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섬의 중심 도시인 Auckland와 남섬의 대표 도시 Christchurch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일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차이는 기후이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시가 지닌 분위기의 차이다. 두 도시는 마치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듯한 감각을 줄 만큼 결이 다르다.
오클랜드는 다양한 민족이 빠르게 유입되고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각자의 색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도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현지인에게 들은 ‘Learn Broken English’라는 조언은 서로 다른 억양과 표현이 뒤섞인 환경을 잘보여준다. 실제로 현지인들조차 다양한 발음과 표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소통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언어에서 조차 그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반면 크라이스트쳐치는 거리 풍경부터 단정하고,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체계가 잡혀 있다는 인상을 주는 도시다. 공공장소에서의 규범이 엄격하게 지켜지며, 작은 행동에도 서로 간섭하고 고쳐주고 신고하는 문화가 배어 있다. 언어 사용에서도 틀린 표현이나 발음을 바로잡아 주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이 두 도시의 대비는 오늘날 다음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유가 될 수 있겠다. 기성세대가 체계와 매뉴얼, 구조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다면 다음세대는 빠른 변화와 다양함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역할을 정의해 간다.
이러한 흐름은 직장 문화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예를들면 전통적인 직함인 회장, 사장, CEO 대신 “Creative Director, Community builder, Storyteller” 처럼 자신이 실제로 하는 일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명칭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위계를 드러내기보다 개인의 정체성과 강점을 표현하는 명칭으로 역할은 더 세분화되고, 더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방향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이 변화는 직장 뿐 아니라, 학교, 교회,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기존의 모습처럼 직분에 따라 감당해야 할 역할이 정해지기보다 각자의 강점과 선택이 중심이 되는 구조다. 더 이상 직함이 책임과 역할을 규정하기보다 개인이 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영역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의사결정의 방식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직위가 높을수록 전체적인 책임과 권한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다음세대는 이러한 부담 자체를 기피하면서 담당하고 있는 영역에 집중하며 전문성과 집중도를 높이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조율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역할은 더 세분화되는 동시에, 그 안에서의 책임과 성과는 더욱 구체적으로 요구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부담을 줄이는 구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는 더욱 높은 수준의 몰입과 전문성을 기대하게 한다. 결국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구조와 직함의 변화만이 아니라, 일의 무게와 책임의 방식, 그리고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세대 간 차이를 연구하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Jean M. Twenge는 저서 Generation Me(나 세대)에서 오늘날 다음세대를 역사상 가장 개인주의적인 세대로 설명한다. 어려서부터 ‘너 자신을 사랑해라. 너는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성장한 다음세대는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표현을 확장시키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반면에 전통적인 사회 규범이나 권위에 대해 존중하는 모습은 약화된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사회적 책임보다 개인의 만족과 권리를 우선시 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실제로 다음세대는 기존 시스템에 저항하고 전통적인 역할에 대한 책임에 부담을 느낀다. 직분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의미와 방향이 분명한 역할을 더 중요하게 느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존의 체계와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기 어렵다. 더 이상 직분이나 정해진 역할, 혹은 기존 시스템에 자신을 고정시키기보다 새롭게 정의해 나가는 태도가 요구된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다음세대의 모습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도움을 요청받아 만난 청년들 가운데 관계 속에서 상처를 경험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 ‘목사’나 ‘지도자’와 같은 직함이 관계를 여는 열쇠가 되기보다 오히려 거리감을 만드는 장벽이 되는 경우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종교적 강요를 할 것 같은 사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사람, 혹은 판단하고 정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부의 인식에만 있지 않다. 때로는 그 직함이 스스로를 특정한 역할 안에 가두며 제한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음세대에게 다가갈 때는 직분과 역할, 익숙한 시스템을 잠시 내려놓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들을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나의 방식이 더 옳고 효율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접근은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 수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대한 자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없이 부족해 보였을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믿음으로 큰 사명을 맡겼다. 예수님의 방식은 통제나 교정보다 지속적인 격려와 기대, 그리고 섬김이었다. 다음세대를 대할 때 역시 예수님이 제자를 대한 모습으로 다가가야 한다. 통제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직분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질서 자체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함께 서는 것이다.
최근 목회자들과의 대화에서 공통적으로 나누어진 고민이 있다. 다음세대에게 주일 예배의 중요성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배에 늦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며, 특히나 헌신의 형태는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특정 교회에 소속될 필요는 없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공동체적 질서와 의례보다 개인의 내면적 의미와 자유로운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흐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인주의 성향을 지닌 다음세대에게 어떻게 교회 공동체의 의미와 질서와 헌신을 전할 수 있을까?
먼저 교회가 직분 중심의 구조 자체를 유지하느라 각자 사명을 가진 성도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교회 본연의 의미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5무 교회가 온다’의 저자는 신약성경의 공동체를 언급하며 초대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계층적 직책 구조 중심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직책 중심의 구조는 성도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일부 직분자에게 책임을 집중시키며, 결과적으로 교회 본연의 역할인 선교적 역동성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 초대교회에는 지도자들이 존재했지만 그 공동체를 위한 기능적 역할이었고, 특정 직분자가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닌 모든 성도가 사명을 가진 주체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음을 설명한다.
분명, 의무와 책임을 동반하는 직책과 구조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각 개인이 구원받은 삶과 연결된 실질적이고도 분명한 사명과 개인과 공동체적 의미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성세대는 강한 영성과 사랑을 기반으로자유로우면서도 질서가 있는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이는 기존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춰 교회 운영에 힘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교회의 몸이 되어 모두가 소리를 내고, 서로를 들으며, 성령의 교제 안에 섬김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모습은 다음세대를 위한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본질적인 모습이다. 다음세대를 향해서는 특별히 구조와 체계 밑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초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도시의 대비처럼, 기존의 방식은 통제와 구조를 통해 안정과 효율을 제공하고, 다음세대의 방식은 다양성과 유연함을 통해 새로운 시도와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질서와 자유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세워져야 할 가치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세대를 이끌어 줘야 하는 대상이나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빚어져 가는 동역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다음세대와 더불어 훈련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공동체로 이끌어 가실 때 하나님의 완벽한 질서와 방법대로 인도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