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작가의 소설『작은 땅의 야수들』은 2024년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다른 소설 김성종의『여명의 눈동자』나 이민진의『파친코』와 이 소설을 비교해 보면, 결이 같으면서도 뭔가가 달랐다. 뭐가 달랐을까?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경이롭다 김주혜 작가는 9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재미 작가인 김주혜는 1918년부터 1964년까지 배경의 한국 역사를 마치 그 당시에 살아본 사람처럼 600 페이지의 장편소설 데뷔작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6년 동안 집필했다.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듣고 자라면서 한국 역사를 인식하였다. 한국의 비참한 역사를 세계에 알리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놀라운 것은 미술과 고고학을 전공한 30대의 작가 김주혜가 한국의 역사를 그의 작품에서 탁월한 묘사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으면서 한 편의 파스텔 톤의 수채화 같은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작가가 한국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기생’이라는 새롭고,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를 통해서 우리가 한 번도 바라보지 않는 방향으로 한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의 놀라움이다. 기생 옥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호랑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사냥꾼 아버지가 어린 아들 남정호에게 말한다.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절대 호랑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엄숙하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호랑이를 죽이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만이라고. 그리고 그건 호랑이 쪽에서 먼저 너를 죽이려고 할 때 뿐이다. 그럴 때가 아니면 절대로 호랑이를 잡으려 들지 말아라. 알겠느냐?”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제목은 일본인 장교가 한국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나왔는데, 작은 땅에서 거침없이 번성하던 야수들은 한국의 영적인 힘을 상징한다.” “당시 한국의 지도자들은 일제의 호랑이 사냥을 민족 탄압으로 여겨 비난했다. 호랑이가 국민에게 연민의 대상이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한반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야. 야생에서도 직접 한 마리 사냥하고 싶었는데…….”
소설에는 일본군의 만행, 이에 맞선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친일파의 행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주류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험난한 시대를 견뎌내야만 했던 보통 사람들의 생존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 ‘작은 땅의 야수들’이 암시하듯,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서 살아가는 야수와 같은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야수들의 끈질긴 생존을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봐라
9살이었던 소년 남정호가 경성 길거리에서 거지와 소매치기로 삶을 시작할 때 그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소년 남정호의 아버지는 과묵한 사람이었으나, 죽기 전에 그는 아들에게 한 말을 남겼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거라고. (중략) 네 누나와 여동생을 잘 돌봐라. (중략) 네가 이제 집안의 가장이다.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거라.”
“내 아버지의 담뱃갑과 내 어머니의 은가락지. 내 이름과 내 육신을 제외하면, 부모님이 내게 남겨 주신 건 오직 이것들 뿐이었다. 이 행운의 부적 덕분에 나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수년간 이 거친 삶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기근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던 남정호는 이렇게 말했다. “삶을 단단히 붙잡거나 미련 없이 놓아주거나, 그 둘 중 하나를 고를 명확한 선택의 순간이 온다고. 자신은 매번 죽음을 거부하는 쪽을 택해 왔다고 정호는 말했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하게 살아라’
이 소설에서 작가는 파렴치한 일본의 행적에 대해 쓰면서도 더 나아가 시대와 지리를 초월하여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지를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제시한다.
이 소설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풀어낸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현실적인 인물들을 보여준다. 부자였던 김성수, 엘리트 출신이었던 김한철, ‘미꾸라지’라는 별명을 가진 황인수, 기생들 단이, 월향, 연화가 그렇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일본인 이토가 한 말들이었다.
한국의 문화재를 빼돌리던 이토가 옥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 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
“나한테 감사할 건 없고, 그냥 내가 했던 충고나 기억해. 난 이번 금요일에 떠나니까 아마 지금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는 거겠지……. 빌어먹을 전쟁 따위도, 외로움 같은 것도, 다 엿이나 먹으라고 해. 계속 살아남아.”
소설에서 보통 주인공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표한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옥희가 자신을 버렸던 김한철과 나눈 대화 내용에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옥희가 속삭였다.
“지금도 행복하잖아. 모든 걸 다 가졌는데.”
“아니, 자기 사랑은 없는걸.”
이 소설에서 옥희는 전인생에 걸쳐 사랑을 받기 원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기생 노릇할 때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옥희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다. 보통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면 한국의 독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사의식과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내용 중에는 유독 ‘사랑’과 ‘행복’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주제 문장은 이렇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