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철부지 새댁 – 천방지축 에피소드 7가지

킁! 침대, 각방 쓰면 안 돼요
‘쿵’ 잠을 자다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비몽사몽 어둠 속에 더듬더듬 ‘여기가 어디인가?’ ‘쿵’ 떨어지는 소음에 곤히 자고 있던 새신랑은 이내 잠에서 깨어나 묻는다. “What’s wrong? What happen?”


어! 분명히 여기가 내 어릴 적 살던 금산 집 ‘장방’인데? (우리 식구 엄마, 아버지, 5형제가 같이 자던 큰방을 우리는 ‘장방’이라고 불렀다) 분명히 잠잘 때는 얌전히 잔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어느 날엔 윗목에, 또 다른 날에는 이쪽 구석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넓은 방에서 이리저리 험하게 잔다고 엄마가 말해주곤 했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결혼하고 뉴질랜드에 와서 잠자던 나의 정신세계는 1950년대 어릴 적 금산 집 중도리의 기억 속에 잠겨 버린다.


뉴질랜드로 오기 전까지는 침대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나! 아침잠에서 깨어난 로이는 간밤에 “푹 잘 잤다”라는 인사 대신 매우 피곤하단다. 내가 침대 이불을 걷어차고, 부잡스럽게 움직이고, ‘쿵’ 떨어지는 바람에 잠을 설쳐서 아주 피곤하단다. 중간에 깨었다가 다시 자면 될 것을 다시 잠들기 어려워하던 그의 습성은 근무 중 매우 피곤했단다.


드디어 신혼 3개월 만에 내가 선언한다. 나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하니…. 각각 다른 방에서 각자의 습성대로 편한 잠을 자는 것이 낫겠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내내 습관이 되어서 그렇게 했다. 이민 선배분이 내게 조언한다. ‘부부가 각방을 쓰면 이혼의 지름길로 가는 것이다. 절대로 부부는 같은 방을 써야 한다’고 충고한다. “글쎄요?”

처음 보는 기계는 너무 어려워!
퇴근 후 돌아온 신랑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오늘 낮에 세탁기를 만졌냐고 묻기에, “특별히 만진 것은 없고 당신이 하던 대로 파우더 비누를 넣어 단추를 누른 것밖에 없어요.”


1970년대 한국에서 살 때는 손빨래를 하고 살았지 이러한 자동 세탁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하이타이 같은 파우더 비누를 많이 넣으면 빨래가 더 깨끗이 빨아질 것으로 생각했기에 1갑(5kg)을 다 쏟아붓고 단추를 누른 것밖에 없는데, 기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온통 세탁기 안은 하얀 거품으로 꽉 들어차 있고 고장이 났다.


다시 내게 경고한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놀고만 있으라고….” 그리하여 오랫동안 출근 전에 신랑이 빨래해서 널어놓고 가면, 오후에 내가 걷어 들여와 빨래를 개기만 했다.


그 뒤 6개월이 지나자 빨래 기계 다루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신랑의 옷 중에서 양모 스웨터(wool) 여러 벌을 세탁기에 돌렸다. 그러고는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잘 말리니 기분이 좋았다. 앗! 그런데 깨끗이 잘 말려진 양모 스웨터들이 모조리 boy 사이즈로 줄어든 것이다. 이게 뭔 일이람… 뜨거운 물로 세탁기에 돌리면 줄어든다는 그 원리를 몰랐던 것이다. 80kg의 그의 체구에 맞을 리 없는 boy 사이즈 양모 스웨터들은 모조리 폐품이 되어버렸다.

압력솥? “돌아와요. 부산항에~“
한국에서 살 때, 나는 압력솥을 써본 적이 없다. 낯선 부엌 익히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갈 때쯤, ‘오늘은 맛있는 고깃국을 끓여 놔야지….’ 주황색의 압력솥에 고기를 넣고 한참 끓이다 보니 거의 되었는지 딸랑딸랑 스팀 소리가 난다. 뚜껑 가운데 움직이던 딸랑이 꼭지를 억지로 잡아 빼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폭발하는 굉음 ‘펑’ 소리와 함께 튄 고깃국물이 부엌 천장을 뒤덮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바닥은 대충 치우고 닦았지만, 천장은 키가 닿지 않아 난장판이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깜짝 놀란다. 어디 데거나 다친 데는 없냐고….


천정을 닦으며 다시 내게 경고한다. “부디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그냥 아무것도 만지지 말아요.” 이쯤 되니 나도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하니 정말 할 일이 없어졌다. 정원에 나가 오늘은 무슨 꽃이 피었나? 어제는 흰색 꽃, 오늘은 보라색 꽃….


한국 떠날 때 사서 온 조용필의 테이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듣고 또 듣는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꽃 피는 부산항에 아니, 뉴질랜드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Cook Top?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부인이 집에서 놀면 뭐 하나? 신랑을 위해서 맛있는 반찬이라도 해놓아야지….’ 신랑이 요리할 때 곁눈질해서 봐두었던 기억대로 ‘옳지, 요렇게 손잡이(Knob)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가스불이 켜지겠지….’ 그런데 아무리 돌려봐도 작동이 안 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할 수 없이 양념해 두었던 반찬도 그대로 둔 채 신랑이 퇴근 후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듣는 이도 없는데, 혼자 투덜투덜, “내가 한국에 살 때에는 요리는 연탄불에 하거나 조그마한 석유곤로에 했었는데… 여기는 무슨 전기기구가 이렇게나 많지?”


5:00 pm 그가 돌아오자마자 “이게 무슨 냄새?” 휘둥그레진 신랑은 기절초풍 상태다. Gas Cook Top을 살핀다. 온 집안에 가스 냄새가 진동한다. 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몰랐다. 뒤늦게야 그의 설명을 듣고서 알게 되었다. 까딱했으면! 조금만 그가 늦게 집에 왔더라면??? 집 전체가 폭발했을 거라고….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가스의 파워를 몰랐던 철부지? “휴~” 그도 “휴”, 나도 “휴”


다시 그의 경고다. “제발 내가 퇴근 후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빨래도, 요리도, 청소도 모두 내가 할 테니까요.”

재봉틀 “도대체 여학교 때 무엇을 배웠소?“
결혼하고 뉴질랜드에 올 때, 40kg의 몸무게였던 나는 바람 불면 날아가겠다고 할 때다. 어느덧 첫아이를 갖고 보니 슬금슬금 늘어난 몸무게가 65kg이 되었다. 개미허리였던 나는 드럼통이 되어버렸다. 허리에 맞는 옷이 없다.


‘엘레나’라는 일제 재봉틀이 있길래 치마라도 고쳐보려고 낑낑거리다가 바늘만 부러뜨린다. 북실에 끼워졌던 실을 억지로 잡아 뺐더니 실만 더 엉키고 작은 부속이 떨어져 나갔다.


퇴근 후 돌아온 신랑은 또 경고를 한다. “어떤 것도 손대지 말라고 했지요. 왜 재봉틀을 고장 냈어요? 차라리 내가 해줄게요.” 일요일, 날 잡아서 여러 벌의 내 옷 특히 허리를 늘려주고 고무줄을 끼워 주다가 묻는다. “도대체 여학교 때 무엇을 배웠소? 요리? 바느질? 가사 일?” “여학교 때 요리도, 바느질도, 집안일도 안 배웠고, 집에서도 안 배 웠어요. 학교에서는 공부만 했지요.”(특히 시험공부요.)


우리 엄마 왈, “여자는 평생 죽을 때까지 부엌에서 산다. 그러니 일찍부터 부엌일하지 마라. 시집가면 수십 년 밥하고 산다.” “그저 우리 딸은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특히 맏딸이기에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어야 한다.”라고….

골동품 기계 부속들 “그냥 가만히 있으라구요”
아이도 태어나기 전이라서 너무 할 일이 없었다. 옳지! 아내의 역할은 집 안 구석구석 깨끗이 치워 놓는 일이다. 신랑의 살림살이 장롱을 열어보니 서랍마다 지저분한 모양새가 거슬린다.


크고 작은 나사들, 무슨 기계, 연장, 못 등등- 먼지 속에 쌓여 있는 어떤 나사는 녹이 슬기도 했다. 이러한 나사들이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로서는 그 나사들의 쓰임새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지저분한 것들을 다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그리고 깨끗이 씻고 서랍을 말려놓고 보니, 신랑이 퇴근 후 돌아왔다. 그날따라 1주일에 한 번 쓰레기차가 오는 날이라 내가 버린 쓰레기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


깨끗이 청소하고 뽀송뽀송 말려놓은 서랍들을 보고 칭찬하기는커녕 못 마땅해하는 눈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그 이튿날부터 근무 중 점심시간마다 웰링턴 시내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그 부속들을 사러 다녔다고 한다.


그의 기계들은 거의 골동품 수준이라 영국제, 독일제, 오래된 것이어서 그 기계에 맞는 작은 나사들을 다 구할 수는 없었다 한다. 자주 쓰지 않는 기계는 부속들을 빼놓았다가 쓸 때 다시 끼워놓고 조립하는 무슨 이유가 있나 보다. 기계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알 리가 없다. 결국, 내가 버린 부속 나사들을 구할 수가 없기에 많은 기계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기계들이 얼마나 중요한 기계인지 나로선 알 리가 없다.


다시 그의 경고! “제발, 제발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Please. 손대지 말라구요. 그냥 가만히 있으라구요.”


‘아무것도 하지 마라? 뭐하고 시간을 보내지? 같이 대화할 사람도 없고 같이 놀 사람도 없고….’ 마냥 흘러가는 시간이 지루하기만 했던 시절이다.

낡은 종이 문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날도 낮에 할 일이 없다. 심심하던 차에 신랑의 서랍을 열어보니 노르끼리한 오래된 종이들이 있었다. 물론 그 내용을 알 리가 없던 나! 조그마한 활자체로 뭐라 뭐라 영어 글들이다. 지저분해 보이고 해서 이 낡은 종이들을 뒷마당에 있는 화덕에 구겨 넣었다. 종종 이 화덕에 낙엽이나 신문지 등을 태우는 신랑의 모습이 생각났다. “옳지, 나도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깨끗이 서랍 정리를 해 놓아야지.”


신바람이 났다. 낡은 종이들과 오래된 책 몇 권 등을 깨끗이 태워버렸다. 드디어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날따라 내가 차려놓은 저녁 밥상에는 관심이 없는 듯…. 배가 고플 시간일 텐데…. 계속 서랍을 뒤적거려보고 또다시 뒤져보고 뭔가를 찾는 것 같은데 도통 말이 없다. 그날은 조금 더 심각해진 것 같은….


많이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그의 얼굴! 눈치를 챘지만 뭔지 나도 겁이 나서 물을 수가 없다. 그가 무엇을 찾는지? 에 대하여-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몇 달…. 몇 년….
그리고 1992년 12월이 되었다. 우리 식 구가 웰링턴에서 오클랜드로 이사를 할 무렵 금융계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내게 전화를 했다.


경숙이 시집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로이의 오래된 적금용지 문서(원본)를 정원의 화덕에 태워버린 사건이 있다고 – 이제 만기가 되어서 돈을 찾아야 하는데 원본이 없어졌기에 정식 Legal 절차를 밟아야 인정이 된다고 한다.


‘What? 그렇게 중요한 일인데도 왜 나에게는 설명조차 안 했을까?’ 12년간 설명조차 한 번도 안 한 로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보다도 내가 오히려 더 황당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어느 지인에게 한 말을 듣게 되었다. 퇴근 후 웰링턴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로어하트 기차역에서 내려 10분 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이다. 점점 집 가까이 도착할 때쯤이면 “쿵쾅쿵쾅”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은 경숙이 또 무슨 일을 저질러 놓았을까? 제발 큰일이 없어야 할 텐데….’ 점점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터벅터벅 무거워진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고 한다.


‘언제까지 이 여성을 데리고 살아야 하나? 언제쯤 경숙이 제대로 배우게 될까?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할 수도 없고 괜히 결혼했나?’ ‘그냥 살아왔던 대로 나 혼자 싱글로 살았더라면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화로웠을 텐데….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일까? 그래도 잘못한 것일까?’


‘도대체 대학을 나왔다는 여성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뭔가 만졌다 하면 펑펑 사고가 나니…. 언제까지 내가 참고 살아야 하나? 어린애도 아닌데…. 언제가 되어야 경숙이 철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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