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라우토카 병원에서 2년 이상 일하게 되면서 결핵 병동의 일이 제일 새로웠다. 병원 4층의 결핵병동에 우리 전도팀들이 매일 저녁 설교를 했는데 십여 명의 참석자들이 열심히 듣고 기뻐했다.
그중에 병동에 입원한 16세의 ‘자피아’가 예배를 통해 마음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요한복음을 같이 읽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영접한 후 시간이 짧아서 환자에게 퇴원 후에 ‘바’ 교회의 목사님께 세례받도록 권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집에 가면 아버지가 교회에 못 가게 한다고 세례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세례에 관하여 설명해 준 후에 병실에서 세례를 주었고 후에 퇴원했다. 2주 후에 필자는 집 근처의 여집사님과 같이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부친을 만나 딸이 교회를 가도록 부탁했다.
아버지는 허락했고 필자는 결핵 환자는 영양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돈을 아버지께 조금 드렸다. 그 후에 그 집사님의 도움으로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싱가토카 순회 진료에서의 결신
1998년 7월 어느 날에는 순회 진료차 ‘싱가토카’ 진료소를 방문했다. 필자는 진료 후에 병실을 방문했을 때 아주머니인 ‘안질라 데비’가 눈에 띄어 전도를 했다. 예수님을 소개한 후에 동행한 다니엘과 존에게 ‘힌디’ 사영리로 복음을 전하게 하고 필자는 뒤에서 보았다.
그녀는 말씀을 들은 후 예수님을 영접했고 필자가 기도할 때 흐느껴 울었다. 이유를 물으니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매우 기쁘다고 했다.
간밤에 혈압으로 너무 괴로워 힌두교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는데 예수님을 믿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그녀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 주셨다고 하면서 남편이 반대해도 교회에 꼭 가겠다고 했다. 필자는 성경을 소포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오면서 또 한 영혼이 주님을 알게 된 것이 감사했다.
10월의 힌두 축제‘디왈리’로 인한 소음
피지에 사는 인도인 중 80%가 힌두인데 ‘디왈리’라는 힌두들의 축제로 온 피지가 소란스러웠다. 필자는 이 날이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힌두 가정마다 폭죽을 터뜨리며 마당에 제물과 촛대를 놓고 이상한 춤을 추었다.
우리는 새벽부터 들리는 폭음 소리에 깜짝 놀라곤 했다. 다니엘, 존과 함께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소란이 이어져 잠을 이룰 수 없어 모텔에 가서 하루 밤을 지내야 했다.
화상 환자의 오랜 투병 끝에 주님 영접과 교회 출석
우리 과에 화상 환자가 입원했다. ‘라제쉬니’라는 인도인 아주머니가 온몸에 뜨거운 ‘캐로신’ 기름으로 40%가 넘는 피부 화상을 입어 아주 괴로워했다. 입원한 지 4개월이 지난 후 여러 번 이식수술을 했다. 차츰 회복함에 따라 필자는 그녀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지못해 듣는 듯했으나 차츰 관심을 갖게 되어 마태복음 8장까지 읽고 설명하는 가운데 사영리로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녀는 힌두교인이었으나 주님을 영접했다. 그녀는 6개월이 지나 퇴원했고 얼굴에 흉이 크고 근육 위축으로 손가락을 잘 쓸 수 없어 다시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자원봉사로 오는 호주의 성형외과를 통하여 이듬해인 ‘99년 4월에 수술하기 어려운 손가락 부분을 수술받았다. 그녀는 집에 있는 동안 성경을 틈틈이 보았다고 했는데 그녀는 교회에 갈 것을 약속했으나 흉터와 목의 불편으로 당장 교회에 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10월에 스스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해인 2000년 5월에 있었던 ‘쿠테타’로 인도인들에 대한 위험이 있어 가족은 ‘바’ 지역으로 이사했고 주일에는 처음 시작한 ‘라우토카’의 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비록 육신의 고통은 있었지만 영생을 얻은 일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 깨달음과 믿음을 지키는 용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말에 큰 감동이 왔다.
다니엘과 존의 신학교 공부와 뚜이의 새로운 동역자
일 년 가까이 집에서 같이 전도하며 지내던 두 청년은 뉴질랜드의 ‘해밀턴’ WEC 바이블 칼리지로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비자가 거부되었으나 참의원 한 분이 도와주어 허락이 되었고 1년 학비의 도움은 ‘싱가토카’의 김주성 목사와 현지 교회들과 뉴질랜드의 김지헌 목사와 필자가 도왔다.
그 후 두 청년은 1999년 11월에 뉴질랜드에서 1학년을 마치고 방학 중에 필자 집에 이틀을 머물고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1999년 2월에는 피지인 23세 ‘뚜이’가 ‘싱카토카’의 신학교에서부터 우리 집에 오면서 같이 전도하게 되었다.
그는 복음에 열정적인 청년으로 우리 집에서 ‘라우토카’의 야간 신학으로 다니다가 주간으로 옮겨서 신학 과정을 마쳤다. ‘뚜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마지막 학기 시험에는 톱 수준이었고 교회 행사에서 청년들을 가르쳐 좋은 연극을 보여 주었다.
다니엘(Daniel Datt)의 간증
본인은 1978년 2월 가난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에서 돈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0년 선교사이신 ‘빔 씽’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2년 후에 그는 나를 교회 캠프에 초대했다.
캠프 마지막 날 말씀을 나누고 찬양 드릴 때 주님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다가오셨다. 나는 그때 지나간 모든 삶이 스크린 같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죄인인지 보았고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목사님이 내게 다가와 기도해 주셨고 내가 기도를 마쳤을 때 설명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왔다. 1996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나는 피지에서 김주성 목사님의 신학교인 ‘나시까와’ 비전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 후 하나님께서는 ‘라우토카’ 인도인 마을의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을 위한 사역자로 부르셨다. 그 후 우리에게 여러 기적이 일어났는데 병자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치료되었고 그들은 교회에 출석했다.
나는 지금 의료 선교사인 선우형식 목사님 가족과 함께 살면서 계속 인도인 사역을 하고 있다. 나를 친아들같이 대해 주시는 그분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소원은 피지 땅에 있는 힌두교들과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한동 대학의 단기 전도팀 방문
한동 대학에서 황혜리 교수를 필두로 학생 7명과 한 간사와 현지인 한 명으로 모두 10명이 1998년 7월 13일부터 4일간 ‘라우토카’를 방문했다. 이들은 필자의 집과 이웃집에 거처를 정하고 마을과 병원을 방문하며 전도할 때 함께 동행했다.
세 마을에서 28가정을 방문했는데 당장 결신자는 없었어도 예수님에 대해 관심있게 들어 필자가 후에 방문할 계획을 갖게 되었다. 학생들은 관심있는 인도인들의 태도에 감동받았다고 했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