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처음’ 그 아름다운 말

잃어버린 ‘처음’을 찾아서
’처음’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첫사랑, 첫걸음, 첫 월급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에 뭔가 아련히 떠오르는 감동의 단어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처음’이란 말 속에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항해처럼 찬란한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합니다. 새신랑, 새 신부, 신혼, 첫아기, 아이의 첫걸음, 우리 집 열쇠를 처음 쥐던 순간까지, 이 모든 ‘처음’들은 우리 삶에 설렘과 기대, 그리고 영원히 잊히지 않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처음’을 기억하고 떠올릴 때 우리는 아름다운 감동과 웃음을 되찾곤 합니다.

하지만 ‘처음’은 설렘만큼이나 두려움도 동반합니다. 낯설고 모르는 세계 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준비와 어려움이 있는 시작도 있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준비와 고난 끝에 드디어 이루어진 첫 시작은 더욱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처음과 같아, 처음보다 좋아” 이런 말들을 우리는 자주 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인생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언제나 ‘처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감동이 가득한 ‘처음’을 경험하면 소중한 첫 순간의 추억들이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지날 때 힘을 줍니다. 처음이 힘들었다면, 그 시간들이 지나고 찾아온 기쁨들로 인해 어려울 때마다 “이 또한 지나면 넉넉한 추억이 될 것이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힘들지만 웃으며 나아가게 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좋은 ‘처음’이든 어려운 시작이든 무엇이든 ‘처음’은 참 아름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조와 회복의 처음
‘처음’이란 말을 떠올리면 왜 우리는 설레고 기대하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 원래부터 있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 영에 심어둔 ‘말씀’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태초(처음)로 시작하며, 창조의 첫날이 지난 다음 날 아침, 하나님께서는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았더라(아름다웠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처음’을 대할 때, 창조 이래로 우리 영혼에 새겨진 하나님의 그 창조의 기쁨의 마음이 우리에게 떠올라 설레고 기대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라면, 마음속에 기쁨과 설렘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겠죠.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작에는 본능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인생의 ‘처음’이 이렇게 다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살아가면서 처음부터 힘든 시작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38년 된 지체장애자와 한센병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 두 질병은 예수님 당시에 불치병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출발은 모두 저주받은 삶으로 시작하여, 저주받은 삶으로 계속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이들과 같이 불치병을 가진 자나 장애인의 인생의 ‘처음’은 고난과 절망으로 시작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 날의 ‘처음’은 감동과 환희의 아침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며 이들이 고침 받은 그 다음 날이 최고로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유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날이 저물고 아침이 되는 다음날 첫 아침에, 창조된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기적을 경험한 이들도 고침을 받은 그날은 상상도 하지 못한 날이었기에, 회복되고 나서 일어난 일들은 온통 혼란하고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애인들에게 찾아오셔서 장애에서 회복시키셨고, 그들의 주변은 사람들의 환호와 반응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 성전에 들어가 대제사장에게 깨끗해졌다는 진단을 받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누군가에게 이끌려 성전에 가고, 제사장을 기다리고, 여러 검사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온전하다’는 진단을 받는 시간들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기적의 날에 정신없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축하받고 환호하고 눈물 흘리는 가족들의 감격들이 뒤섞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진짜 기쁨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피곤에 지쳐 정신없이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야 비로소 자신의 달라진 모습과 예수님이 하신 기적의 놀라운 순간을 되짚어 보며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군중의 환호도 가족들의 감격 어린 흐느낌도 없는, 정적만이 흐르는 조용한 첫 아침에 예수님의 기적을 묵상하며 맞이했을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다음 날은 회복된 이에게는 모든 처음 것이 다 아름다운 아침이었을 것입니다. 그 기쁨과 그 감격은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센병 환자가 고침 받은 다음 날 첫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옆방에 곤히 잠든 가족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안도와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아침 여명에 보이는 무엇이든 아름답게 보이고, 입에서는 감사의 고백이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기적을 경험한 자는 누구라도 이러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처음’에 보셨던 그 ‘아름다움’이 우리 영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는 단순히 병이 나은 것을 넘어, 인생의 불가능한 문제가 해결된 ‘회복의 첫 아침’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이들의 인생에 어려운 일들이 없지야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다음 날 아침을 생각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었겠지요. 살면서 우리는 주님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 기적의 다음날 첫 아침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합니다. 그런 날 우리는 용기를 내어 주님을 부르는 첫 고백을 합니다. 고통으로 인해 주님을 원망하고 배반하던 과거를 씻어내는 첫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주님만 생각하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는 첫 은혜의 순간들과 같은 ‘영적인 처음’들이 우리 삶의 근본을 흔들어 새로운 길을 열어 줍니다.

밀알: 매일 새로운 기적의 현장
실제로 저희가 섬기는 밀알 장애인 사역은 매일 매일이 새로운 시작, 즉 ‘처음’의 현장입니다. 단장 3년 차이지만 저는 밀알이 모일 때마다 여전히 설렘과 기대로 가득합니다. 자폐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밀알 식구들의 삶은 익숙한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도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 가능한 김밥을 매 주일 먹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김밥 대신 다른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밀알 식구가 생겼습니다.

후원 교회의 음식 봉사자들이 김밥을 준비하면서 추가로 별도의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익숙함의 벽을 깨고 새로운 것을 ‘처음’ 시도하는 아름다운 성장의 징후로 보입니다. 이 작은 변화 속에서 우리는 성장의 용기라는 귀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쏘아 올린 작은 변화는 밀알 모임이 밀알만의 공간에서 벗어나 비장애인이 있는 광장으로 나가 비장애인과 함께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는 식당에 앉아 군중들 속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트램을 타고 복잡한 군중들 속에서 징글벨을 부르기도 합니다.

멀리 떨어진 다른 칸에 앉은 이를 눈짓으로 불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입에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하라고 표현하며, 군중 속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군중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찾을 수 있고, 우리들만의 소리 없는 소통도 해봅니다.

밀알 식구들은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가면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낯설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밀알 식구 중의 한 사람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낯선 화장실에도 처음으로 들어가 봅니다. 변화의 시간을 함께한 봉사자에게 기쁨이 가득합니다.

밀알 아웃팅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늘 기차 탔지?”, “오늘 사진 찍었지?”, “오늘 트리도 봤지?” 하며 표현을 잘 못하던 사랑하는 이가 오늘은 ‘에바다’의 은혜를 입어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합니다. 모두가 처음 보는 이 광경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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