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기본 입장: 편지, 묵시, 그리고 예언
비일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면서 전통적으로 제시되어 온 과거주의, 교회-역사주의, 미래주의, 이상주의를 융합한 수정된 이상주의(상징주의) 해석을 채택한다. 비일에게 해석의 출발점은 요한계시록의 장르 규정이다. 요한계시록은 AD 1세기를 출발점으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주어진 계시이다. 동시에 모든 시대에 반복되는 구속사적 현실을 묵시적 상징을 통해 묘사하며,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예언서로 이해된다. 즉 요한계시록은 편지(epistle), 묵시(apocalypse), 예언 (prophecy)이라는 장르가 결합된 편지 형식의 묵시적 상징 언어로 기록된 예언서이다.
계시록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진 편지이다
이는 그 교회들이 AD 1세기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 실제로 존재했으며, 심각한 영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AD 1세기의 상황, 곧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와 상업 조합의 제의,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 교회 내부의 타협과 배교의 위기, 그리고 이에 대한 요한의 권면과 경고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혀야 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모든 환상과 상징은 일차 수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되었다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단지 과거에 국한된 특수 사례가 아니라 이후 모든 시대에 반복되는 보편적 교회 현실의 원형이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은 모든 시대의 신성모독적 정치 권력을, 황제 숭배는 국가·이념·권력의 우상화를, 교회의 타협과 핍박은 모든 시대 교회의 시험을 상징한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역사 속 특정 사건을 통해 모든 시대를 해석하는 책이다. 마치 바울 서신이 AD 1세기의 특정 지역 교회에 보내진 편지이지만 모든 시대의 교회에 해당하는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요한계시록 역시 시대를 초월한 신학적 진리를 담고 있다고 비일은 본다.
묵시는 상징과 환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드러내는 문학 장르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상징은 문자적 예측을 위한 암호가 아니라, 현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언어이다. 비일에게 상징은 현실을 흐릿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더 깊이 드러내는 신학적 언어이다. 예를 들어, 짐승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치·종교 권력을, 바벨론은 하나님 없는 문명과 체제를, 음녀는 타협한 종교 공동체를, 어린양은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러한 상징들은 한 시대에 한 번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예언으로서의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구약 예언서들과 동일한 예언 전통 위에 서 있다. 성경적 예언의 본질은 미래에 대한 연대기적 청사진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언약적 선포를 통해 성도에게 회개와 인내, 신앙적 충성을 요구하는 데 있다. 동시에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선언이다. 계시록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의 전 역사 속에서 교회와 세상을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선포하는 신학적 선언이다.
즉 교회를 각성시키고 우상 숭배와 타협을 폭로하며, 고난 속에서 인내와 충성을 요구하고 하나님의 최종 승리를 확신하게 한다. 따라서 예언은 “무엇이 언제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보다 “지금 누구 편에 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형성하는 기능을 지닌다. 이 점에서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현재 지향적이다.
시간 이해의 열쇠:“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
비일의 요한계시록 해석에서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는 계시록 1장 19절에 나타난 주님의 명령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 요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논쟁의 핵심은 이 시간에 대한 삼중 표현, 곧 “네가 본 것”, “지금 있는 일”, “장차 될 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요한계시록 전체의 해석학적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많은 해석자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으로 구분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네가 본 것”은 계시록 1장의 환상, “지금 있는 일”은 2–3장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상황, “장차 될 일”은 4–22장의 미래 종말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계시록의 대부분을 재림 직전의 미래 사건으로 한정하는 문제를 낳는다. 비일은 이와 같은 엄격한 시간 분할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계시록에 나타난 유사한 삼중 표현의 신학적 기능
비일은 계시록 전체에 반복되는 유사한 삼중 표현에 주목한다. 계시록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표적 호칭으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이”(1:4, 8; 4:8; 변이형 11:17; 16:5)가 반복된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하여 인간의 모든 역사를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선언한다. 비일은 이 삼중 호칭이 계시록 1장 19절의 구조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해당 구절 역시 단순한 연대기적 분류가 아니라 시간 전체를 포괄하는 계시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문법적으로도 “네가 본 것”은 상위 개념으로서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네가 본 것”은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모두 포괄한다. 즉 다음과 같다. “네가 본 것” = “지금 있는 일” + “장차 될 일”.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요한이 본 계시는 그의 시대에 국한된 현재 사건만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 시작되어 이후 역사 속에서 전개될 사건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계시이다. 이로써 요한계시록은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하는 책이 된다.
특히 계시를 기록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 곧 ‘사 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묘사된다는 점(1:18)은 계시록의 내용이 단지 인간의 역사 인식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왕권에 근거한 계시임을 분명히 한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은 과거만, 현재만, 혹은 미래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요한의 시점에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며,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전 기간 동안 교회가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될 영적 전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모든 시대의 교회가 자신의 현실을 비추어 해석할 수 있는 계시의 거울이며, 이것이 비일이 말하는 구속사적 이상주의의 핵심이다.
보편 언어(universal language)의 사용과 시대 초월성
비일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요한계시록에 빈번히 등장하는 보편 언어의 사용이다. 계시록은 특정 집단이나 한정된 지역을 지칭하는 표현보다 세상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반복한다. 대표적인 예가 일곱 차례 등장하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라는 사중 표현과 그 변형들이다(5:9; 7:9; 10:11; 11:9; 13:7; 14:6; 17:15).
이 표현은 세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보편적 용어로 기능한다. 어린양이 사람들을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자신의 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으며(5:9), 흰 옷을 입은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자들이다(7:9). 이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특정 민족이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동일한 표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두 증인이 죽임을 당했을 때, 백성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가 매장 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11:9). 또한 사탄의 권세를 위임받은 짐승은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받는다(1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복음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14:6). 이러한 보편 언어는 세상이 종말론적 심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의 대상임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러한 본문들을 종합하면, 이 사중 표현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아 종말에 흰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하나님의 백성(5:9; 7:9)을 동시에 포괄하는 표현임이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 이 보편적 언어는 세상의 모든 나라가 종말론적 보편 심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을 구성하는 토양임을 드러낸다.
결국 이러한 언어는 AD 1세기나 종말 직전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반복되는 교회와 세상의 긴장 관계를 반영한다. 이 외에도 “땅의 임금들”(1:5), “민족/족속”(1:7; 2:26), “온 세상”(3:10), “땅에 거하는 자들”(3:10)과 같은 표현들 역시 동일한 보편성을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