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비누, 부활절 인생 비누로 다시 살아나다

‘두근두근… 개봉 박두…’
수제 비누를 만드는 비누쟁이로서 나에게는 가장 설레는 순간이 있다. 비누가 팔렸을 때…? 아니다. 입금이 되었을 때…? 아니다. 고단한 수제 비누 가내수공업에 활력소가 되어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주로 제작하는 CP(Cold Process) 비누를 만들 때, 나는 한번에 약 5~6kg의 재료를 큰 곰솥에 부어 작업한다. 그 정도 무게와 부피가 나의 작업 여건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적으면 수고에 비해 나오는 양이 적어 효율이 떨어지고, 더 많으면 무거워서 재료를 섞거나 붓는 게 힘들어진다.


몸에 좋고 피부에도 좋은 코코넛유, 올리브유 등의 베이스 오일과 향기와 기능성을 더해주는 에센셜 오일에 가성소다를 더해 잘 섞어 주면 비누화(saponification)가 일어나는데, 그러면 반죽이 조금씩 굳어지면서 주걱이 지나가는 자리에 흔적이 남기 시작한다. 이 흔적을 비누 용어로 트레이스(trace)라고 하는데, 여기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게 비누 제작에서의 1차 관문이다.


트레이스가 나면 모양을 잡기 위해 틀에 붓고, 굳어질 동안 적정 온도를 유지해 주어야 하는데, 보통은 단열이 좋은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놓는다. 여기 까지가 능동적인 비누 제작 단계이다. 그 이후로는, 비누 안에 있는 수분이 빠지면서 경도가 올라갈 때까지 4주 이상 기다리는 길고 긴 수동적 제작 단계가 펼쳐진다.

마치 엄마의 품처럼 따스한 박스 안에서 하루쯤 지나 비누가 어느 정도 굳어지면 스티로폼 박스를 열어 갓 태어난 비누들을 확인하게 된다. 비누쟁이들에게 가장 기대되고 설레는 순간이 바로 이 스티로폼 박스를 열 때이다. 아가 비누들의 뽀얀 살결을 만져 보는 바로 그 순간, 비누가 잘 나왔는지, 망했는지, 전 날의 수고와 고통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의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된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네가 이렇게 된 게 내 잘못인 거니?”
자식새끼처럼 정성 들여 만든 비누가 어쩌다 비누틀에서 헤벨레~하며 불량한 포즈로 나를 맞이할 때면 한껏 기대 섞인 설렘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마음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비누가 잘못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실수로 레시피와 다른 재료를 썼다거나, 재료들의 배합이 안 맞았다거나, 비누화 과정에서 온도가 맞지 않았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의도된 모습에서 벗어난 비누들과 만나게 된다.

떡잎부터 삐뚤어진 비누들, 때깔만 봐도 요단강을 건너갈 참인 비누들, 작업 중에 부서지고 흠이 난 녀석들, 자르고 남은 짜투리 조각들… 이런 비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값비싼 재료비와 제작자의 노고를 슬픈 추억으로 남기고 그저 쓰레기통 속의 폐품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못나고 쓸모 없으면 버려지는 냉혹한 비누의 세상에도 따스한 햇살처럼 비누들을 감싸주는 큰 기쁨의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이런 비누들을 갱생시키는 ‘리배칭(rebatching)’ 이라는 제조법이다. 쓸 수 없는 비누들을 모아 중탕 가열하여 다시 만드는 방법인데, 이 과정을 통해 어떤 녀석들은 못다한 비누화가 완성되며, 부서지거나 조각나 사용될 수 없었던 녀석들은 합쳐져 온전한 새 비누로 거듭난다.

리베칭을 거치려면 비누들은 먼저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잘게 잘려야 한다. 잘못된 성질을 품은 큰 덩어리인 채로는 중탕으로 녹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려진 비누 조각들이 녹아 서로 섞이고 치대어져 부드러운 반죽이 된 후, 비누틀에 들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리베칭이 끝난 비누들을 보면 부드러운 반죽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때론 거친 알갱이들이 보인다. 겉모습은 투박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속 성분은 부드럽게 새로워졌다. 쓸모 없이 버려질 수밖에 없던 존재에서 다시 한번 목적과 가치를 부여받으니 이 얼마나 훈훈하고 벅찬 순간인가?

스티로폼 박스 안의 뽀송뽀송한 아가 비누들을 처음 볼 때의 기쁨과 설렘과는 다른, 왠지 우직하고 뭉클한 보람이 갱생된 비누들을 볼 때 느껴지는 것이다.
수제 비누 제작자들 보다 훨씬 큰 상업적 규모로 비누들을 재활용하는 사업도 있다. ‘UNISOAP’(Unisef 아님)와 ‘Clean the World’는 각각 프랑스와 미국에 기반을 둔 기관들로, 숙박업소들과 협력하여 쓰고 남은 비누를 수거해 오염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처리하고 파쇄한 후 리배칭의 과정을 거쳐 재생 비누로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누들을 저개발 국가 등 필수 위생용품이 부족한 곳에 보내주는 값진 사업을 하고 있다.


리배칭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비누처럼 성도들도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연단 되고, 거듭나게 된다. 내 멋대로 내 맘대로 비뚤어진 채 살아가던 우리를, 세상에서 상처받고 깨져 쓸모 없어진 것 같은 우리를 하나님은 부르셔서 특수한 미션을 부여받은 성도로 거듭나게 하신다. 그 과정에서 옛모습과 자아가 조각조각 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지만 거듭난 성도들은 그분의 뜻에 따라 새롭게 쓰임 받게 되니, 비누의 재생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성도들의 본이 되신 예수님 또한 세상에서 연단의 과정을 거치셨고, 부활하시고 구세주가 되셨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만으로도 이미 상상할 수 없는 낮아짐과 고난인데, 십자가를 지심으로 육신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겪고 죽임당하셨으니 이보다 혹독한 리배칭의 과정이 어디 있으랴?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본래 흠이 없으심에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셨으니 역사상 부활하신 주님처럼 강렬한 반전과 함께, 완전한 사랑으로 완벽하게 목적을 달성한 드라마가 또 있겠는가? 죽기까지 피조물을 사랑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능력이다.

인생의 비누(be new)되시는 예수님을 전하자는 의미에서
달력을 보니 올해도 어느새 두 달이 훌쩍 지나버린 걸 깨닫는다. 조금 있으면 부활절을 40일 앞두고 맞이하는 사순절이 시작된다. 비누를 만들고, 생각하고, 글을 쓰다가 이번 부활절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표현하고, 또 나누자고 계획해 보았다.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통한 새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달걀을 나눈다.

나는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신 예수님, 우리 인생의 비누(be new)되시는 예수님을 전하자는 의미에서 달걀 모양의 비누를 만들기로 했다. 한번 먹고 끝나는 계란보다는 비싸겠지만 오래 두고 손을 씻을 때마다 예수님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좋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미흡한 나의 생각에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시 길 기대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삶이 비누(be new) 되길 기도하면서…


아직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UNISOAP’나 ‘Clean the World’처럼 내가 만드는 비누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일들이 일어나길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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