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500호를 맞는 크리스천라이프에게 드리는 시
모퉁이를 돌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모퉁이를 돌면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모퉁이를 돌면
어떤 길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길을 걷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모퉁이를 돌면
여하튼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모퉁이를 도는 것’이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정의(定義)나 비유는 꽤나 많지만 나는 ‘모퉁이를 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딘가를 가려고 길에 나섰을 때 우리가 가는 길은 일직선으로만 쭉 뻗어 있지 않다. 길을 가다 보면 이쪽저쪽에서 모퉁이를 만나게 마련이고 목적지에 가려면 몇 번이고 모퉁이를 돌아야만 한다.
일상생활에서 길을 가다가 흔히 만나는 모퉁이를 돌다가도 때로는 뜻밖의 사람이나 상황을 만나서 놀라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뒤에는 길의 모퉁이를 돌려고 하다가 문득 모퉁이 너머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 궁금한 마음은 때에 따라서 기대하는 마음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두려운 마음이 될 수도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돌던, 아니면 궁금한 마음을 갖고 돌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하고 모퉁이 너머의 무엇인가를 만나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산다는 것은 ‘모퉁이를 도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돌아야 할 모퉁이는 땅 위의 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삶의 길에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삶의 길의 어디쯤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이제껏 돌고 돌아온 삶의 모퉁이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많은 모퉁이를 돌았던 하나하나의 기억을 모두 다 세세하게 기억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누구든지 그중의 몇몇 모퉁이를 돌았던 기억은 돌아보는 그 순간에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고 아마도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지령(紙齡) 500호를 맞는 크리스천라이프
올 11월에 발행된 크리스천라이프가 지령(紙齡) 500호를 맞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창간호가 나온 지 20년 만에 이루게 되는 큰 경사다. 크리스천라이프에 오랫동안 글을 써온 필자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창간호 때부터 지금까지 크리스천라이프의 걸어온 길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500호를 맞게 되는 크리스천라이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날까지 함께 해주시고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크리스천라이프가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물론 아니다.
창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모퉁이를 만났고 그 모퉁이를 돌고 돌다 때로는 모두 포기하고 그만 주저앉고 싶은 어려움도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난관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험난한 길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모퉁이들을 돌고 돌아 500호 발행의 대역사를 일구어 오늘이 있게 해주신 크리스천라이프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나이 든 사람의 기우(杞憂)에 불과하겠지만 500호 발행은 어떤 고지(高地)의 정복이 아니고 돌아야 하는 또 하나의 모퉁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다.
‘Turning the corner’
‘모퉁이를 돌면’을 영어로 표현하면 ‘turning the corner’이다. 여기서 구태여 영어 표현을 불러내는 이유는 ‘turning the corner’라는 영어 표현에는 모퉁이를 돈다는 뜻 이외에도 ‘상황이 바뀌다, 고비를 넘기다’와 같은 넓은 의미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제 500호의 모퉁이를 도는 크리스천라이프는 지금까지의 모든 어려움의 고비를 넘기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니 새롭게 바뀐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살의 나이면 신체적 성장기를 지나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야 할 시기이다. 이제까지도 잘 해오셨지만 500호의 모퉁이를 돌면서 크리스천라이프가 보다 성숙해져서 교민 사회를 비추는 더 밝은 횃불이 되기를 기원한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모퉁이를 돌아왔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모퉁이를 돌아야 할 것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앞에 무엇을 준비해 놓으실지는 몰라도 돌지 않으면 준비해 놓으신 것을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다. 아마도 앞으로 만나는 모퉁이들은 이제까지의 모퉁이들보다 훨씬 더 크고 돌기 어려운 것들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돌아야 한다.
희망봉(the Cape of Hope)
땅에서 길을 가다 만나는 모퉁이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험한 모퉁이가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만나는 모퉁이다. 바다로 돌출된 육지가 배의 앞길을 막으면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육지의 모퉁이를 ‘곶’이라고 한다. 곶은 어떤 의미로는 바다에서 만나는 모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영어로는 ‘cape’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서양과 인도양의 경계가 되는 남아프리카의 희망봉(the Cape of Hope)이다. 곶이 있는 해역은 바람도 세고 암초도 많아 지나가기 어렵지만 항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배든 이 바다의 모퉁이를 돌아가야만 한다.
나는 감히 지금 크리스천라이프가 도달해서 돌아야 하는 500호의 모퉁이를 희망봉(the Cape of Hope)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기적이지만 다시 힘을 내서 이 모퉁이를 돌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바람도 헤치고 암초도 헤치고 다 같이 기도하며 앞으로 나간 뒤 먼 훗날 뒤를 돌아보며 그때 우리가 돌았던 모퉁이가 바로 희망봉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무엇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이 글 처음에 인용했던 졸시(拙詩) ‘모퉁이를 돌면’의 마지막 절에서 ’그 무엇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 무엇’이 무엇일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마태복음 7장 7~8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