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밀알 30년, 럭비공, 그리고 사랑

어떠 해야 한다 보다 함께 걸어온 시간 30년
알글을 쓴다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생각이 떠올라도 자리를 잡기 전에 계속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수많은 생각 속에서 처음 떠오른 생각을 쫓아가 붙잡고, 그 생각이 떠나가지 않도록 얽어매고 옷을 입히며 다듬고 장식하는 과정들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좋은 생각들은 그저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생각들은 기존 지식과 상충하여 한참을 고민하고 옛 생각과 새 생각이 싸우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정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쓰기 중 가장 어려운 글은 사람의 변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누군가의 변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오래 관찰해야 하고, 나의 논리나 당위성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기반해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교육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은 이러해야 한다’, ‘어느 연령에는 발달 과제가 있어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글을 쓸 때 나의 희망사항들을 많이 반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계획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목회를 시작하고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배우는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생각을 하고 자기 환경에 맞게 적응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교육이 환경을 통제하고 습관을 연습시키는 강제성을 수반했다면, 지금 교육은 인간 중심으로, 그 사람 안에 담겨진 것이 발현되도록 자발성을 존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나의 많은 말과 글은 허공을 치는 소리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밀알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이런 기대를 가지고 이렇게 하라’고 하면, 그 말을 절반은 이해하고 절반은 행동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밀알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우리의 말대로 되어지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의도하는 것과는 달리 밀알 식구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 개인의 이해 시간과 범위에 우리가 맞춰 줘야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마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럭비공이 되어버린 축구공을 함께 굴리던 30년
밀알은 가장 어렵다는 사회성 발달을 연습하기 위해, 의사소통이 몸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활동으로 축구와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밀알 단장을 맡고서 교육 이론과 발달 이론들을 통틀어 ‘이것은 이러해야 하고, 저것은 저렇게 될 것이며, 이것은 요렇게 유의해서 해야 합니다’라고 수없이 말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배움은 말이 아니라 축구와 농구처럼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서 배워가는 것을 봅니다.

축구와 농구를 시작하며 ‘이것이 될까?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조차 어쩌면 의미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이들에게 말로 설명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늘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실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는 명분을 자꾸 이야기하는 나를 봅니다. 우리의 시도가 안 될 경우에 나의 실수와 실패를 합리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축구를 잘할 수 있을지 몰랐고, 예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축구공, 좋은 유니폼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열정만으로 여자 선생님들이 하이힐을 신고 잔디 위를 뛰었습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선생님들의 고운 얼굴은 타들어 갔습니다. 그 고생을 했던 선생님들에게 지금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득합니다.

럭비공도 아닌데 축구공은 준 방향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방향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힘은 또 좋아 한번 찬 공을 찾으러 가느라 축구는 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흐름이 끊긴 축구는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이는 축구공이 무섭다고 합니다. 다른 이는 공이 오면 무조건 손에 잡고, 순서대로 놓고 거리를 재고 소리치고 멀리 찹니다. 넓은 축구장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패스를 연습해 봅니다. 한 명씩 주고받는 연습을 해봅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갑니다. 어느 날, 원형으로 공을 주고받기에 성공합니다. 그 어렵다는 원터치 패스를 모두가 성공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 봉사자가 이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 밀알이 축구 정말 잘해요”라고 칭찬합니다.

농구는 오히려 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거리를 재고 슛을 넣으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공을 넣고 한없이 즐거워합니다. 경기를 하려면 패스하고 막고 해야 하는데, 밀알 학생들은 정직해서 비록 게임이라도 다른 사람이 가진 공을 빼앗는 것은 하지 못합니다. 굳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경기 룰을 가르쳐야 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같은 편에게 패스받아 슛을 쏘는 연습은 밀알 참가자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자기 능력만큼 농구공을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남자 선생님들, 뙤약볕에 함께 뛰어준 여선생님들, 손흥민 같은 학생 봉사자와 마이클 조던 같은 학생 봉사자들이 모두 함께 운동을 해 준 결과입니다.

그렇지요 밀알은 사랑이지요
결국 또 글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애써 다시 주제를 붙잡으면 “교육”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 방향으로 같이 가는 사람들이 함께 웃고 나누고 걸어가는 여정 속에서 배워가는 모든 과정이 교육입니다.

밀알이 30살이 되었습니다. 이 30년 동안 밀알이 해왔던 많은 활동이 있었습니다. 어떤 것은 이루어져 왔고, 어떤 것은 애써도 되어질 수 없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30년간 밀알이 진행되어 왔는데 변변한 장애인 센터 하나 없어서 주중에 장애인을 섬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밀알의 섬김의 가장 큰 열매는 지나온 30년 동안 수많은 이의 헌신과 사랑의 열매가 밀알 참가자들의 삶에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삶은 그 끝까지 아무도 모르는 예정입니다. 그래서 다가올 밀알 30년의 교육은 결과보다 방향에 더 마음을 둡니다. 그 방향은 사랑입니다. 결국 밀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사랑 이야기를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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