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나를 잊지 마세요: 미나 어르신 이야기

세계 알츠하이머 인식의 날 9월 21일
다섯 장의 파란색 꽃잎을 가진 물망초 꽃의 영어 이름은 forget me not(나를 잊지 마세요)입니다. 알츠하이머의 상징 꽃으로 쓰입니다.
9월 21일,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World Alzheimer’s Day)’입니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 알츠하이머 협회(ADI)와 함께 치매 관리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치매를 극복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한국은 치매 극복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를 가지고 살아가는 미나 어르신과의 만남
미나 어르신은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태어났고 남편을 따라 이민을 왔습니다. 어르신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소셜 활동을 하게 하려고 우리 센터에 참여시켰습니다. 처음 센터에 왔을 때 미나 어르신은 영어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었고, 자신이 유치원 선생님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노래와 율동을 알고 있었고,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항상 활발하고 춤추고 율동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섬에서 온 사람들을 잘 섬겨주고, 특히 고리 던지기나 론 볼링 같은 운동에는 아주 탁월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르신이 알츠하이머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인지 기능이 좋았습니다. 다만 오늘이 며칠이냐고 자주 묻는 것을 보면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을 보이기는 했습니다.

인지 기능의 저하
그러던 어느 날, 미나 어르신께서 슬며시 센터 게이트를 열고 나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천히 따라가 보니, 사거리를 지나 계속 가다가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신의 위치를 묻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알츠하이머의 전형적인 증상인 공간 개념의 혼란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가끔씩 흥미로운 일이 없으면 문을 열고 나가는 일이 생겼고, 센터는 안전을 위해 이중 잠금장치를 설치했습니다. 이 장치는 일반 사람들은 열 수 있지만, 디멘시아를 겪는 분들은 두 개의 잠금장치를 동시에 조작하기 어려워 안전하게 센터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즈음, 어르신께서는 센터에 올 때마다 2달러를 가지고 왔습니다. 커뮤니티 모임에 기부하려고 골드 코인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 가족에게 돌려주곤 했습니다. 어르신은 예의 바른 분이었기에 디멘시아가 진행되면서도 커뮤니티 활동에 골드 코인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은 항상 센터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센터에서 필요한 일을 돕곤 했습니다. 감자를 깎거나 수저 세트를 포장하고, 토스트 빵에 버터를 바르는 일들을 돕곤 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서 하는 활동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것도 예쁘게 했습니다. 트럼프와 숫자 놀이 같은 보드게임도 잘하고, 사람들을 모아 보드게임 놀이를 주도하곤 했습니다.

제2 언어 기능의 저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어르신은 두어 번 코로나에 걸렸고, 그 후 신체적으로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유창했던 영어도 점차 더듬거리기 시작했고, 영어와 자기 민족어를 번갈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어르신의 모국어로 말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 동안 고향인 섬나라에 다녀온 후부터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쓰지 않으면서 많은 활동을 예전처럼 즐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족들과는 대화를 즐겁게 나눴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스태프나 다른 참가자와의 대화는 어려워졌습니다. 스태프인 우리와는 매우 친하게 지냈지만 대화를 할 때 우리가 전달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럴 때면 크게 눈을 깜박이며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고, 여러 번 제스처를 사용해 설명한 후에야 행동하곤 했습니다.

제2 언어 기능이 사라지면서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영어로 의사 표현을 못 하게 되면서 센터에서 어르신의 일상은 많이 바뀌어 갔습니다. 어르신은 운동을 잘했기 때문에 신체 활동이나 게임에도 여전히 참여하였지만 점차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론 볼링에서는 무조건 타겟을 맞추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게임이 거칠어졌고, 다른 참가자들이 어르신에게 ‘노’라고 말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어르신은 점차 게임이나 활동의 참여율이 줄어들었습니다.

디멘시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인지 능력과 공감 기능이 저하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정서적으로 우울한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아침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센터 일을 도와 수저 세트를 만들거나 냅킨을 접는 간단한 일도 규격을 맞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것도 어려워졌고, 색칠을 해도 한 가지 색으로만 모든 것을 칠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도 이내 흥미를 잃고, 어르신은 손톱에 빨간색 사인펜으로 칠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인정과 사랑의 욕구

요즘에 어르신이 센터에 오면 상대방의 응답과 상관없이 모국어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자기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오후 픽업 시간에 다른 참가자들이 집에 가고 혼자 남으면 매우 불안해합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를 항상 찾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르신을 인정하지 않거나, 거절하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 그룹에서 떨어져 혼자 앉아 손톱을 뜯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손톱을 뜯고 있으면 우리는 어르신이 사랑과 애정이 필요한 것을 알고 매니큐어를 발라줍니다. 불안이 많이 진정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르신의 활동 참여가 줄어들면서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습니다. 아침에 올 때면 리모컨, 카드, 빗, 과자, 스푼 같은 생활용품을 주머니에 넣고 옵니다. 우리에게도 주고 옆 사람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는 트럼프, 카드, 잡지, 연필, 공룡, 인형, 구슬, 퍼즐 같은 것을 몰래 챙겨 갑니다. 우리는 어르신을 존중하여 가져가는 물건들을 제지하지 않고 가족에게 알려주어 다시 센터로 가져오도록 합니다.

미나 어르신의 남편은 매우 자상한 분으로 매일 아침 미나 어르신을 데려다주며, 집에서의 지내는 모습을 들려줍니다. “내가 딸을 하나 키우고 있다”며 어르신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디멘시아를 겪는 가족들은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아이 같은 행동을 보면서 이해하고 웃어넘기며 사랑으로 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알츠하이머를 가진 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든 사랑과 인정의 욕구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난 곳 방언으로
최근에는 그녀와 같은 민족 언어를 사용하는 새로운 참가자가 등록했습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그 참가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덕분에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어르신의 디멘시아가 아주 많이 퇴행되었다고 여겼던 우리에게 난 곳 방언으로 나누는 대화가 어르신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나 어르신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을 위한 데이 프로그램 센터가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면 좋겠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소통하고, 인정받고, 사랑받는 경험이 많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안정되며 더 사랑스러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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