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차? 카페이? 뉴나이?”

비행 다니다 보면 여러 나라를 다니는 만큼, 다른 언어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보편적으로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거나, 유학생, 워홀 신분으로써 뉴질랜드에서 언어의 고충을 한 번쯤은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거나 영유아일 때 와서 속된 말로 ‘빡센’ 부모님 아래 자라면서 자아가 생기기 전 한국어와 영어가 조기교육 된 사람들을 제외하면 다들 언어를 배움에서의 어려움에 큰 공감을 하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뉴질랜드에서 태어나서 영어가 익숙한 사람 중, 한국말에 대한 고충이 있었던 독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영어는 ABC 노래만 할 줄 알고 그 이상으로는 하이 밖에 몰랐다. ‘하우알 유, 아임파인, 앤드류?’가 그다음에 나오는 멘트이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9살에 뉴질랜드에 와서는 엉엉 울면서 영어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나 그런 것이 절대 아니라 자존심이 너무 강했던 9살 나는 학교에서 너무 분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콴타스 항공 비행이 호주의 국영 항공사인 만큼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떠나는 비행기에 타는 탑승객들은 대다수가 영어를 할 줄 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분명히 예외는 있고, 해외에서 호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더더욱이 영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에 어머니가 혼자서 종종 한국을 가실 때 체크인 카운터나 시큐리티에 외국인들밖에 없으면 긴장하시고 그러다 간혹 한국인인지 다른 아시안인지 모를 사람이 체크인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제발 어머니 순서에 다른 외국인 직원 말고 그 동양인 직원이 자기가 응대하던 손님을 끝내기를 기대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도 어머니는 항상 아무 탈 없이 수속을 마치셨고 비행을 하셨다.

하지만 정말 가끔 체크인을 끝내고, 시큐리티를 지나 이 비행기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이 미스터리일 정도로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승객들이 있다. 한국에 계신 우리 친척분들이라 생각하고, 이해하실 정도로 줄이고 줄여서, ‘Beef, Chicken, Vegetable?’까지 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회사에서 가르치는 서비스 언어에는 분명히 어긋나지만, 승객들이 자기가 무슨 음식을 먹는지는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이런 분 중 꽤 많은 분이 종교 문제로 자기가 섭취할 수 없는 음식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너무 당혹스러워질 때가 있다. 분명히 원하는 것은 있는데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를 정도로 나에게 외국어로 열심히 말해 주신다. 중국어나 일본어처럼, 대충 나에게 익숙한 외국어는 그나마 눈치로 넘길 수 있지만, 힌디어나 스페인어 등 내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을 마주하였을 때 나는 힘이 쭉 빠진다.

최근에 같이 비행한 나와 아내에게 일어난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녁 서비스를 마치고 카트를 갤리로 가지고 온 뒤 정리를 하고 다음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손님이 화가 난 것처럼 씩씩대면서 갤리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자기는 식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처럼 카트에 손 가락질 하면서 힌디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말 중간중간에 Fasting(금식)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그러다가 아내가 그 손님을 응대했는지 다가가서 ‘너 금식 한다고 하지 않았냐?’라고 말을 하였지만 계속 무슨 말을 하면서 Fasting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였다.

아내의 성격상 손님이 식사를 안 한다고 하면 재확인을 하고, ‘빵이나 디저트만이라도 따로 챙겨줄까?’라고, 물어보는 스타일이고, 이번에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당혹스러워하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손님 입장에서는 아내가 좋게 보일리가 없기 때문에 아내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내가 다가가 ‘Beef, Chicken, Veg?’라고 물었더니, 똑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Fasting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이쯤 되자 나와 다른 승무원들은 서로를 보면서 헛웃음을 짓고 다들 내 아내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나는 그 손님에게 카트로 다가오라는 제스처를 하고 음식을 하나하나 보여주기 시작했다. 서빙이 끝나고 남은 음식이었기 때문에 포장을 열어서 하나하나 확인 시켜주었다. 그러자 그분은 씩씩대면서 음식 몇 가지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직도 그분은 무엇 때문에 화가 났고, 그 상황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했는지는 미스터리다.

한번은 이런 상황이 있었다. 점심 서비스를 마치고 차와 커피 서비스를 서빙하면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지나갔다. 이미 점심이라는 큰 산을 넘었고, 이 산을 넘어가면서 승객들에게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단체 관광객들이었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거쳐서 내가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확실시했지만 계속 날아오는 중국어 때문에 나는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다음 차와 커피 서비스를 하면서 중국인 승객들을 지나갈 때 다시 중국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점심 서비스에 한 말이 아무 의미가 없었음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눈치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반대쪽에서 일하고 있던 승무원에게서 분명히 내가 아는 중국 단어들이 들렸다. ‘차? 카페이? 뉴나이?’. 평소에 성격 좋고 일 잘하기로 소문난 승무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단어들은 다 내가 아는 단어였고 그 정도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를 중국인으로 봤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서 무의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중국어를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분명히 이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서비스가 끝난 뒤 그 승무원에게 가서 솔직히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는데 네 덕에 기분이 좀 풀렸고 많이 배웠다는 말을 전했다. 그 승무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집에 와서 아내와 그런 말을 나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꼭 우리가 직접적으로 전도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보이는 직업인만큼, 우리가 하는 행동에서, 사소한 것들에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동한다면 분명히 그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중국인 승객들을 유쾌하게 응대한 승무원에게 내가 다가간 것처럼, 우리에게는 사소한 행동과 태도가 남들에게는 도전이 되고, 비법이 무엇인지를 궁금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우리는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예수님의 언어를 하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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