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다니엘선교센터의 꾸준한 쌀 후원
다니엘선교센터 이시장 이은태 목사께서 바누아투의 영세민들을 위해 꾸준히 쌀을 지원해 왔다. 마침 내가 포트빌라에서 사역하고 있었기에 어느 지역 주민들이 특히 어려운 형편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쌀을 구입해 달라고 연락해 오면, 현지 도매상 간부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할인된 가격으로 20kg 포장 쌀을 구매하곤 했다. 덕분에 한두 포대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구매한 쌀은 한국 중고차 시장을 뒤져 엄선(?)하여 들여온 나의 만능 자동차 ‘무쏘’에 싣고 배급 지역으로 가져가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타로, 고구마, 마니옥 같은 뿌리채소를 주식으로 삼는 이들에게 쌀은 정말 귀한 선물이었다.
바누아투의 도로 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돌과 작은 바위들이 길 위에 튀어나와 있었고, 비라도 오는 날에는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다니기 어려웠다. 내 차는 소위 UTE(유틸리티 차량)로, 비록 매우 낡았지만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데는 잔뼈가 굵은 차였다.
한번은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교회를 오갈 때면 근처에 사는 청년들을 차에 태워 함께 가곤 했는데, 어느 날 뒤에 탄 청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야단이 났다. 차를 세우고 보니 차체 뒤쪽은 땅에 닿고 앞부분은 공중으로 들려 마치 덤프트럭처럼 되어 있었다. 청년들은 양쪽 손잡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다행히 모두 무사히 내려 걸어갈 수 있었고, 내 차는 정비소에서 수리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쌀 배달을 할 때는 더 조심해야 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이은태 목사님께서는 아예 2.5톤 화물차를 새로 구입하라며 필요한 비용을 보내 주셨다.
선교지에 보낸 돈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차를 주문하고 나니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일 년에 두세 번 있는 쌀 배달을 위해 새 차를 구입하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업무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진 낡은 차도 자주 사용하는 편은 아니었고 조심해서 타면 큰 문제가 없었다.
한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새 차를 사지 않기로 결정했다. 차량 주문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문의하니, 차를 살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흔쾌히 취소해 주었다. 아마도 중고차 사업을 하시는 교민과 나보다 한 살 위 형님처럼 가깝게 지내온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차를 사 주시려 했던 이은태 목사님께 사정을 설명하며 차값을 돌려드리겠다고 계좌번호를 요청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선교지에 보낸 돈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바누아투 선교 사역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셨다. 이제 이 돈이 어떤 새로운 사역의 주인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얼마 후 교단에서 선교 사역을 담당하고 계시던 로이 목사님께서 함께 한 곳을 다녀오자고 하셨다. 콜만이라는 지역이었는데, 공설운동장 뒤편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걸어 올라가기도 힘든 곳이었다.
그곳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다면 굳이 산 아래에 있는 교회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며 매우 반가워했다. 나 역시 트럭 구입 대신 남겨진 선교비를 이곳 교회 건축에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불도저로 진입로를 내야 했는데, 길이 자신의 밭을 지나가게 된다며 한 주민이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교회 건축 계획은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트럭 구입을 위해 준비되었던 선교비는 콜만 지역 교회 건축에 사용될 예정이었으나 뜻하지 않은 이유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비된 재정을 다른 곳으로 인도하고 계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교비는 포포워 지역의 교회 건축을 시작으로 유치원과 학교 사역까지 이어지는 귀한 씨앗이 되었고, 훗날 한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게 되었다.
천막교회가 변하여 아름다운 교회로
포트빌라 외곽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곳에서 좌측 숲길로 10km를 가면 유치원과 학교가 있습니다”라는 교육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0km는 아이들에게 너무 먼 거리였다. 아이들이 비포장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녀오면 다음 날은 지쳐 결석하기 일쑤였고, 비라도 오는 날에는 아예 등교를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이 먼 지역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어느 날 로이 목사님께서 급히 찾아와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셨다. 큰길을 벗어나 숲길로 3km 정도 들어가니 길가에 작은 집들이 몇 채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중 한 집을 방문하여 도아라(Doara)와 앤(Ann) 부부 장로를 만났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10년 전 한국에서 단기선교팀이 방문했을 때, 작은 교회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선교팀은 “한국에 돌아가 기도해 보겠다”고 말한 후 아무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잊고 지냈는데, 10년 만에 다시 한국인이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당시 몇몇 주민들과 함께 예배드리던 천막 교회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작은 교회가 세워진다면 자신들의 비전인 ‘교회, 학교, 병원’ 가운데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지리적 조건과 여러 상황을 살펴본 결과, 이곳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교회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번 나를 도와 생업까지 미루고 건축 사역에 함께해 준 로토루아의 박송수 집사의 헌신 덕분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침내 완공될 수 있었다. 낮에는 무덥지만 밤에는 제법 서늘한 지역이라 땀을 많이 흘리는 박 집사는 꼭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마땅한 물그릇이 없어 큰 프라이팬에 물을 데운 뒤 찬물과 섞어 조금씩 머리에 부으며 씻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며 함께 한바탕 웃곤 했다.
대형 플라스틱 물탱크가 설치된 교회가 완성되자, 주일마다 식수를 얻기 위해 플라스틱병을 들고 교회를 찾는 주민들이 생겨났다. 주중에 교회를 비워 두지 않기 위해 에타스 교회에서의 경험을 살려 이곳에도 유치원을 시작하기로 했다. 주변에 교육시설이 전혀 없었기에 주민들의 참여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유아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앤 장로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간식을 만들어 나누어 주는 등 열정을 쏟았다. 덕분에 유치원은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초등학교도 세워지는 기적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졸업한 아이들이 진학할 곳이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초등교육 과정이 필요해졌고, 임시방편으로 2부제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한 후원교회를 만나게 되었고, 마침내 초등학교 교실 세 동이 완공되었다. 교실 세 개만 있어도 2부제 수업을 통해 초등학교 6학년 과정까지는 운영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의 후원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기로 했다.
그 후 유치원은 별도의 독립건물로 이전하였고, 초등학교 교실도 계속 증축되었다. 이제는 도아라·앤 부부의 마지막 비전인 병원이 세워질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순종과 작은 결단을 통해 한 지역의 미래를 바꾸어 가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포포워 지역의 교회는 학교가 되었고, 학교는 지역사회의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곳에 병원까지 세워질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