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동안 독자들과 함께 큐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늘 스무 번째 글을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려 하니 아쉬움도 남는다. 마감 시간에 쫓겨 설익은 글을 보냈던 적도 있고, 지면에 담아낼 수 없는 내용도 많아 아쉽고 죄송하다.
필자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모두가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격적이란 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알고 느끼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더 깊은 믿음의 관계를 일구어가야 한다.
큐티는 말씀으로 내 인생을 해석하는 것이다
큐티를 내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해석을 위해 읽으면 어려운 책이다. 순종하기 위해 성경을 펼치면 쉽고 열린 책이 된다.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고 조용히 귀 기울이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말씀에 비추어 내 인생의 사건을 해석해 가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을 알게 된다.
고난이 찾아올 때 세상적인 관점으로 고난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말씀의 가치관으로 고난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고난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나아가면 고난이 변하여 축복이 된다. 큐티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 삶을 바라보는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큐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으로 교제하시기를 원하신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 즉 구원 얻는 바른 믿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이다. 인격적이란 개인적인 만남을 전제로 한다. 일대일의 관계를 맺음으로 비로소 인격적인 교제가 시작된다. 큐티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는 인격적인 교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만나서 대화해 보면 안다. 하나님과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교제해 보면 얼마나 좋은 분인지를 금세 깨닫게 된다. 이런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지 않은가?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람이 미워지고 싫어졌던 경험이 있다. 한 시도 더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다.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우리와 동행하신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그렇다. 큐티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평생 동행이다.
큐티는 일용할 양식이다
큐티는 영혼의 만나라고 할 수 있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찮아도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러 나가야 했다. 이틀 치를 거두는 꾀를 부려봤지만 하루만 지나면 냄새가 나서 먹지 못했다. 매일의 일상에서 먹는 집밥 같은 것이다. 큐티는 오늘 나에게 주시는 일용할 영적 양식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끼니를 자주 거르면 건강이 나빠진다.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너무 기름진 음식을 매일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 큐티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한다. 마치 엄마가 매일 차려주는 밥상처럼 말이다. 큐티 훈련을 받고 제대로 해보려고 해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체할 수도 있다. 큐티는 매일 먹는 밥처럼 영혼의 만나가 되어야 한다.
큐티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 되기 쉽지 않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자기 입장에서 말하며 자신에 대해선 관대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지나친 우월감이나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자기 객관화’를 이룰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교만하거나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세상의 기준으로 대하지 않으신다. 말씀 앞에 서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뵙게 된다. 때론 책망하시지만, 더 많은 위로와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주신다. 큐티하면 자존감이 회복되고, 겸손하고 당당한 사람이 된다.
큐티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는 말씀처럼 내 인생길을 정확하게 비춰 주신다. 말씀은 남의 발을 비추는 등불이 아니다. 개인적인 말씀 묵상을 하지 않고 수많은 설교를 듣는 것으로 신앙 생활하면 위험하다.
유튜브나 기독교 방송에서 나오는 유명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설교를 듣게 된다. 듣다가 지루하거나 귀에 거슬리면 채널을 돌린다. 너무 위태로운 일이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공적인 예배 시간에 참석하여 예배자의 한 사람으로 듣는 설교가 중요한 이유다.
큐티도 마찬가지다. 조용한 시간에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큐티는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는 시간이다.
큐티는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큐티 본문을 읽고 관찰만 잘해도 묵상이 한결 쉬워진다. 관찰을 통해 본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주석의 도움이 필요한 본문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론 본문을 잘 읽고 관찰하면 어렵지 않게 묵상할 수 있다.
본문을 잘 읽으려면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 문맥을 따라 읽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인칭대명사나 시간과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오랫동안 읽어온 탓에 어떤 본문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 처음 읽듯이 읽으면 좋은 관찰을 할 수 있다. 연애편지 읽듯이 촘촘히 읽는 훈련도 필요하다.
좋은 질문은 좋은 큐티를 만든다
큐티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다. 서로 교제하려면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대화란 묻고 답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큐티하면서 질문을 활용하면 훨씬 깊고 넓은 묵상을 할 수 있다.
관찰을 위한 질문이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언제 어디서 인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그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런 질문을 통해 본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유를 묻는 질문은 묵상을 풍성하게 해준다.
학교에 다닐 때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을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교과 내용과 상관없는 질문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불성실하게 답해 버리고 지나치는 교육 과정에서 질문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주일학교를 다닐 때도 질문하는 것은 금기시되긴 마찬가지였다. 믿음과 지성의 조화를 가르치기 보단 믿음을 우선하는 교육을 받다 보니 질문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믿어버리거나 순종해 버린다. 믿음이나 순종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인격적인 관계라면 서로의 생각을 묻고 내 생각을 말하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간관계처럼 적용하지 말라고들 하신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은 인격을 소유하고 계시기에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을 싫어하지 않으신다.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를 귀찮아하는 철없는 엄마가 아니다. 좋은 질문을 통해 묵상이 풍성해지고 깊어진다.
큐티는 신앙생활의 선택과목이 아니다. 필수 중의 필수다. 큐티를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분을 만나보지 못했다. 봉사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교회 생활을 잘하는 분인데, 인격적인 신앙을 가지지 못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에 어려움을 끼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큐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