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아기 하나가 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첫 마디가 ‘알렉사’였답니다. 그 당시 서구 사회에서 유행했던 아마존 AI 비서 이름입니다. 처음엔 다들 충격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겁니다. 그 아이 눈에 알렉사는 매일 부르는 존재였을 겁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AI를, ChatGPT를, 어떤 디지털 도구든 물처럼 쓰게 되고 쓸 겁니다. 학자들은 이 세대를 ‘호모 데우스’, 나아가 ‘사이버네틱 세대’라고 부릅니다. 그 아이들은 디지털을 도구로 쓰는 법을 이미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이들 걱정하면서 정작 본인 손에서 핸드폰을 못 내려놓는 바로 그 어른들입니다. 우리가 디지털 유목민, 디지털 이주민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상업 기술은 우리를 표적 삼았습니다.
디지털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이 디지털 고향인 원주민, 아날로그에서 막 SNS 등을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세상으로 건너온 이주민, 그리고 디지털이 필요 없는 세상에 살다가 업무 때문에 컴퓨터를 배우고 사용하며 들어온 디지털 유목민입니다. 알파세대는 원주민입니다. 그런데 베이비부머, X세대, MZ의 상당수,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분들은 이주민입니다. 어느 날 스마트폰이라는 배를 타고 새 세상에 도착한 겁니다.
디지털 이주민이 도착하는 순간, 아주 정교하게 세대별 맞춤 알고리즘이 우리의 돈과 시간을 디지털 세상에 정착하는 대가로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베이비부머 어르신들에게는 건강 정보, 재테크, 종교 콘텐츠로 채운 피드로 디지털에 과잉 의존하게 합니다. X세대에게는 80~90년대 추억 영상과 정치 분노 피드, 향수와 분노가, 그리고 고국의 친구들과의 카톡 속 체류 시간을 가장 길게 만듭니다.
MZ세대에게는 SNS 속 남들의 화려한 일상, 15초짜리 숏폼 도파민 루프가 디지털에 과잉 의존하게 합니다.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를 최대한 오래 플랫폼 안에
묶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머문 시간은 돈으로 환산되어 그들의 광고 수익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착취당하면서도 그것이 재미인줄로 알고 디지털
세상에 정착하는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뇌의 전두엽의 기능이 꺼져 버리는 것입니다. 디지털 유목민인 부모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아이에게 대답하고, 가족들은 식탁에서 서로의 정수리만 바라보며 식사합니다. 디지털 사용 중에 누군가 말을 걸면 반사적으로 “아, 왜!” 하고 신경질을 내는 디지털 이주민의 모습을 가정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장면들을 무례함이나 디지털을 절제 못하는 자기 조절 능력의 부족한 성품으로 설명해왔습니다.
그러나 뇌과학은 다르게 말합니다. 이것은 디지털이 나쁜 내용을 보여줘서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인 전두엽의 변화로 인해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기에 과의존하는 사람은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해지면 세 가지 이상 행동이 반복됩니다. 충동 조절을 실패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는 디지털을 조금만 보려다 새벽까지 보게 됩니다. 또 다른 모습은 평소에는 참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누가 뭐라하면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는 빈도가 커집니다.
둘째는 공감 능력 저하됩니다. 옆사람이 울고 있어도 알림이 더 급합니다. 게임하다가 아기를 굶겨 죽였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을 회피합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조금만 복잡하면 문제 해결을 시작하기 보다는 핸드폰으로 더 깊이 도망칩니다.
이런 이상행동들은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간이 증발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약속 불이행을 하게 됩니다. 아무 이유 없는 분노를 주변 사람에게 표출합니다.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두엽이 과부하를 넘어 전두엽의 기능이 망가진 결과입니다. 이것이 물질 중독과 디지털 과의존 현상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시간은 돈입니다. 그런데 진짜 돈의 문제일까요? 디지털 플랫폼이 우리에게 하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겁니다.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돈으로 바꾼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간은 돈이라고 배웠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유튜브 쇼츠를 보는 1분 1초가 디지털 상 플랫폼의 광고 수익이 됩니다. 그 거래에서 우리가 잃은 게 얼마인지는
계산도 안 됩니다.
돈이란 것은 가치를 교환하는 수단입니다. 돈은 존재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반면 시간은 진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간을 주신 것은 수단인 돈을 벌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사랑하는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그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앉아 있어주는 것, 배우자의 이야기를 눈 마주치며 들어주는 것, 부모님 손 한번 잡아드리는 것. 사랑은 언제나 시간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시간은 돈’이라고 가르쳤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시간을 다르게 설계하셨습니다.시간은 사랑을 담는 그릇입니다.
디지털 디톡스—우리의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돈을 법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부어줘야 할 사랑의 시간, 배우자와 눈 마주쳐야 할 사랑의 시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할 시간입니다. 디지털 디톡스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크기를 넓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나 좀 봐줘’ 하는데, 엄마 눈은 유튜브에 있으면 아이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자랍니다. 배우자가 오늘 힘들었다고 말하는데, 남편은 쇼츠를 넘기고 있으면 그 침묵이 쌓입니다.
디지털 과의존으로 멈춘 전두엽을 생각해 봅니다. 전두엽의 기능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우리 몸의 기관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위한 시간을 쓰지 않을수록 전두엽은 조용히 판단합니다. ‘이 사람에게 공감할 필요가 없다. 대신할 것들이 있다.’ 뇌가 사랑하는 법을 잊어갑니다. 문제 학생은 아이가 삐뚤어져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아이에게 부어줘야 할 사랑의 시간을 디지털 알고리즘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아이를 사랑할 시간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 — 사랑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돈 때문에 우리의 시간을 원합니다. 그건 그들 입장에서 솔직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돈 벌기 위해 플랫폼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관심있는 건 왜 우리의 시간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
니다. 시간을 함께하지 않는 사랑은 공허한 말뿐입니다.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 기계를 버리는 운동이 아닙니다. 알파세대도 디지털 없이 살 수 없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은 인간이 불 없이 살수 없었듯 이제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공기와 같습니다. 진짜 목표는 딱 하나입니다. 디지털이 나의 사랑하는 시간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똑똑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디톡스 4단계에서 꼭 해야 할 일
디지털 디톡스 4단계는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과의존하는 동안 누구에게 어떤 빚을 졌는지 목록으로 적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함께 했어야 할 시간을 핸드폰에 팔아 넘겼다. 영상 하나만 더 보다가 약속을 어겼다. 방해받으면 반사적으로 신경질을 냈다. 밥상에서 눈을 맞추지 않았다. 해야 할 역할을 스마트폰 뒤로 숨겼다. 지적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 주는 말을 내뱉었다. 하나님 앞에 앉아야 할 시간을 쇼츠에 써버렸다.”
이런 고백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관계 회복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피해 목록 맨 아래에 써야 할 가장 큰 항목은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디지털 과의존으로 우리의
생각하는 근육이 빠지고, 수면의 질이 무너지고, 자신과의 약속을 수천 번 어기며 자존감이 조용히 부서졌습니다. 그렇게 망가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에게 정말 미안해. 나의 그 귀한 시간을, 그 사랑을 쇼츠에 팔아 넘겨서 미안해. 이제 그 시간을, 그 사랑을, 다시 나에게 돌려 줄게.”
장사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세대별 소비 데이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알파세대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아이들은 새 세상의 주인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랑할 시간을 알고리즘에게 내어준 우리 자신입니다.
사과와 보상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내 전두엽을 다시 깨우겠다는 선언이고, 알고리즘에게 빼앗긴 사랑의 시간을 되찾겠다는 첫 번째 발걸음
입니다. 디지털 알고리즘은 돈 때문에 우리의 시간을 원합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우리의 시간을 지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