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영상을 죽도록 즐기다가 마비되는 영혼
사회비평가 닐 포스트먼 (Neil Postman)은 그의 저서『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라는 책을 통해 문명의 위기를 경고했습니다. 그는 올더스 헉슬리가 예견한 ‘즐거움에 의한 마비’가 인류에게 치명적일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미래 세대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하찮고 자극적인 정보들이 넘쳐나서 스스로 사고하기를 포기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포스트먼이 비판했던 당시의 미디어는 텔레비전이었습니다. 맥락 없이 쏟아지는 영상의 나열이 인간의 논리적 사고를 방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짧은 영상 ‘쇼츠’, ‘릴스’, ‘틱톡’은 그 시대의 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파괴적입니다. 개인의 취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자극에 가장 취약한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쉼 없이 유혹의 꿀을 떨어뜨립니다.
예전에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최소한의 수고라도 필요했지만, 이제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통해 0.1초 만에 쾌락의 바다로 빠져듭니다. 그의 경고처럼, 우리는 단순히 심심할 때 보는 단계를 넘어 ‘죽도록 즐기는’ 중입니다. 디지털 중독으로 우리의 생각의 깊이는 얕아졌고, 긴 글을 읽어낼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이 글조차 디지털 중독에 빠진 이들에게는 끝까지 읽기 어려운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뇌의 변화입니다.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극적 영상을 보면 흥분의 도파민이 분출됩니다. 도파민의 힘으로 우리는 생산적인 일을 할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일어나 일을 하지 않고 앉거나 누워서 영상을 계속 보면 뇌는 그 도파민을 소비하기 위해 더 자극적인 화면을 계속 넘기게 됩니다. 그 자극을 쫓다 보면 어느새 5~6시간이 허망하게 사라집니다. 수많은 화면 잔상에 덮여 내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조차 상실한 채, 하루를 넘어 인생의 남은 날들을 낭비하게 됩니다.
디지털 콘텐츠가 ‘쇼츠’화 되었다는 것은 스마트폰 사용자가 이미 긴 영상을 볼 능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짧은 자극에 절여진 뇌는 깊은 이해와 진지한 관계를 맺기 위한 대화에 집중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되어 갑니다. 영혼 구원의 깊은 갈망은 예배와 성경 읽기를 통해 얻는 하나님으로부터의 평안 대신, 짧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대체됩니다.
디지털 미디어와 신앙의 분리라는 착각
어떤 이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보는 것과 신앙생활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즐기는 것이 신앙에 무슨 큰 지장을 주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중독의 영적 파괴력을 간과한 생각입니다. 우리 마음이 자극적인 영상들로 가득 차 있을 때, 그곳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 자리가 사라집니다.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과 같은 물질 중독의 흔한 증상은 자신을 너무 잘 믿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저 중독자들과는 달라. 나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라는 착각입니다. 디지털 중독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중독’임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교묘함에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멈추고 감정 통제가 안 되며, 목숨과도 같은 시간을 삭제시키며 내면을 갉이 먹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필요할 때만 써요”, “심심할 때 잠깐 보는 것뿐입니다. 언제든 하나님께 예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이 과도한 자신감이야말로 중독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실은 이미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운전 중 멈춰 선 짧은 신호 대기 시간에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손, 소중한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 하면서도 조금만 지루한 대화가 나오면 스마트 화면을 훔쳐보는 모습은 이미 우리의 의지가 마비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회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은 ‘회개’입니다. 하지만 회개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결단이 아닙니다. 회개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진정으로 회개할 마음을 주실 때 비로소 일어납니다. 디지털 중독에서 우리 삶의 회복의 첫걸음은 내가 중독임을 하나님께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짧은 영상 및 디지털 자극에(디지털 중독)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음을 시인합니다.”(12 Steps 1단계)
나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주님, 나는 디지털 중독에 빠졌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이 알고리즘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정직하게 기도하고 고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바로 그 겸손한 시인과 고백의 자리에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내가 나의 무력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의 주권을 잡으시고 중독의 사슬을 끊어낼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영적으로 가장 나쁜 디지털 중독의 폐해는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혼자 있을 때의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자극을 찾지만, 점차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대화의 작은 빈틈을 참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은 늘 액정 너머에 가 있고, 영적인 감각은 무뎌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마음의 성벽’이 허물어진 영적인 비상사태입니다.
성령 공동체: 함께 덩굴을 붙드는 힘
우리는 달콤한 꿀맛에 취해 잊어버린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준엄한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어떻게 하면 살 것인지, 어떻게 죽음의 우물을 기어 올라갈 것인지 찾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히 가르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디지털 디톡스는 단순한 절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주권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꿀과 같은 짧은 영상에 빼앗긴 생각하는 능력과 기도하는 기쁨을 되찾아오는 결단입니다. 그러나 이 결단은 홀로 싸울 때 쉽게 무너집니다. 중독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성령 공동체’입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우리에게는 위에서 구원의 밧줄을 내려주실 예수님과 옆에서 함께 덩굴을 붙들고 있는 같은 처지의 이웃들과 실패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나누고, 디지털 디톡스의 과정을 함께 밟아나갈 때 회복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내가 무너질 때 잡아주고, 내가 길을 잃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주는 형제 자매들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도파민의 노예가 아닌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맑은 영성을 회복합니다. 짧은 조각 영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우리의 뇌 회로는 복구되기 시작합니다. 성경의 깊은 은혜 속에서 안식을 얻고, 멍했던 머릿속이 맑은 묵상으로 채워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