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단기선교, 아름다운 복음의 발걸음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청춘 예찬이란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수필은 이렇게 시작된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만일 누군가 에게 당신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선교!’라고 답할 것이다. 오늘 그 이유를 서론적으로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점차 예수님이 마련한 아름다운 정원으로 이끌고자 한다.

예기치 않은 기쁨
C. S. Lewis(1898-1963)의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을 즐겁게 읽은 적이 있다. 자서전적인 이 책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전율적 기쁨을 표현했고 이 기쁨을 알지 못한 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그의 탁월한 글로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를 적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와 동일한 기쁨을 소유한 내게 오래전부터 누려온 또 한 가지 특별한 기쁨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교지에서 온 소식을 읽는 것이었다. 1984년 내 나이 21살에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마음 맞는 이들과 힘썼던 것이 그 학교에 선교부 동아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지만 사실 그때만 해도 신학대학에 선교라는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년 후 일이지만 나의 석사 논문이 ‘시편에 나타난 선교 사상’이었는데 이 분야의 논문을 지도할 이가 마땅치 않아서 일반 구약학 교수에게 지도와 심사가 맡겨졌다. 이처럼 그 당시만 해도 선교에 대한 관심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었다고 생각된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신학대학에 없었던 선교부 동아리를 만들려는 열심을 불러일으키고 구약에서 선교 사상을 집중 연구한 학자들이 나오기 전에 이 주제의 논문을 쓰게 했던 것일까? 내게 경험된 복음이 내게서 멈추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가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구주 예수께서 오셨을 때 천사가 고지한 대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내가 받았기에 이것이 ‘온 백성all people’에게 가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눅2:10). 어떤 의무감이나 사명감보다는 내 안에 생산되고 채워진 기쁨이 그 길을 찾아 뭔가를 하도록 한 것이 신학교 시절 내 모습을 이루었다고 여겨진다.

신학생들은 학교에서의 학업과 함께 교회 교역자로서 봉사도 하는데 나의 관심이 선교에 있다 보니 자청해서 교회 내 선교부 총무 혹은 서기의 일을 하였다. 부장은 당회원이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실무는 자원하는 교역자들이 하는 게 일반적이라 난 선교지에서 온 소식지들을 받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은 일이 내게는 마치 한밤에 목이 말라 깨었을 때 마시는 물처럼 그렇게 달고 시원한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신학교의 공부보다도 교회를 위한 부서 봉사보다도 내게는 선교에 관련된 일에서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꼈다. 이 마음이 동기와 동력이 되어서 경부선을 매주 오르내리면서 ACTS(아시아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비록 뉴질랜드로 이민 오는 일로 끝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잠이 모자라 붉게 된 눈으로 들었던 강의들이 남아 있어 내 삶과 사역에 기반이 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도 진행형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것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다면 그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누가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심취해 듣는 마리아를 본다. 손 대접에 힘쓰던 언니 마르다의 성화에도 마리아는 꿀송이처럼 떨어지는 주님의 말씀에서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이 상태를 주님은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평하셨다(눅10:42). 나는 그리스도인에게 발생한 이 같은 특정한 기쁨을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소원이 된 것이라고 믿는다(빌2:13).

하나님은 주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성도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데 이 불은 대단한 즐거움과 유쾌함을 동반하며 더 넓은 영역을 향해 번져 나가는 속성을 지닌다. 내게 허락된 불같은 소원은 선교였고 세계를 향한 것인데 이것이 현재형인 것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옮겨온 뉴질랜드에서도 여전히 이 불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29년 살면서 주님의 섭리 가운데 목사로 섬긴 교회들은 더니든 늘푸른 교회와 해밀턴 주사랑교회, 그리고 지금 섬기고 있는 오클랜드 예닮교회이다. 함께 교회 생활한 이들은 알겠지만 어디서든 내가 전한 말씀의 바탕에는 선교의 물줄기가 함께 흐르고 있다. 그래서 수년 동안 함께 교회 생활하다 보면 성도로서 선교에 관심을 쏟고 살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감사하게도 더니든 늘푸른교회가 지속적으로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치 내가 함께한 것처럼 기뻤다. 해밀턴 주사랑교회를 섬길 때 작은 단기 팀을 만들어 태국을 2번 다녀왔고 그 후에도 새로운 팀이 만들어져 태국 산골짜기까지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2022년 오클랜드 예닮교회를 담임하게 되어 사역을 시작한 후 여전히 불타오르는 선교에의 열정으로 인해 어느 날 교회 앞에 단기선교 계획을 제안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인들의 1/3이 동참하게 되었고 일 년 준비한 후 지난해 7월에 태국 치앙라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선교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현장이었다. 많은 나눔 거리가 있으나 한 가지만 나눈다면 치앙라이 반뿡이란 작은 시골 마을에 19년째 산족 아이들을 돌보는 선교사 부부가 계신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6개 소수 부족의 아이들과 한민족인 우리 이렇게 7개 민족이 예배 중 특송을 했는데 다른 부족의 순서 때에 난 맨 마지막 줄에 앉아 있었다.

아, 그런데 내 뒤에서 탄성과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나는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지만 내 뒤에 아무도 없음에도 이 현상은 계속되었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는 그 자리에 주님이 성령으로 임재해 계심을 확신했고 이에 고무되어 더 큰 목소리로 더 힘차게 찬양할 수 있었다.

투 트랙 혹은 쌍두마차 형식으로
앞으로 내게 허락되는 기간 동안 두 가지 형식으로 글을 지어가고자 한다. 하나는 성경의 가르침을 뼈대로 하여 (단기)선교에 대한 이론적 나눔과 실제적인 경험을 나누려 한다.


*장기 선교와 단기 선교는 어떻게 다른가?
*단기선교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단기선교가 지역 교회에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단기선교의 올바른 방향은 어디인가?
*단기에서 장기로
*가는 교회와 보내는 교회의 협업 영역
*세계 선교 지도: 미전도 종족과 미접촉 종족

독자 여러분과의 만남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선하신 주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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