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성경 속의 비누(be new)

비누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 관심이 있다 보니 인터넷에서 관련된 검색을 종종 하는 편이다.


많이들 공감하시겠지만 인터넷 검색이란 것이 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심오한 ‘잡학 지식의 세계’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때때로 너무 깊이 들어가 입구가 어딘지도 모를 깜깜한 동굴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허겁지겁 기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알게 된 비누를 활용한 잡다한 생활 정보 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
. 가방이나 옷에 달린 지퍼가 뻑뻑해져 잘 움직이지 않을 때 비누를 바르면 보다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다.
.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이나 밀폐된 공간에 비누를 두면, 비누 표면의 미세한 구멍들이 냄새를 흡수해 안 좋은 냄새가 줄어든다.
. 화장실 거울에 비누를 바른 후 마른 걸레로 코팅하듯 닦아 놓으면, 뿌옇게 김이 서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등등등…

듣고 보면 왠지 신빙성이 있고 정말 그럴 듯하다. 필자도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시험해 보시라. 비누의 다른 용도까지는 아니지만, 비누 향이 너무 좋아 작은 조각을 슬쩍 입에 넣었다가 그 닝닝한 맛에 바로 뱉어 버렸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 실제로는 비누 성분 때문에 구토를 유발하고 장기에 부종을 일으킬 수 있다 하니, 아무리 배가 고프고 비누 향이 맛있게 느껴져도 절대 먹지 말고 꼭 피부에 양보하시길 부탁드린다.

어쨌거나 뭐니 뭐니 해도 비누의 본업은 얼굴과 손을 씻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비누를 놓아두는 장소는 욕실의 세면대 위이고, 거기서 우리는 수시로 비누를 사용해 세면(洗面)과 세수(洗手)를 한다. 얼굴은 불순물이 빠져나가 더 샤방샤방, 뽀송해지고, 손에는 묻어 있는 오물과 세균들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길 기대하면서.

지난번 ‘세계 속의 비누’ 편에 이스라엘의 비누 사용에 대한 내용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인터넷 잡학 지식을 검색하는 것과는 반대로, 뭔가 쓸모 있는 조사를 해보자는 심리에서 성경에 ‘비누’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고,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검색해 보았다. 그 결과 개역개정판을 기준으로 ‘비누’라는 단어가 성경에 딱 한 번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구절이 바로 예레미야 2장 22절이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렘 2:22)

성경에서 비누를 찾게 되어 신기하면서도 감사했지만, 그래도 그 많은 성경 전체에 딱 한 번 밖에 안 나온다고?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들어 좀 더 파고들어 보았다. 위 구절에 ‘잿물’로 표기된 단어도 비누와 동일하다 생각하고 검색해 보니, 예레미야 2장 22절을 포함해 신구약을 통틀어 총 5번 ‘잿물’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와… “(민 19:12)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욥 9:30)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사 1:25)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말 3:2)

계속 검색을 하다 발견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구약시대에도 오늘날 막힌 배수구를 뚫을 때 사용하는 ‘베이킹소다+식초’ 같은 조합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잠 25:20)


마음이 상한 자의 분노가 마치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가?

그러다가 시편에 나오는 ‘우슬초’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한 후 회개하며 고백한 노래인데, 그 내용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시 51:7)라는 대목이 나온다. 궁금해서 조사해 보았더니, 마치 우리나라의 창포쯤으로 생각했던 우슬초는 사실 자체적으로는 세정 능력이 없고, 주위에 흔하게 자라는 관목으로 단지 그 모양새 때문에 물이나 액체를 적셔 뿌리는 작업에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애굽 사건에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도 이 우슬초로 찍어 발랐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실 때도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천연 스펀지)을 우슬초에 매어 입에 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우슬초 자체가 세정제는 아니고, 물리적 씻음이나 정결 예식의 도구로 볼 수 있다.

성경에서 비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borith, 보레트)는 ‘깨끗하게 하다, 정결케 하다’라는 동사(barar)에서 나온 단어이다. 그 밖에도 위에서 본 것처럼 잿물이나 우슬초 같은 단어들도 말씀 속에서 씻음을 통한 정결과 깨끗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얼굴과 손의 깨끗함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의 영적 순결과 정결함을 향한 책임과 갈망을 내포한다.

비누와 잿물이 육신을 깨끗이 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하지는 못한다. 예레미야 2장 22절 말씀처럼,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씻으려 해도 죄는 씻어낼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이 비누와 관련된 구절들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더러움, 죄를 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분들이 이미 답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성경에 반복적으로, 때로는 드러내어, 때로는 숨겨진 채 강조되는 메시지. 그 여러 구절 중 하나를 적어 본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그리고 이 구절은 찬송가 252장의 모티브가 되어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성도들에게 애창되고 있다. 내 영혼과 육체, 삶의 찌든 때까지, 인생의 모든 오염에서 우리를 깨끗이 씻어 새롭게 하시는 분. 바로 우리 인생의 비누(be new) 되신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오늘도 우리 모두 Let’s 비누(be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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