일을 위해 모이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며,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는 자리에서는 디지털 과의존이 들어올 틈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내려놓아도 더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그네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네에서 뛰어내리며 샌드박스 위에 수없이 넘어집니다. 하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그네에 올라 또 뛰어내립니다. 샌드박스는 넘어지지 않게 하는 곳이 아니라 안전하게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많이 넘어질수록 아이는 몸의 균형을 익히고 더 안전하게 착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교회 공동체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게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넘어져도 안전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샌드박스와 같은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디지털 과의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발했다고 해서 수치심에 빠져 숨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경험이 쌓일수록 재발을 다루는 힘도 커집니다.
우리 교회가 완벽해서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넘어져도 숨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서로를 정죄하지 않고 지지해 주는 안전한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