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선교사로서의 서원과 부르심

해외에서 36년 이상 체류하면서 전도에 열심을 낸 이유가 있다. 1976년에 강원도 횡성에서 군의관 3년차 근무 중에 의료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였다. 서원하게 된 이유는 1974년 군의관 1년차에 12사단의 DMZ에서 근무 중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비운을 맞은 후에 생겨난 일이었다.

군의관 시절 DMZ에서의 힘든 상황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비상이 결렸고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는 갑자기 전쟁 준비로 힘든 시간들을 맞이했다. 이북에서는 대 이남 방송이 무슨 말인지도 모를 소음으로 들려왔고, 전쟁이 날 것 같아 마음이 떨렸다. 나는 죽을 수 있다는 절박감 속에서 막연히 믿던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님께 “나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군의관 시절 여동생과 함께

나는 죽기 전까지 전도를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휘관과 동료 장교들에게 전도했고 위생병들과는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가르쳤다. 또한 ‘길다호’의 큰 비로 군인들이 방카 제작에 어려움이 왔을 때 부대장이 비 멎기를 위해 기도 부탁을 하여 간절한 기도한 후에 이튿날 비가 멎어 부대장이 기뻐하는 모습도 보았다. 또한 고기가 먹고 싶어 기도했을 때에 연대에서 고기가 들어온 적도 있었고, 사과가 먹고 싶어 기도했을 때 군목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면서 골덴 사과를 가져와 너무 놀란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부대의 여려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할 때마다 해결되어 놀라면서도 믿음이 연약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전쟁은 나지 않았고, 1년 후에 측방 교류에 의해 강원도 횡성의 공병부대로 가게 되었다.

영적 체험 갈망
나의 신앙의 큰 변곡점은 횡성 부대 인근에 있는 교회에 다니면서 일어났다. 나는 1107 야전 공병단에 배속되어 환자를 보았고, 주일에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처음 1년간은 성도 간의 친밀감 속에서 지내면서 영적으로 체험한 분들과 교제를 했다.


2년차 되던 해에는 신앙의 영적 체험을 갈망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몰랐다. 내 소원을 안 어떤 집사가 회개의 기도를 하라고 했으나 어떤 내용을 회개해야 할지 몰랐다.

영적 체험 위한 회개 기도 시작
회개의 기도를 시작한 다음 날 새벽 기도 때에 몇 달 전에 한 장교에게 거짓말한 일이 생각났다. 장교들과는 거의 다 친하게 지냈으나 한 인사 장교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멀리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 장교가 상비약을 달라고 의무대에 왔을 때에 없다고 거절하여 그냥 돌아갔다. 그러나 새벽기도 중에 약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짓말한 것을 회개하며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겠다”고 기도하고 출근하자마자 상비약을 풍성히 담아 그 장교에게 주었다. 그 후 인사 장교와 제대할 때까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간절한 기도 후 방언과 기적 체험
나는 계속 회개를 하면서 성경 말씀을 보며 작은 죄라도 짓지 않으려고 애썼고 주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이렇게 기도한지 50일 째인 1976년 10월 20일 새벽기도 중에 몸이 뜨거워지면서 혀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알 수 없는 말들이 나왔다. 나는 놀라서 혀의 움직임을 멈추려 했으나 혀는 멈춰지지 않았고 계속 소리를 냈다.

남들은 이 현상을 방언이라고 말해 주었고 다음 날부터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이틀은 머리에 전류 같은 것이 흘렀고, 3일째 되던 날에는 머리 정수리가 뚫어지는 느낌이 오면서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떤 날 밤은 교회에서 기도 중에 눈 감은 시야에 환상이 펼쳐지며 하늘 전체가 구름으로 덥히면서 그 구름이 하늘로 올라갔고 동시에 큰 기쁨이 올라왔다. 잠 자기 전에 교회에 와서 방언 기도할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기도하다가 통행금지 전 30분 전에 울리는 11시 반 사이렌 소리가 나서야 일어나 독신 장교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영적 체험 후 선교사 서원
치료실에는 환자들이 며칠씩 입실하곤 했는데 고열로 치료받던 운전병과 같이 예배 드릴 때에 그 사병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다음 날 아침에는 열이 떨어져 퇴실한 적도 있었다. 또한 51 후송 병원의 원목실에 갔을 때에 군종사병이 허리가 아픈 것을 알고 기도했는데 그는 곧 통증이 사라졌다고 기뻐하면서 다음에 다른 부대의 친구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얼마 후에 그 요통이 있는 친구가 와서 기도해 줄 때에 내 손등에 전류 같은 것이 흐르는 것을 느꼈는데 기도 후에 나는 급히 사병들과 부대로 복귀해야 했기에 그 결과를 들을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여러가지 영적 체험을 하면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과 자유함을 느끼며 감사가 크게 넘쳐 하나님께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했고 제대하면서 횡성을 떠났다.

결혼, 전문의와 박사학위 취득, 신대원 졸업과 300명 전도 후 파키스탄 행
모교의 병원인 고대 부속병원에서 1980년 레지던트 3년차에 결혼했고, 1982년에는 비뇨기과 전문의 취득과 1984년 9월에는 고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후에 보라매 병원과 신월동에 위치한 서안 복음병원에서 7년간 피부 비뇨기과 과장으로 환자를 보면서 수술실과 외래에서 전도했다. 그 때 300명 이상이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그 중 297명은 7교회에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총신대학 신대원을 1988년에 졸업했고 서원한지 10년 만에 CCC의 김준곤 목사님의 권유로 파키스탄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 후에 CCC의 도움으로 16명의 의료팀을 이루어 1989년에 CCC와 충현교회 후원으로 파키스탄에 파송되어 카라치에서 선교사 일을 시작했다. 그 후에 현재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23개국에서 진료와 전도를 했다. 다음 호부터는 전도의 실제 상황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해외에서의 선교지 이동 상황
처음에는 1989년에 파키스탄의 선한 사마리아 병원에서 4년 3개월간 사역했고, 1996년에는 인도 북부의 “허버트뿌르” 기독 병원에서 1년, 1997년에는 피지의 세 곳의 정부병원에서 4년 6개월간 진료와 더불어 전도하였고 후에는 교회를 맡아 사역한 후에 2001년에 뉴질랜드에 왔다.

뉴질랜드의 결신자 통계
뉴질랜드에서는 곧 인도 교회를 섬기며 정착하던 중 2005년부터 사영리 복음 책자를 통해 일대일 노방전도를 시작하여 2025년 말까지 20년 간 47개국의 나라에서 840 여명이 결신하였고 작년 한 해 동안은 18개국에서 90명이 결신했다. 가장 많은 결신자의 나라는 중국과 인도였고 이어서 필리핀 키위 한인 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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