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절박한, 벼락같이

그것 믿어지니?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
_박상수 <오늘 같이 있어> 시집 <극야>중에서


그러면, 아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거나 그럴 ‘만두’하네 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과연, 가장 큰 ‘게’ 뭐지 할 수 있다. 먹기 위해 사는지 아니면 살기위해 먹는지에 관해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고 버거워 “죽을래, 살래” 할 정도로 절실하고 간절한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자신의 선입견이나 경험으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추측하려는 확정 증후군이 있다. 경험과 경력으로 경계를 짓는 태도는 변화와 변혁을 싫어한다. 조직과 사람에게 당한 상처는 깊게 자리를 잡고 있어 세상이 무서워 예민해져서 유난히 유난을 떤다. 부정과 부패의 고리가 만연한 부조리한 사회에서 언어와 육체 그리고 돈과 힘의 폭력이 무서워 과민해진다.


사람의 시선에는 무시와 판단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대하는 것이 싫어서 차별에 관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삶에는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라고 이란의 소설가 사데크 헤다야드는 <눈먼 부엉이>의 첫 문장에 썼다.“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라고 <그래도 살아간다>에서 엔젤 티어는 말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라고 한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이나>에서 본다면 나는 행복한지 불행한지. 지금 나는 사느냐 혹은 죽느냐고 여길 정도로 벼락같이 절박하고 절실하며 간절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있는 것을 그대로 두라 아무것도 바꾸지 말라는 스타투스 쿠오(Status Quo)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이를 두고 일상에 머물려는 호모 세덴스(Homo Sedens)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일상에서 변화와 개혁하려는 의지로 나아가려는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도 있다.


사람은 공간과 시간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살길과 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난 살아보려고 했다. 그게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라고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묻는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이는 탈무드가 전하는 잠언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다. 절박할수록 절실할수록 간절할수록 언제나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우물쭈물하다가 때가 다 되어 후회하지는 말자.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마션> 일지기록: 6화성일째, 앤디 웨어, 박아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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