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주인공이 아니라도 괜찮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주인공으로 살았다. 주인공이 아니면 만족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은퇴하면서 자리가 바뀌고,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되고, 할 수 있는 일은 줄어 들고, 행동반경이 좁아지면서 주연을 돕는 조연 혹은 엑스트라의 삶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슬프지가 않다. 왜냐하면 새로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의 꿈은 원대했다
은퇴 하면서의 목표는 뉴질랜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 7000명, SNS를 통해서 매일 말씀 묵상 나누는 사람 300명을 네트워킹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골짜기 하나를 사서 기도 동산을 만들고, 생계를 위해서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꿈은 컸다. 그런데 그런 꿈을 갖고 3년 동안 현실과 마주쳐 보니, 장벽이 컸다. 계속 고집하다 가는 삶이 파탄 나겠다는 두려움이 왔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 작은 자 한 사람 돌보며 사는 일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삶이 풍요로워졌고, 내가 알지 못했던 크고 비밀한 일들이 깨달아졌고, 일감은 희한하게 계속 이어졌다.

생각을 정리하다
단순하게 사는 삶을 거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생각이 많고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중요한 일이 있고, 필요 없는 일들이 있다. 내 영역이 있고 내 영역이 아닌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니 삶의 질서가 잡힌다. 평생 주인공으로 살 수만은 없다. 이제야 말로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사는 성경적인 삶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

오늘 주어진 일과 역할에 집중하다
현재 주님의 교회 설교목사로 일하고 있다. 담임 목사가 선출되고 부임할 때까지 일하는 역할이다. 처음에는 파트타임이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금은 풀타임 설교 중이다. 화요일부터 주일까지 설교만 생각한다. 4개월이 지났고 앞으로 2개월 정도는 더 남은 것 같다. 하루 종일 설교만 생각하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고를 마친 후 고쳐 쓰는 시간이 2-3배 더 소모된다. 목회 전체가 아니라 설교만 하면 되기 때문에 주어진 호사이다. 이런 역할도 괜찮은 것 같다. 설교를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군더더기가 걸러진다. 단순 명쾌해진다.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다.

삶의 목표를 정리하다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분석해 보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할 때,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무언가를 할 때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설교를 준비할 때 집중력이 생기고, 설교를 할 때 에너지가 폭발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부르는 곳이면 언제 어디든지 달려 갈 준비를 하기로 했다. 준비했는데도 안 불러 주면 어떤 가,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삶의 자양분이 된다. 일단, 삶의 목표를 정리하고 나니 주어진 시간들과 과정들이 모두 소중하다. 목표가 생기면 그 밖의 일들은 양념이다. 보너스 덤이다. 맘의 여유가 생긴다.

주어진 것들에 깊이를 더 하다
에너지를 80%만 쓰기로 했다. 90%를 넘기면 집중력이 저하되고 감정 컨트롤이 안되고, 사소한 일에 내면의 질서가 무너지곤 한다. 그래서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하루 한 가지 일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몸이 편해진다.

일주일 휴가를 내서 집에 돌아와서 보니 몇 개월 동안 돌보지 못한 잔디밭과 텃밭이 엉망이다. 3일 내내 잔디 깎고, 거름 주고, 상추 심고, 나무 돌보고 꽃들을 심어 주니 보기에 참 좋았다.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제는 확장 보다는 관리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오랜만에 은퇴 당회원들이 모여 운동도 하고 부부동반 식사도 하니 즐거웠다.

새롭게 사귈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십 수년, 혹은 몇 십년 정을 쌓아 온 이들과 더불어 사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신기루를 찾아 헤매기 보다는 주어진 삶을 감사하면서 사는 법을 터득하기로 했다. 주어진 일, 주어진 거처, 그리고 주어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 참 소중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또 모험하고 도전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영역을 넓히는 일 보다는 이미 주어진 일과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단조로움을 즐기기로 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되고 있다. 삶의 활동 폭이 좁아지고 있다.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 들고 있다. 이렇게 단조로워지는 삶을 밀어내고 거부하기 보다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이니 즐겁다. 단조로워지는 삶을 즐길 수 있는 길은 단순해지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앞날에 대해서 미리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다양한 생각은 하되 결단은 쉽게 하기로 했다.

나이 계산을 초월하니 현재가 즐겁다
나는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계산하며 산다. 그런데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일에 에너지 소모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90 이상을 목표로 삼았다. 목표는 그렇지만 10년을 더 살 지, 내일 부르실 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항상 생각하며 산다. 어쨌든, 장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때를 대비해서 음식 조절, 건강 관리도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을 친구,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기로 했다. 갈등의 빌미를 제공해 주는 이들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상처를 치유하면서 만나고,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사람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친구로 존중하며 소중하게 여기며 살기로 했다. 관계를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상처받으면 상처를 치유하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 중이다. 그렇게 정리했더니 절친이 따로 없어도 상관없어진다. 나이를 초월하니 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만남이 즐거워진다.

할 수 없는 일은 정리하고, 받아들일 일은 받아들이니 내면의 질서가 잡힌다.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덜어내고 정리하면서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발견된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니 깊이가 더해진다. 삶은 매일 새롭고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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