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밀알 30년

밀알이 시작된 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이번 10월 11일에는 밀알 건강 하루 카페 겸 바자회를 한우리교회 느헤미아 빌딩에서 엽니다. 이번 바자회는 밀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하고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밀알 가족들의 변하지 않는 순수함
그때의 소년들은 이제 굵은 소리를 내는 아저씨가 되었고, 크리스천라이프 창간호에 나왔던 순수했던 소녀는 숙녀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으면 많은 변화가 있고 가정을 이룬 소식들도 있을 텐데 밀알 식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소년 소녀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웰빙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한결같은 걱정이었던 ‘자녀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서 시작된 그룹홈은 잘 정착되었습니다. 삶의 많은 부분을 그룹홈에서 살뜰히 돌봄 받으며 또 다른 웰빙 가족 형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말에 혈육을 만나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비단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출가하여 다른 집에 살지만, 자녀들이 집에 찾아와 함께 머물고 잠을 자는 그런 시간들은 세상 어떤 행복과도 비할 수 없는 기쁨을 부어줍니다.

그룹홈에서 지내는 어느 밀알 가족에게는 그 행복한 시간으로 가는 중간 역이 바로 밀알 토요 모임입니다. 그러니 밀알 토요 모임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시간이 됩니다. 집에서 부모와 지내는 밀알 가족들에게는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해주고, 존중해주며 대화해 주는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모임이기도 합니다.

밀알의 정체성은 사랑입니다
이런 밀알 토요 모임이 있기까지는 많은 밀알 교사와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밀알 식구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30년 동안 밀알이 이어져 오면서 섬기던 교사와 봉사자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끔씩 만나는 분들 중에 예전에 밀알에서 얼마나 열심히 봉사했는지를 말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고맙고 반가움을 넘어 존경스러워집니다. 이 자리를 빌려 밀알을 섬기고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인생의 한순간이라도 장애인과 함께 숨 쉬고, 사랑하며 머물렀던 분들의 천국에는 정말 좋은 선물들과 보화가 가득 담겨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떤 모임이나 조직이라도 그 활동과 행사에는 처음에 숭고한 뜻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사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 내용과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어떤 이는 밀알이 현재 하고 있는 행사가 진정한 밀알이라 하고, 어떤 이는 처음 밀알이 했던 그때 그 일들이 진짜 밀알이라 합니다. 철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테세우스의 배’ 논쟁으로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에 아주 용감한 영웅 테세우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쳤는데, 그가 돌아올 때 탔던 배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아주 자랑스러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매년 테세우스의 배를 띄워 그의 승리를 기리는 행사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의 나무 판자들이 썩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낡은 판자를 하나씩 빼내고 새 판자로 교체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배의 모든 판자가 새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의문이 제기됩니다. 모든 판자가 새 나무로 바뀌었는데, 과연 이 배는 아직도 테세우스가 타고 돌아온 그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반면에 어떤 사람이 수리를 위해 떼어낸 낡은 판자들을 모두 모아 배를 만들었다면, 이 두 배 중에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어느 쪽일까요?
이 이야기는 ‘진짜’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시간과 함께 ‘나’라는 존재가 변해도 계속 ‘나’일 수 있는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몸속 세포도 바뀌고, 생각과 기억도 계속 변합니다. 어릴 때 나를 구성하던 나의 세포는 이미 없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나’라고 느끼는데, 이 배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과연 계속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밀알의 30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와 봉사자들이 완전히 바뀌었을지라도 밀알이 가진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 존엄을 지키는 정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밀알 건강 하루 카페도 이름은 같지만 장소와 내용이 많이 달라져 왔습니다. 30년 전 봉사했던 분들께는 그 시절 밀알 행사와 취지가 너무 다르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겉모습이 달라지고 장소가 달라졌더라도, 아직도 밀알을 사랑하고 장애인을 지원하려는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 밀알 건강 하루 카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2년 전 밀알의 신임 단장이 되고 밀알 건강 하루 카페를 열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전임 단장님이 밀알 바자회를 잘 운영하신 것을 보아왔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 바자회가 운영되지 못해 노하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정말로 운영할 사람을 어디서 데려오고, 어떤 것을 전시하며, 무엇보다 어떻게 사람들을 함께 모을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당일에 폭풍우가 몰려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연기한다는 광고를 빨리 내보내지 않느냐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밀알 봉사자들보다 더 걱정하고 기도하면서 폭우와 바람을 뚫고 바자회에 찾아오셨습니다. 그해 밀알 건강 하루 카페는 마감을 하면서 모두들 하나님이 하신 기적을 고백했습니다.

지난해는 교회들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밀알 바자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교회와 교민들이 억지로 섬기는 고통을 감안하여 행사를 취소하고 이를 솔직히 알리며 기도와 후원을 요청하였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어 그 전해와 같은 밀알의 재정을 부어주셨습니다. 밀알의 행사의 모습이나 모임의 모습이 달라질지라도 밀알은 밀알입니다. 그리고 밀알에 담긴 장애인을 사랑하는 오클랜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이야기, 승리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습니다.

함께 나누는 웰빙 체험
올해 밀알 건강 하루 카페에서는 밀알 토요학교가 하루를 지내는 모습을 참여하는 분들이 함께 경험해 보면 좋겠습니다. 밀알의 시간표는 영적인 돌봄, 언어치료, 음악치료, 다이버전널 테라피, 아웃팅을 통해 영적·정신적·신체적 돌봄과 성장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런 발달 치료 과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직접 체험해 보게 될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엔진룸’인데, 이번 바자회에서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밀알에는 많은 짐 보따리가 있는데,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다 보니 많은 것을 가지고 다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꼭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엔진룸 장비들입니다.

엔진룸은 발달 장애인들의 신체, 정서, 심리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정철 장로님이 고심하고 만들어주신 작업 치료 도구입니다. 소근육 발달과 같이 어린아이 때 발달 과업을 다 달성하지 못한 채 느리게 발달하는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반복하여 발달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기본적인 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재미를 가미한 활동들이 추가되어 엔진룸이 한층 더 즐겁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참여 기회는 음악 치료입니다. 지난호에도 썼지만, 학생 봉사단과 함께 공명 실로폰의 아름다운 소리와 여럿이 화음으로 공명하는 즐거운 공동체 음악 치료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이버전널 테라피를 체험할 수 있는데,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도구와 추석 전통놀이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놀이 치료는 재미도 있고 발달 치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공동체 게임으로도 좋은 체험 활동입니다. 그 외에 사물놀이 악기들을 배우고 연주해 보는 체험들도 있을 예정입니다.

이번 30주년에는 30주년 기념 펜던트를 만드는데 함께 할 30년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여기 있었다’고 물려주기 좋은 굿즈(goods)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행사에는 먹거리가 빠질 수 없습니다. 밀알을 사랑하는 교회와 단체들이 음식 부스를 맡아 운영해 주실 것입니다.

따뜻한 교제와 나눔의 시간
무엇보다 이번 30주년에는 말 그대로 함께 차 한잔을 나누면서 밀알의 이야기, 장애인의 이야기, 건강과 웰빙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웰빙 치료를 체험하며 교제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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