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선교 여행, 먼저 밟은 이들의 길을 따라

낮선 곳에서의 시간
해발 2천 미터 산골 마을에서 이른 아침의 산보는 신선하기 그지없다. 도심지에서 차로 여덟 시간 달려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을, 이 삼백의 주민들이 이 산 저 산 곳곳에 작은 촌락을 이루고 산다. 만날 소원과 의지가 없으면 평생 대면할 기회가 없을 사람들이다.

한국이나 뉴질랜드가 어디쯤 있는 지 관심도 가져보지 않았을 사람들인데 그 먼 데서 왔다고 소개를 한다. 목사라고 소개를 한다. 자녀가 다섯이라고 소개했는데 산골 젊은(필자보다) 목사는 그 두배인 열이라고 소개를 받는다. 얼마나 따뜻하게 환대하는 지 옛적 고국의 순박한 시골 인심이 그대로 살아있다.

어느 믿는 가정의 혼사가 있어 잔치 자리에 초대되었다. 목사가 당도하여 축사를 하니 그제서야 다들 먹기 시작한다. 말수가 적은 산 마을 교회 목사 곁에 앉아 돼지고기 수육을 맛보는데 별 양념을 안 한 것 같은 데 맛이 기막히다. 동네 인심을 산 것인지 잔치에 초대된 모두가 흥겹다.

대대로 이어진 믿음
지금 교회를 섬기는 목사의 장인이 이 산 마을 교회를 섬겼다 한다. 그가 선교사에게서 복음을 받았고 가정을 새롭게 했고 마을에 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주일 강단에서 전하는 그에게서 힘과 경륜을 함께 본다. 사위는 차분하게 설교하는데 장인은 힘차게 전한다. 누가 여기까지 복음을 실어 날랐을까? 이곳까지 오는 내내 길에서 차가 멈추면 정말 고생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수십 년 전에 누가 여기로 올 생각을 했을까? 필자의 추론으로는 여기보다 3시간 전에 도착했던 그곳에 수십 년 전 서양 선교사가 세운 교회당이 있었는데 그가 이 산 저 산 다니다가 여기로 왔었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 후에 방문한 내가 여기 정도면 여기저기 숨어 있는 산 동네들 방문하기 딱 좋겠다 생각이 들었으니 그럴싸한 생각이라 여긴다. 그가 전한 복음을 믿음으로 받은 장인 그리고 지금은 사위가 믿음을 이어받아 교회를 섬긴다. 이 집의 다섯째 딸이 여덟 시간 거리 대도시 치앙마이에서 필자와 짧게 영어 성경 공부를 했고 그 연유로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채리니 산골 목사의 딸
복음은 빛이 난다. C 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던 이가 추방되어 T 국에 머물면서 산골 아이들을 도우려 나섰다. 그 나라에서 이등 국민인 산족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려는 그의 설득에 반응한 부모들이 있었고 카렌족 채리니도 그 중 한 아이였다. 필자가 그의 사역 현장인 ‘하나님의 집’에서 만난 십수 명의 아이들 가운데 채리니는 빛나는 아이였다. 언어 소통이 되지 않음에도 얼굴에 미소를 달고 있었고 공동체 안에서 늘 자신이 도울 부분을 찾고 있었다. 아이들을 모아 복음의 핵심을 나누려고 강의를 할 때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거기서 막내에 가까웠으나 어른스러웠다. 선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같이 방문한 필자의 셋째 딸이 채리니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한다. 채리니 집이 있는 산골 마을을 방문한다고 들었을 때 내 속에 즐거움이 일었다. 그리고 채리니에게 이어져 온 믿음의 연결고리를 산골 마을의 목사인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외할아버지, 이 마을에 복음을 전파한 이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선교 여행과 다른 여행이 어떻게 다를까
모든 여행이 얼마간의 설렘을 동반하지만 선교 여행이 다른 것은 복음을 선물로 안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 라는 복음 아니겠는가! 이 선물의 소중함을 알기에 전달하는 자도 주의 깊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은 받는 것 주는 것 모두 상대를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전달되어야 한다. 그냥 많이 준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받는 이가 주는 이의 마음과 함께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최대한 자신이 받는 것의 귀중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하기에 비유하자면 복음을 전하는 이가 복음의 빛을 담아 잘 비추는 램프이면 좋은 것이다. 이것은 선교지 방문자가 가져가는 어떤 선물보다 요긴하다. 받는 이들이 얼마간 물질의 선물에 관심을 보이겠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그것을 준 사람의 활짝 핀 웃음과 수일간 함께 지내며 보여준 따뜻한 마음, 성숙한 인격일 것이다.

선교 여행은 길을 내는 작업이다
예수님은 길이시다. 하늘길을 열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 길을 먼저 찾은 이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주님은 모든 민족 천하 만민 땅끝에 이르도록 이 하늘길을 전하도록 제자들을 파송하셨고 지금도 그의 교회를 통해 파송하신다. 선교지를 방문할 때마다 놀라는 것은 먼저 온 이들의 발자국 때문이다. 누군가 불모지에 길을 냈고 그 길로 다른 이들이 꾸준히 왔던 것이다. 처음 길을 낸 사람의 엄청난 수고 위에 다른 이들의 발자국이 더해지고 나중에는 다수가 보다 쉽게 접근하게 된다. 만일 그 지역에 교회가 생겨나고 흥왕하여 스스로 그 지역을 감당할 수 있다면 이제 길이 없는 곳 혹은 미미하여 더 많은 왕래가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

앞의 글들에서 언급하였듯 지구촌에는 아직 복음을 전달되지 않은 미접촉 지역과 그 지역 인구의 2% 미만이 신자인 미전도 종족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여전히 영생을 사모하며 삶의 목적을 구도한다(전3:11). 그러므로 이 영생 길을 아는 자들, 생의 궁극적 목적을 아는 그들에게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상관없을지 몰라도 구원의 길은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가는 길이 어려워도 누군가는 길을 내는 자가 있어야 한다.

선교 여행의 열매
인생은 길을 걷는 여행이고 이 여행 끝에서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어떤 열매일까? 영원을 함께 할 사람들을 남기는 열매다. 많은 여행이 제각기 의미가 있겠으나 선교 여행은 사람을 남기기 위한 여행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인생 살면서 사람을 남기는 열매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겠는가?

수백억의 사람이 자신의 생을 살다 갔고 지금도 수십억의 사람이 자기 몫의 생을 산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인데 이 한 사람인 내가 다른 한 사람의 생에 깊은 영향을 주어도 보람된 생이라 할 수 있거든 나 한 사람을 통해 많은 이들이 영생의 길을 알게 되고 그 영원한 나라를 위해 살다가 영원을 함께 누린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생은 아예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지혜의 보고인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은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발이라 하였고(사52:7) 가장 가치 높은 인생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의 별처럼 빛난 생이라 하지 않았는가(단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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