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현재 모옌, 옌롄커와 함께 3대 작가로 손꼽히는 위화가 있다. 위화는 1995년에『허삼관 매혈기』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중국인들의 삶의 어려움과 고된 모습, 슬픈 이야기들을 가정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허삼관은 왜 피를 팔아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생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다 허삼관은 삶이 어려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다. 이 소설은 피를 팔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이 모습이 고단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일 수 있다. 날실 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대주는 일을 하였던 노동자 허삼관이 어느 날 결혼을 하기 전에 이런 대화를 한다.
“피를 안 팔아본 사람은 모두 몸이 부실한가요?”
“이 마을에서는 피를 안 팔아본 남자는 여자를 얻을 수 없지.”
“한 번 피를 팔면 35원(노동자 6개월 월급)을 받는데,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그렇게 많이는 못 벌지.”
허삼관의 인생 스토리에는 슬프고도 짠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와 닮았다. 허삼관의 큰아들 허일락이 사고를 쳤다.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의 머리를 박살내서 병원비를 물어야만 했다. 그래서 허삼관의 집에 있는 10년 살림살이 물건이 다 거덜 나게 생겼다. 허삼관은 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았다.
첫째 아들 허일락이 간염에 걸려 둘째 아들 허이락에게 업혀 집에 오자 아버지 허삼관이 아내와 허일락을 상하이의 큰 병원으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여러 도시를 거치며 피를 여러 번 판다. 피를 파는 곳마다 허삼관이 피를 팔고 온지 얼마 안 된 사실을 몰랐다.
보통 피는 한번 뽑고 3개월 후에 다시 뽑는 것이 가능한데 말이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부성애가 느껴진다. 여기에 독자의 가슴에 울림이 온다. 이 매혈 여로를 통해 아들의 목숨을 구한다. 허삼관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매혈을 통해 해결한다. 결국 그의 인생 여정이란 곧 매혈로 점철된 여로였다.
피=힘=돈의 등식 이 소설에서 피는 돈 나무이다. 그래서 피는 돈이 열리는 나무를 상징한다. 여자를 얻고 집을 짓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 벌었다. 땅을 파서 일하는 것은 거의 굶어 죽지 않을 정도뿐이었다.
작가 위화는 이 힘들고 슬픈 이야기를 마치 농담처럼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이 일을 무겁게 처리하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여 당의 검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 위화는 이것을 피하려고 가볍게 처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허삼관은 “피를 판 지 11년 만에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늙어서 자신의 피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가구에나 칠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실망한다. 집안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기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며 허삼관이 눈물을 줄줄 흘린다.
여기서 마음이 짠하다. 그동안 인간 허삼관은 능청스럽게 피를 팔아 3형제를 키웠다. 피를 팔아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인생은 고단한 삶의 역정의 결정 그 자체
삶이란 무엇일까? 한 편의 서사이다. 마음이 짠한 스토리들을 엮어 놓은 모음집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내용이 희극적으로 끝난다. 허삼관이 흘리는 눈물에서 인생의 격정과 연민의 극한 값을 보여준다.
주인공 허삼관과 아내 허옥란이 같이 승리반점에 가서 돼지 간 볶음과 황주를 먹고 마시는 대목으로 흥청거림으로 마무리한다.
이 소설은 울음과 웃음이 교차하며 반복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허삼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내용이 철이 지난 이야기일지라도 가장 중국적이기도 한 이야기이다. 인간적인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것을 무척 많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비록 물질적으로 빈궁한 시대였지만 그 속에서 삶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위화의 고단함
작가 위화는 소설에서 왜 피를 파는 소재를 선택했을까? 소설『허삼관 매혈기』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몸의 피가 아닐까?
이 당시 중국 노동자의 평균 6개월 월급이 35원이었다. 한 번 피를 팔면 이 돈 35원을 받았다. 그만큼 피가 귀했다. 중국 사람들의 개념에는 피를 파는 것은 영혼을 판다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이 종이에다 글자를 쓴다면, 이들이 글자를 대하는 방식은 아무 종이에다 글을 썼더라도 그 글자가 갖고 있는 소중함 때문에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불에 태운다고 한다. 이런 개념을 생각할 때 피도 같은 흐름이지 않을까?
이들이 살아갈 때, 희망이 없을 때는 어떻게 방향을 찾아가는가? 작가 위화는 ‘중국 사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어떻게 하지? 작가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에서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니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위화는 소설의 내용을 가볍게 코믹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고민이다. 문학의 기본인 인간과 사회가 갖고 있는 위선이라든가 불의, 모순, 이런 것들을 날카롭게 드러내야 하는데 이런 것을 드러내기 어렵다. 정부가 하는 검열의 선을 이 작품에서 작가 위화는 어떻게 암시하고 있는가?
작가 위화는 가족의 이야기로 중국 사회를 풀어나간다. 소설 내용 중에 유달리 가정에서 싸움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한다. 그만큼 가정이 아니라 사회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를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 위화는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글을 써 나간다. 중국에서 피나 빨간색은 중국을 상징한다. 작가 위화는 비판하지 못한다. 비판하고 싶지만 그 경계선에 서 있어야만 한다. 위화는 지금 경계선에 서서 ‘피를 판다는 것’을 당이 인민의 피를 짜내는 것 같은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