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배달의 가족, 독수리 오형제
“와우!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이 20년이 됐다고? 축하축하… 그럼 우리가 크리스천 라이프를 20년 동안이나 배달했단 말인가? 흔한 말로, 이 일을 시작한지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니…”
우리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다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믿어짐은 주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심으로 주가 주 되심이 믿어지듯이, 은혜 아니면 과연 지금껏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감사가 절로 나온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라이프를 배달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지가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작과 변화
우리 가족이 선교지에서 뉴질랜드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현재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오클랜드 동쪽인 보타니에서 한 한인 목사님이 키위 교회를 통해 자매 교회를 개척하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사역자가 필요하다고 건너 건너로 연락이 왔다. 선교지에서도 영어 한 문장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해서 엄청 헤매던 때이고, 둘째를 출산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던 터라 감사함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그래도 언제 어디로 또 보내실지 알 수 없어 큰 가방 하나를 풀지 않고 늘 지켜만 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주하기를 바라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인도하셨듯이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당장 보장할 수 없는 미래였지만 하나님은 그분만의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내시었다.
Wave of the Spirit Church의 담임 목사님과 교회를 처음 방문한 때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Commercial지역에 위치한 건물은 겉으로 봐서는 교회로 보기 힘들 정도로 비즈니스로 빼곡했다. 처음 방문한 교회 내부 또한 일자로 가지런한 의자 배열이 아닌 야외 바베큐 의자 세트와 키가 높은 가스 난로를 놓아 근사한 카페를 연상케 했다. 마치 예배를 카페에서 드리는 것 같이 운치가 있어 보였다.
백인인 담임 목사님은 검정 머리를 금발처럼 노랗게 염색을 하고 메트릭스에서나 나올 법한 거의 바닥을 닿을 정도의 긴 검정 가죽 롱코드와 함께 빨간 양말을 신으셨다. 같은 하늘 아래 오클랜드이지만 이렇게 또 낯선 선교지에서 오전에는 모교회에서 영어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우리를 초빙한 성령의 물결 교회에서 한인 담임 목사님 부부와 몇 되지 않은 한인 성도들과 함께 한국어 예배를 드렸다.
전도사로 청빙을 받았지만 장거리이다 보니 주일만 섬겨 달라고 부탁받은 터라 처음 몇 주는 그렇게 주일만 출석을 했다. 하지만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언제나 일이 늘면 늘었지 절대 줄지 않는 법. 그렇게 수요일 저녁이 되고 금요일 저녁이 되면서 새벽예배까지 가게 되었다.
오며 가며 차에서 잠들기 일쑤인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새벽과 밤 늦게 잠든 아이들을 깨우기가 미안해 큰 아이는 아빠가, 갓난쟁이는 엄마가 이고 지고 나르는 일을 거의 1년 가까이 할 무렵, 크리스천라이프가 창립이 되었고, 각 지역별로 각 교회 교역자들이 돌아가며 배송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선교지를 오가며 벌써 몇 번째 학교를 옮겼는데 초등학교 때 거의 1년에 한 번은 전학을 다닌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많은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자녀가 겪는 아픔 중 하나이겠거니 하겠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아프고 후유증이 크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겪는 어려움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지금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20년 동안 본지 단독 배달한 가족의 역사도 돼
다시 둘째가 배밀이를 할 즈음인 것 같다. 이른 아침으로 기억한다. 크리스천라이프 창간 당시 발행인 이현모 장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러 교회가 배송을 하다보니 차질이 잦게 생기는 모양이었다. 장로님은 우리가 단독 배송을 해 주길 제안하셨다.
전화상으로 남편과 상의하고 답을 드리겠다 했지만 단독 배송은 이미 내 마음에 사랑의 화살을 쏘아 박았다. 당연히 흔쾌히 기꺼이 남편도 동의하겠지만 남편과의 의논은 형식이고 설령 반대하더라도 몰래 혼자 해 보려고 꿍꿍이로 생각했다. 역시 남편도 동의, 그리하여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의 단독배송이 20년 배달 가족의 시작이 된 것이다.
배달의 가족 독수리 5형제
어릴 때 시간을 기다리면서까지 재미있게 보았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내게는 ‘독수리 5형제’ 라는 만화영화이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이 5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가족이 꼭 독수리 오형제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 미팅을 하게 되면 제목을 ‘독수리 오형제 미팅’으로 했더니 아이들이 묻는다. 오래된 화면을 보여주며 독수리 오형제가 어떻게 지구를 지켜내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이 이름을 붙여 나 하나가 아닌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가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크리스천라이프를 배달한다.
독수리를 박제나 사진과 영상으로 보았어도 실제로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만화도 재미있게 보았고 말씀에도 등장하는 독수리는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최근에 독수리에 대한 생각을 달리 먹게 되었다. 독수리는 높게 날 수 있고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그래서 나는 타조말고 날아다니는 독수리가 제일 크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매섭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하지만 독수리의 몸집은 실제로 작다고 한다. 독수리의 힘은 큰 날개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 40:31) 라고 한 것과 같이 그 날개의 힘으로 높이 날아 쉬지 않고 바다를 한 번에 건널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처음부터 5명은 아니었다. 독수리의 두 날개가 힘의 근원이듯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의 지체, 한겹줄은 약하고 작으나, 독수리의 날개 힘처럼, 장수의 화살처럼 자녀를 통해 그의 힘을 우리에게 더해 주셨다.
자녀들이 어리고 약할 때는 ‘독수리 오형제 합체’가 쉬웠다. 왜냐하면 혼자의 힘이 약할수록 합체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독수리들은 크리스천라이프 배달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신문이 와야만 한인마트를 갈 수 있었고, 동쪽에서 처음 한인마트를 간 날도 크리스천라이프를 처음 배달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다른 데 있었다.
꼬맹이들이 부모를 따라 신문배달 온 것을 본 맘씨 좋은 사장님들은 사탕도 쥐어 주시고, 과자도 주시고, 안아도 주시며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함께 기뻐해 주셨으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었을까…
가장 아름다운 청년의 나이, 비상하는 20세
20년 동안 크리스천라이프 배달을 시작하면서 새 어린 독수리도 태어나고 자라서 이제는 어엿한 청년 독수리가 되었다. 한 마디로 크리스천라이프의 시간과 함께 발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종이 시대에서 e-book으로 바뀌는 시점에 코비드까지 합세한 이유로 한인마트도 변화무쌍함을 겪는 것을 보았다. 보타니, 호윅, 파쿠랑아 지역에 거의 십 여개의 한인마트가 이제는 서너 곳으로 줄었다. 처음에 이 곳 동쪽에만 거의 천 부를 배달했다. 배달할 신문을 받으러 시티 사무실에 갈 때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카시트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놓고 사무실 가까이 주차할 곳을 찾다 결국 불법주차로 촌각을 다투며 2층에 있는 사무실을 몇 번 오르락 내리락하며 미션파서블 영화같은 경험을 여러번 겪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정말 그날은 최악의 날이 되곤 했다. 비가 오면 몸은 둘째 치고 신문이 젖는 것은 다반사였다. 뉴질랜드의 바람은 왜 그리 드센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엉망으로 만드는가 하면 정말 거짓없이 사람이 종이를 한 장씩 흩날리듯 신문 한장 한장을 날려보내 그 상황을 수습하느라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받아 온 신문을 각 교회별로 수를 세어 묶음을 따로 하고 마트에 갈 것을 분류하여 여러 한인마트에 가져다 놓으면 바로 전에 있었던 일들은 온데간데 없고 신문을 한 부 한 부 가져가는 손들만 보였다. 만약 이런 악재에 더해서 배달을 무사히 잘 하고 있는데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면 심경의 변화가 말이 아니다. 그래도 기도로 툴툴 털어본다.
이와 같이, 아름다움은 그냥 나오지 않는 법. 많은 신문들이 문을 닫고 마트도 그랬듯이 왜 크리스천라이프라고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사람의 어려움, 재정의 어려움 등등 오히려 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독수리의 날개와 같이 하나님의 도움심이 함께 하셨기에 지금까지도 든든하게 가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물론 매번 오는 어려움이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왠만한 문제는 껌같이 생각하는 지금의 크리스천라이프 장명애 대표와 이승현 발행인, 송인경 디자이너 그리고 스태프들이 있어 든든하다.
20년 전 부모의 외모는 젊었으나 속은 아름다운 20세 그대로이듯, 이제 작은 독수리들이 젊음을 뿜뿜 내는 청년이 되어 부모의 빈 자리가 생기면 그 자리를 언제든 매워주고 있다. 20세 하면 풋내를 넘어 젊음과 건강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차나 핸드폰을 20년을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계는 그 용도에 따라 수명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러나 크리스천라이프가 달려온 길은 우리 육신으로 심었던 것이 아니기에 그 아름다움의 깊이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불혹의 나이 40의 크리스천라이프를 바라보며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그동안 잘 했다고 칭찬의 박수를, 앞으로도 잘 할 수 있다고 힘내 보자고 파이팅 하자고 격려의 박수를 쳐 본다. 독수리들이 다들 커서 각자의 몫을 하느라 바빠서 독수리 오형제 합체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독수리 하나 하나가 각자의 힘을 가졌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거나 빈 자리가 생기면 어느 독수리든지 와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마치 반차를 따라 서원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일을 각자에게 주신 분량대로 서로 분담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임과 같이…그러다 보면 또 20년의 역사가 쓰여지지 않을까? 그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 불혹이 올 것이다.
남은 자의 사명
내 사모하는 예수님이 우리가 신문 배달 할 때 오실지, 주일 예배에 다같이 모여 있을 때 오실지, 알 수 없지만 그 때까지는 남은 자의 몫, 남은 자의 사명을 다하며 가야 하지 않을까? 그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 열악한 환경의 열방에 나가 있는 세계 선교사와 목회자, 열심으로 각자의 처한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장로, 집사, 성도, 문서 선교로 20년을 달려 온 크리천라이프, 우리 모두는 한 하나님의 자녀요, 한 뜻을 품고 살고 있다. 다같이 더 많이 같이 가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라이프 배달의 가족 독수리 오형제 파이팅! 다들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20년 전에 크리스천 라이프를 세우시고 뉴질랜드 한인들에게 문서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어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힘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은 사람의 힘과 지식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있었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시고 이를 통해 복음이 더 널리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20년 동안 크리스천라이프를 위해 일해 온 스태프들과 필자들, 자원봉사자들과 물심양면으로 보이지 않게 돕는 손길들과 기도의 동역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전에 없던 문서 선교의 축복을 허락하시어 앞으로도 더욱 높이 힘있게 멀리 비상하는 독수리의 날개짓과 같이 크리스천라이프를 통해 복음이 멀리멀리 퍼져 주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계속 사용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