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닐 때가 훨씬 좋았어요. 알고 있던 것도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아요.”
장애를 가진 자녀가 21살이 되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 후의 삶은 데이케어 센터나 개인 케어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많은 부모님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마음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도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학교만큼 교육도 케어도 잘해 주는 곳은 없는 듯합니다.
취학 전에 장애 진단을 받게 되면, 일반 유치원에 다니면서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아 유치원 생활을 하게 됩니다. 늦게까지 돌봐주는 유치원의 배려에 부모님들은 오히려 유치원 시절을 그리워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발달이 가장 빠른 그 유치원 시기조차도, 뉴질랜드에서는 무엇보다도 ‘잘 놀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언어치료나 감각통합훈련 등 필요한 치료는 모두 각 가정의 몫입니다. 그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일부 부모님들은 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가서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인지치료, 운동치료 등 온갖 자극을 받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자극을 받은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재정적인 부담은 너무나 크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와 살아야 할 때는 영어교육에 대한 걱정까지 떠안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뉴질랜드에만 남아 있는 아이들은 발전하지 못할까요? 몇 년 전 뉴질랜드에서 장애 진단을 받은 한 아이가 인터넷과 설탕을 끊고, 운동을 늘리고, 다양한 언어·미술·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놀랄 만큼 변화를 겪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아이의 변화에 놀라워했고, 저는 “어머님, 아버님의 노력 덕분입니다.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자란 친구들 중에서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느 곳에 있던지 부모, 아이, 선생님의 호흡이 잘 맞으면 어느 곳에서 살던지 아이들은 변하고 발전을 합니다.
20년 전, 자녀가 장애 판정을 받고 뉴질랜드로 이민 온 한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 가서 예전에 함께 고생했던 다른 장애아를 키운 엄마를 만나 이런 고민을 나누셨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은 악기도 서툴게나마 다루고, 말도 더 잘하고, 여러 기능이 많이 좋아 보였어요. 우리 아이도 뉴질랜드로 오지 않고 한국에서 키웠으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세월이 더 흐르고 아이가 30대를 바라보게 된 지금, 그 어머님은 말씀하십니다. “뉴질랜드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나라가 아이가 죽을 때까지 책임져 주고, 기다려 주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이 나라 덕분에 우리 아이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자녀가 한국의 치열한 입시와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신, 뉴질랜드에서 더 행복하기를 바라며 이민을 결심합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기능의 향상보다는 ‘행복’을 위해 뉴질랜드를 선택한 경우가 많습니다.
뉴질랜드의 느릿한 유치원 시절이 지나고 학교에 입학하면, 대부분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서 배우게 됩니다. 집 앞까지 오는 무료 스쿨버스를 타고 5살부터 21살까지 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나 특수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교육과 적응은 오롯이 부모님들의 몫이 됩니다. 잦은 학교 호출로 직장을 잡지 못하는 부모님도 많으며, 심한 장애로 인해 학교 대신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대학생 시절부터 독립해 살아가는 키위들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21세가 되면 독립을 지원받게 됩니다. 하지만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을 다닌 경우 그나마 독립이 수월하고, 너무 경하거나 너무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독립이 더 어렵습니다.
21세 이후, 어렵고 긴 과정을 거쳐 적응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은 새로운 환경, 즉 레지던셜 홈에서 또 한 번의 큰 도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3~4명의 장애인과 1~2명의 시프트 스텝이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오전에는 씻고 밥을 먹고, 데이 서비스 센터나 교육센터, 커뮤니티 활동(댄스, 음악 등)에 참여한 뒤,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휴식 후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듭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장애 친구들과, 스텝의 보살핌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독립시키고 나서 뒤늦게 자신의 삶을 되찾기도 합니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거나 직장을 얻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잠도 깊이 잘 수 있고, 학교 호출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저는 ‘이제 정말 행복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의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 큰 자녀의 24시간을 여전히 걱정하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끝없는 도전을 계속하십니다.
“선생님의 자녀는 스스로 집을 떠나 결혼도 하지만, 제 아이들은 원하지 않아도 집을 떠나야 하고, 결혼도 못하니 방이라도 예쁘게 꾸며주고 싶어요.” 몇 해 전, 아들을 레지던셜 홈에 보내며 비싼 침대를 사서 보내셨던 한 어머님의 말씀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와서 수많은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저 역시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한층 더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캠프와 소풍, 다양한 활동을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했는데, 그 경험이 뉴질랜드에서 큰 힘이 되었던 듯합니다.
오랜 시간 장애인과 함께 지냈다고 해도,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님의 고통과 사랑, 그 깊은 상처와 간절한 바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그분들의 평안과 위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뉴질랜드의 낯선 땅에서 장애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때로는 외롭고 막막할 수 있지만, 그 길 위에는 반드시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주께서 먼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친히 위로하며, 새로운 힘을 더해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이사야 41:10)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음을 믿습니다.
함께 걷는 이 길에서, 부모님들의 헌신과 눈물, 그리고 사랑의 수고가 반드시 귀하게 쓰일 것이며, 우리 주님께서 한 가정 한 가정마다 친히 찾아오셔서 평안을 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가정 위에 하나님의 온전한 평강과 위로, 그리고 끝없는 사랑이 충만히 머무르길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