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디지털 디톡스 3단계 회복의 길: “나한테 왜 그래?”

스마트폰이 삼켜버린 새벽의 억울함
혹시 이런 날이 있나요? 깨보니 새벽 두 시였어요. 잠을 청해도 오지 않아서 그냥 침대에 누워 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볼 게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머리맡에서 손이 먼저 폰을 잡았습니다. 유튜브, 카톡, 인스타, 다시 유튜브. 그러다 시계를 봤습니다. 아침 7시 20분!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하고 이것저것 실수를 합니다. 걱정하는 가족들이 폰 좀 그만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합니다. 그리고 짜증냅니다. “왜 나한테 그래?” 그것이 의지 없는 자신한테 하는 말인지, 가족에게 하는 것인지, 시간에게 하는 푸념인지 잘 모릅니다.


도박 중독을 유발하는 카지노에는 시계가 없답니다. 창문도 없다고 합니다. 도박에 시간이 가는 걸 모르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유튜브 자동재생, 무한 스크롤, 알림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런 원리가 단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세계 최고의 행동 심리학자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디지털을 못 끄게 하는 기술’을 설계했습니다. 그러니 나의 의지력으로 이 기술을 이기려 하면 반드시 지게 됩니다. 이건 싸움이 애초에 공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약한 게 아니라 상대가 너무 강한 겁니다. 그러니 나의 의지력이 약함을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이민자의 외로움과 비어 있는 삶의 자리
뉴질랜드에 이민 오신 분들에게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라 하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폰을 더 많이 보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당연한 행동입니다. 한국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친구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선 한국 소식이 오직 디지털 폰으로만 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은 비행기로 열두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그 외로움은 디지털 콘텐츠를 보면 잠깐 마취됩니다. 그러나 마취가 풀리면 더한 외로움과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의 답이 있습니다. 우리 이민자의 삶이 비어 있습니다. 아무리 디지털 콘텐츠를 봐도 삶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삶의 공허한 빈자리를 채워줄 의미는 ‘관계’에서 옵니다. 우리는 관계가 끊어지는 게 두려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디지털 기술자들은 이 갈망을 이용해 디지털에 계속 머물게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 있는 연결은 SNS를 구경하는 데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결에서 옵니다.

디지털 과의존 인정
‘디지털 과의존’이라고 하는 용어는 2016년부터 ‘디지털 중독’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중독’이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디지털 디톡스 참여를 꺼리게 됩니다. 여기 참여하면 외부적으로 중독자라고 낙인찍히는 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디지털 디톡스 교실을 열면 처음엔 과의존과 관련 없는 분들이 참석합니다. 남편을, 아이를, 또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 배우려고 옵니다. 때로는 강제로 데려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꾸기 원하는 분들은 “나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지 않아요, 충분히 혼자 극복이 가능하다” 말합니다.


사실 “나는 디지털 과의존이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라고 인정하는 것은 디톡스 단계에서 제일 어려운 단계입니다. 자존심이 걸려 있습니다.
‘나는 디지털 과의존이야’라고 말하는 게 창피한 것은 아닙니다. 폰 많이 본다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폰을 적게 보려는 의지력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교묘하게 과의존하게 설계된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입니다.

알고리즘보다 위대한 힘
내 힘으로도 안 되는데 누가 도와줄 수 있냐고 되물으실 겁니다. 사람이 함께 해 줄 수는 있지만 완전한 회복을 돕는 데는 사람의 힘은 부족합니다. 도움은 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분에게 받아야 합니다. 모든 기술보다 뛰어난, 모든 인류보다 뛰어난 그 힘이 나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이것을 더 선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은 하나님입니다. 기술보다 크신 분, 알고리즘 위에 계신 분, 무한 스크롤을 만든 사람들을 만드신 분,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로움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느낄 때는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끼고, 천천히 갈 때, 나의 약하고 부족한 것도 상관없이 받아들여질 때, 관계와 만남에 따스함이 흐르고, 잘못한 걸 아는데도 용서해 주는 따스함을 경험할 때입니다. 이럴 때 심장에 피가 따뜻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광대가 승천하는 그런 순간들입니다. 이 네 가지 가치는 알고리즘이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알고리즘은 빠르고, 강하고, 논리적이고, 무엇보다 기억을 지워버리고 또 소비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논리와 우리의 의지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기술은 우리의 반응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한 문장의 기도가 디지털 과의존 극복의 시작입니다.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용기
이제 우리는 회복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디지털 과의존 극복의 가장 핵심 단계이면서 가장 오해가 많은 단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게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오히려 이런 뜻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다’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내 삶을 운전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핸들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삶은 거창한 결심이나 큰 모임에서 변화를 선포할 때 일어나는 게 아니고 작은 일, 작은 실천에서부터 큰 변화로 이어집니다.

*아침에 눈 뜰 때 폰 대신 이렇게 말해 보세요. “하나님, 오늘 제 시간과 집중을 주님께 드립니다.”

*식사 시간에 폰을 내려놓으면서 이렇게 말해 보세요. “지금 이 사람이 폰보다 소중합니다.”

*잠들기 전에 폰을 보는 대신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오늘 하루 폰한테 빼앗긴 시간이 있다면, 내일은 주님께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하는 3단계는 3일을 못 갑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려고 결심하고 실천한다 해도 어느새 우리는 옛 습관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또 이웃과 연결된 관계 공동체 모임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과의존 회복 모임에서 우리는 따뜻함을 느끼고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디지털 디톡스 모임에서는 단번에 변하라 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해도 된다고 격려받습니다. 나도 그렇다고 서로 인정하고, 의지가 약하고 부족한 것도 상관없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합니다. 관계와 만남에 따스함이 흐르고, 잘못한 걸 아는데도 용서해 주고 기다려 주는 배려들을 경험합니다. 심장에 피가 따뜻하게 돌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입에는 웃음이 머물며 한 걸음 나아가게 됩니다. 공동체 모임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거기서 회복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90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모여 앉는 것, 그게 3단계 실천입니다. ‘나도 그래요’라는 말을 듣다 보면 공감의 거울이 됩니다. ‘나는 과의존 상태야’라고 말하는 게 창피하지 않습니다. 모임이 곧 3단계 훈련입니다. 혼자는 의지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싸우는 건 힘이 듭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내 힘으로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주님과 함께 거주(Being)하면 됩니다. 나는 힘이 없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함께 걷는 겁니다.

우리가 되찾고 싶은 것: 눈 맞춤과 따뜻한 저녁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디지털 과의존을 극복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더 생산적이 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더 규칙을 잘 지켜 모범적이고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밥상에서 가족의 눈을 보고 즐거운 식사를 하고 싶은 겁니다. 배우자가 하는 말에 집중하고 싶은 겁니다. 부모님 집이 따뜻한지 잘 지내시는지 걱정을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겁니다.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은 겁니다.


그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거 아닌지요. 그 따뜻한 저녁 밥상. 그 눈 맞춤. 그 “오늘 어땠어?” 한마디.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지요. 3단계,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그 화목한 식탁을 되찾는 일입니다. 그 따뜻한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부터 가정의 행복을 되찾겠다고 등짝 후려치며 “밥상에서 폰을 끄고 앉아”” 소리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스마트폰을 끈다고 그냥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야 해요. 오늘 저녁 식탁에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신 예수님을 초대하며 귀한 식탁 교제에 폰을 조금 밀어두자고 권해보시면 어떨까요.
“하나님, 이 손에서 폰을 내려놓을 힘은 없지만, 이 식탁에 주님을 초대할 용기는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와 함께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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