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지 변경으로 한국에 들어와 오랫동안 기도하게 되었다. 두 달 간에 걸쳐 기도로 매달렸는데 이때의 간절함은 혼신을 다한 것이었다. 금식기도 마지막 날에 갑자기 빌립보서 4:4-7절이 떠 올랐다. 말씀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간구하라”는 말씀이었다.
필자는 계속 되풀이하여 감사함으로 간구했고 그 때마다 평강이 찾아왔다. 목사님들과 상의하던 중에 파키스탄과 인도의 문화와 언어가 유사한 나라를 사역지로 택하기로 생각했다. 그 후 인도인이 많이 살고 있는 피지를 가능한 지역으로 보고 1997년 4월 아내와 일주일 동안 방문했다.
피지 소개
피지는 큰 섬인 남부의 비티 레부 (Viti Levu)와 북섬인 바누아 레부(Vanua Levu)로 약 330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국토는 제주도의 십배였다. 경제는 사탕수수 재배로 국가 산업의 1/3을 차지했고, 인구 분포는 2004년에 원주민 56%, 인도인 38%였다. 한인은 800명 이상으로 수바, 난디와 라우토카에 주로 살고 있었다. 언어는 영어가 공영어이고 힌디와 피지 언어가 사용되었다.
피지는 오클랜드에서 북쪽으로 비행시간이 약 3시간 30분이었다. 기후는 연평균 섭씨 25도이고 시원한 시기는 7월 중순이다. 대학으로는 남태평양 대학(USP)이 있고 의대, 상대와 미술대 등이 있었다.
피지의 사역 준비와 바(BA) 병원 진료
필자는 서쪽의 ‘바’(BA)병원을 방문했는데 병상은 60개이고, 의사들은 피지, 인도, 필리핀의 일반 의사들이었다. ‘바’에는 인도인 81%, 피지인 18%로 인도인들이 많아 전도하기에 좋게 느껴졌다. 피지를 사역지로 생각하여 보사부 차관과 상원의원을 만나 비자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곧 서류들을 발송했다.
필자 부부는 7월 15일 피지에 도착하여 일주 후에 정부차원에서 마련한 병원 숙소로 이사했다. 금요 병원 채플에서는 설교를 맡았고 일주일 후에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첫 수술 환자의 주님 영접과 세례식
복음 전하는 일도 주님이 인도해 주셨다. 음경 암환자인 67세 ‘람 더얄’ 인도인이 요도의 암으로 배뇨가 어려워 입원했다. 며칠 후 환자의 음경을 절단하여 여자처럼 앉아서 소변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수술 후에는 병실에서 간호하는 아들과 함께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환자에게 주님을 소개했다. 그는 ‘힌두’였으나 성경을 통해 예수님 만이 구주이심을 설명하여 환자가 깨닫게 되면서 퇴원했다.
그 후에는 우리 부부가 매주 월요일 병원일 마치고 8Km 거리의 집을 방문했다. 몇 달 후에 암이 전이되어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환자에게 세례 받기를 권유했다. 환자는 수락했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협조를 받아 즉석에서 세례를 주었다.
필자는 가족들을 위해서 여러 권의 성경을 주면서 성경 읽기를 권했다. 환자의 가족은 아들 3명, 자부들, 딸들과 손자 손녀 등 25명이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대가족이었다. 우리 부부가 월요일 그 집에 도착할 때에는 손자 손녀들은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며 기다리곤 했다. 환자는 방에 누운 상태에서 온 식구들이 말씀 전하는 것을 들었고 ‘힌디’ 찬송을 부르면서 주님이 이 가정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환자는 세례 받은 지 한 달 후에 소천하여 장례식을 마쳤고 우리 부부는 월요일마다 계속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다. 주일에는 현지 교회에 참석하여 부인, 자부들과 손자 손녀들 10명이 나왔다. 이 때 필자가 가르쳐 준 ‘힌디’ 복음송을 암기한 손자와 손녀들 7명이 특송으로 찬송가를 불렀다. 모든 성도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박수 치며 격려해 주었다.
한국의 서안 복음병원 팀 내원
1997년 8월에는 필자가 한국에서 근무했던 서안복음 병원에서 이건오 원장님이 의료 팀 26명을 이끌고 ‘바’병원을 방문했다. 팀들은 병원 주위와 네 곳의 마을을 다니며 진료하고 전도했고 현지인들은 주님의 사랑을 크게 느꼈다고 했다. 진료는 안과, 치과와 외과 수술로 현지인들에게 봉사했고 팀들의 덕분에 오히려 필자가 이들에게 초대를 받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부채춤을 주었고, 거리에서는 기타 치며 노래하고 무언극을 통해 전도했다. 팀들은 정성을 다하여 봉사를 했고 4일간 1,033명을 진료했다. 필자가 서안복음 병원에서 6년간 일할 때 전도에 큰 힘이 되었던 의료인들을 7년 만에 만나 감개무량했다. 특히 이건오 원장님은 필자가 파키스탄으로도 파송 받을 때 큰 도움을 주었었다.
바(Ba) 시의 찬양 요청
‘바’ 시의 대표는 장애인 학교의 증축식과 농림부의 수로 개관식에 찬송을 불러 주기를 요청했다. 필자는 환자들을 위해 ‘힌디 찬송’을 부르곤 했는데 전도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 가사 내용을 설명한 후에 불렀다.
바(Ba) 병원에서 라우토카 병원으로 이전
‘바’ 병원에서는 많은 환자들로 인해 항상 바빴다. 인도, 스리랑카와 아프리카에서 충원된 세명의 의사가 왔고, 필자는 ‘라우토카’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비뇨기과 환자를 더 보기 위한 것이었다.
‘바’ 병원에서의 일들을 마무리 위해 금요 채플의 설교는 나이제리아 의사에게 ‘람 더얄’ 환자 가족의 심방과 필자가 새로 개척한 ‘땀바 땀바’교회는 평신도 사역자에게 인계했다.
라우토카 병원의 진료와 전도
‘라우토카’ 병원은 400 병상으로 전문의를 포함한 35명의 의사들이 있었고, 피지에서 두 번째 큰 병원이었다. 필자는 비뇨기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와 일반외과가 합쳐진 외과팀에 합류되었다. 여러 진료과로 인해 수술 종류가 많아 생소한 수술도 참여해야 했다.
신장을 비롯한 요로 결석 제거뿐 아니라 뇌손상으로 인한 두개골, 담낭, 맹장, 탈장, 치질, 치루, 편도선 수술과 목에 걸린 생선 가시도 제거했다. 새로 시작한지 두 달이 되면서 외래와 이동진료와 3일에 한 번하는 야간 당직도 했다. 맹장 수술은 처음으로 배운 후 독자적으로 했다.
병원에서는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의사와 간호사를 중심으로 성경 공부를 했다. 필자는 사도행전을 인도했고 때로는 환자 참석자들에게 전도하도록 권면했다. 필자가 출석했던 ‘웨슬리’ 교회의 수요 성경공부 모임에서는 베드로전서를 강의했고 구역원들이 점차 늘었다.
두 신학생의 전도 실습
‘씽가토카’ 지역의 신학교에서 2년 과정을 마친 두 학생을 1년간 전도 훈련을 시키기 위해 필자의 집에 오게 했다. 전도 훈련을 위해 아침에 같이 병원에 나갔다. 병실의 간호사들에게 양해를 얻어 전도하도록 했고 병원의 일이 끝나면 청년들이 전도한 환자들을 다시 방문하여 결신을 확인하곤 했다. 청년들이 방문한 집들은 다시 방문하여 주일 예배로 모시곤 했고 전도한 가정에서 세 명(Kumari, Ashika, Priti)이 교회에 나왔다.
아내도 심방 하는 일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두 청년 외에도 연로한 존 목사님이 힌두 가정을 방문하여 전도 후에 필자와 같이 방문하여 교회로 모셔 오곤 했다. 결핵 병동에 입원한 아주머니(Sushil Lata)는 성경을 같이 나누었고 4복음서를 스스로 거의 다 읽고 퇴원했다.
피지의 라우토카 병원 일
1998년 5월 이후에는 병원에서 목요일에 두팀으로 나누어 수술했다. 우리는 14명의 환자 중에 11명을 수술했는데 퇴근 시간이 되어 모두 퇴근했다. 그래서 당직인 필자가 나머지 세 환자(치질1명과 맹장 2명)를 수술하고 나니 밤 11시가 넘었다. 늦게까지 수술하여 이튿날 아침에 목이 아팠으나 감당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또한 당직하면서 배운 일은 장 폐쇄로 배가 부른 세 경우가 있었는데 장 폐쇄로 3주된 애기는 전날 밤에 위장에 넣은 호수를 통해 해결되었고, 10세된 어린이는 맹장이 터진 것을 수술했으며, 50세 아주머니는 서혜부 탈장 수술로 모두 해결되었다. 새롭게 배우는 것이 피곤해도 즐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