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April)
_요정(妖精)들의 흩어진 사지(四肢) -NYMPHARUM MEMBRA DISJECTA
세 명의 요정이 내게 와서
나를 떼어놓았다
껍질 벗겨진 올리브 나뭇가지가
땅 위에 뒹구는 곳으로:
밝은 안개 아래의 창백한 학살.
_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
‘요정(妖精)들의 흩어진 사지(四肢)’라는 뜻의 라틴어 제사(題詞)- NYMPHARUM MEMBRA DISJECTA-로 시작되는 이 시(詩) ‘4월’을 읽으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land)’의 첫 구절이 생각납니다. 요정이라면 우리는 동화나 전설에 나오는 깜찍한 모양의 아름다운 존재를 연상하는데 그 요정들의 사지가 흩어져 있다고 하니 참혹한 모습이 연상되며 불현듯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그 유명한 구절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파운드는 1913년에 ‘4월’을 썼고 엘리엇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22년에 ‘황무지’를 썼는데 역시 라틴어로 된 제사(題詞)로 시를 시작했습니다. 그 제사는 소원을 말하라는 신(神)에게 오랜 생명만을 요구하고 젊음을 요구하지 않아 늙어 쪼그라드는 육신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기에 죽는 것이 소원인 쿠마에 무녀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백 세 시대 운운하며 무조건 오래 살기만 원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제사입니다. 그 제사의 끝에 ‘보다 훌륭한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를 위하여’라고 쓴 엘리엇은 선배 시인 파운드를 진정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파운드의 시 ‘4월’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기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황무지’를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여하튼 두 시인이 모두 4월을 잔인한 달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파운드와 엘리엇이 겪은 4월
유럽의 4월은 부활과 재생이 일어나는 봄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1차대전을 전후로 한 20세기 초의 여러 가지 상황은 당시의 유럽 사람들에게,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겨울의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야 할 봄이 진정한 의미의 봄이 되지 못하고 있기에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봄의 한가운데에 4월이 있기에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짖었고, 그에 앞서 파운드는 4월의 자연 속에서 ‘요정(妖精)들의 흩어진 사지(四肢)’와 같은 참혹한 유럽의 모습을 보았기에 이런 시를 썼을 것입니다.
‘세 명의 요정이 내게 와서 나를 떼어(갈라)놓았다’는 어떤 영적(靈的)인 또는 종교적인 인도(引導)처럼 보입니다. 현실 세계를 떠난 어느 초자연적인 곳에 끌려가니 그곳에 올리브 가지가 껍질이 벗겨진 채로 땅 위에 뒹굴고 있습니다. 평화와 승리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의 가지가 껍질이 벗겨져 뒹군다는 것은 서구 문화에서 수치와 패배를 뜻합니다.
새 생명이 움터야 할 봄의 한중간에 있는 4월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창백한 학살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더욱 극적인 표현은 ‘밝은 안개’입니다. 보통 어둠과 모호함을 상징하는 안개를 ‘밝은 안개’라고 한 까닭은 4월의 안개가 봄의 안개이기 때문입니다. 겨울 안개라면 어둠과 추위를 몰아오는 죽음의 안개지만 봄의 안개는 햇살과 따뜻함을 몰아오는 생명의 안개입니다. 그런 봄의 안개 아래 껍질 벗겨진 올리브 나뭇가지가 뒹굴고 있었으니 학살의 참상으로 보인 것입니다.
‘창백한 학살’의 ‘창백’과 ‘밝은 안개’의 ‘밝은’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4월에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당시 유럽의 상황을 파운드가 극적인 언어의 그림으로 표출한 시가 ‘4월’입니다.
2025년 한국의 4월
파운드나 엘리엇이 겪어야 했던 4월을 생각하며 요즘 한국의 4월을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의 4월은 꽃피고 봄바람 따사로워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평화로운 달인지요?
작년 12월 계엄령이 내려졌다 불과 몇 시간 만에 해제되었지만 대통령이 탄핵당했습니다. 그 여파로 그렇지 않아도 분열되어 있었던 나라가 완전히 두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거리마다 세워진 플래카드에는 탄핵 반대와 탄핵 인용을 외치는 읽기에도 섬찟한 구호가 바람에 휘날렸습니다. 어느 편의 구호나 분열된 나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주중에도 도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시위를 벌였습니다.
날이 가면서 이들 갈라진 두 편은 어느덧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고 또 갖고 있는 의견을 합법적 수단에 의해 표명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일인데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은 갈림의 골이 깊어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정치가들의 책임이 큽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명분은 나라를 위한다지만 나라보다는 권력을 잡기 위해 순진한 국민들을 이용하였기에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입니다.
거리를 휩쓰는 시위 군중과 바람에 흩날리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그 옛날 4.19를 회고하게 됩니다. 지금과 달리 그때의 군중들은 모두가 한 편이었습니다. 학원을 뛰쳐나와 시위에 참가한 어린 학생들로부터 생업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온 일반 시민들까지, 그리고 나중엔 이들을 제지하던 경찰과 군인들까지 하나가 되어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4.19가 성공한 이유는 바로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민 모두가 진정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뭉쳤기에 잘못된 정치와 모리배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바로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1960년대엔 우리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고 잃을 것도 없었기에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 의(義)를 위하여 항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거는 성공했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국민소득 백 불이 안 되던 그때보다 무려 삼백 배가 넘는 삼만 불이 넘었으니 그걸 움켜잡고 지키려고 의(義)도 팽개치고 나라도 팽개치고 내 가진 것에 유리한 편에 서기에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가 빨리 헌법재판소에서 올바른 선고가 내려져 정국이 안정되기를 바랐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예상보다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늦어져 국민들은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지난 4월4일 선고가 있었고 결과는 대통령의 파면이었습니다. 헌정사상 두 번째의 대통령 파면이었고 이유야 어쨌든 대한민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불행한 오점이 찍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헌법재판소 앞에서 많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군중들의 모습은 완전히 극과 극이었습니다. 탄핵이 기각되기를 기다리던 군중들은 땅을 치고 탄식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탄핵이 인용되기를 기다리던 군중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서로 끌어안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갈라놓았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난다고 이 사람들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어느 편이 옳고 어느 편이 그른지는 훗날 역사가 알려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갈라진 상태가 계속되면 안됩니다. 정녕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대로’가 계속되면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사람들이 둘로 갈라지고 2차대전 이래 가장 놀랍게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한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4월은 진정 ‘잔인한 4월’이 될 것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나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다 같이 뭉쳐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더 이상 국민들을 갈라놓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국민들도 나의 사사로운 이익을 떠나 누가 정말 나라를 위한 정치인인가를 구분하고 표를 던져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