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Right Four Four Right

사람들에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포지션이 뭐야?’라고 물어본다면 보편적으로 Right Forward(오른쪽 공격수), Left Wing(왼쪽 윙어), 수비수, 골키퍼, 가드, 센터, 유격수, 투수 등등 자기가 즐겨하는 운동이나 즐겨보는 운동선수의 담당 포지션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나같은 경우에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포지션이 어디야?라고 물어본다면 Right Four라고 말해준다. 비행기에서 기장실을 보고 서있는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네 번째 문 담당 포지션을 기종에 따라서 Right Four 또는 Four Right라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매니저가 혹시 담당하고 싶은 포지션이 있냐고 질문한다면 거의 열에 아홉은 Right Four 포지션에 자원한다.

아마 비행기를 타 보신 분들이라면, 한 승무원이 나의 쪽에서 계속 보인다는 것을 느껴봤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어른신들 같은 경우 한국행 외항사 비행기에서 제발 나의 쪽에 있는 승무원이 한국 승무원이길 바래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카트를 밀고 오는 승무원들이 한국인 한 명 외국인 한 명이면 괜히 긴장되고, 나에게 말 거는 사람이 ‘What would you like to eat?’ 가 아닌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라고 질문하기를 바라는 분들이 꽤 계시지 않을까 싶다.

여러 승객을 긴장시키는 승무원 야바위(?)는 사실 모두 승무원들의 담당 포지션에 달려있다. 승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여기저기 아무 곳이나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각자의 포지션이 있고 비행기 기종에 따라서 포지션 별로 역할과 책임 구역이 있다. 그러면 오늘은 우리 회사의 롱홀(장거리 국제선) 비행기중 가장 많이 보유하고, 내가 가장 많이 타고 다니는 에어버스330의 기준으로 포지션마다의 역할이 무엇인지 써볼까 한다.

포지션같은 경우 비행기 조종석을 보고 서있는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이 나뉜다 그리고 비행기 앞쪽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양옆으로 4개의 문, 총 8개의 문이 있다. 이 문을 승무원들이 한 명씩 담당하며 포지션이 정해진다. 앞서 말한 내가 제일 선호하는 Right Four의 경우 오른쪽에 있는 4번째 문을 내가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문은 혹시라도 긴급상황이 벌어질 시 내가 책임을 지고 열어 손님들을 대피시키거나 이 문으로 대피시키기 위험한 상황이라면 손님들이 이 문을 열거나 이쪽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한 나의 구역에 있는 비상 도구들을 비행 전에 꼭 확인해야 한다. 포지션별로 특수 비상 도구나 승무원/파일럿 쉬는 공간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Right Four 같은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이코노미 갤리(비행기 뒤에 있는 주방과 창고 공간)를 확인하고 음식을 만들 오븐들이 잘 작동하는지, 냉장 시스템의 온도가 잘 맞춰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위가 각 포지션별로 수행해야 하는 안전관련 담당 역할이라면 포지션별로 서비스관련 담당 역할도 있다. 예를 들어 Left One의 경우 항상 사무장이 앉는다. 비즈니스석 제일 앞이자 기장실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 앉음으로써 비즈니스 손님들에게 포커스를 두고 모든 승무원들을 이끌며 가까이에 있는 파일럿들의 전달 사항을 승무원들에게 전달한다.

Left Two 같은 경우에는 손님들의 탑승수속을 돕는다. 비행기 왼쪽 두 번째 문 같은 경우 비행기 탑승 때와 내릴 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문이기 때문에 Left Two가 손님들이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마지막 문지기 역할을 한다. 티켓을 요청하여 이 비행기에 타는 손님이 맞는지 확인하고 손님들을 환영하고, 자리로 안내한다.


그리고 Right Four 같은 경우에는 승무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가장 많이 갈리는 포지션이다. 이 포지션에 자신이 없는 승무원들은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자신이 있는 승무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를 사수하려고 한다. Right Four 포지션은 바로 이코노미 갤리 담당 포지션이다. 이 말인즉슨 이코노미 좌석의 메뉴를 제외한 모든 음식 관련된 것은(서빙 타이밍, 음식의 온도, 빵의 온도 등등)은 Right Four의 능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메뉴 같은 경우 해당 나라에서 이미 조리된 음식이 반 냉동되어 비행기에 실리기 때문에 승무원들이 관여할 필요가 없지만 그 후에 기내에서 조리되어 승객들에게 서빙되기까지는 Right Four의 역할이 제일 크다.

만약 내가 Right Four로 근무하는 비행 이코노미석에 안성재 미슐랭 쉐프가 타서 ‘이 고기는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라고 한다면 나에게 피드백이 전해진다. 그리고 음식과 더불어서 이코노미 갤리를 조율하여 장시간 비행기에 서빙되는 음식, 과자, 음료가 나가고, 여기에서 나온 쓰레기 또한 갤리 안 공간에 다시 보관될 수 있도록 자리를 확보하는 것도 갤리의 역할이다. 이처럼 Right Four의 역할이 사무장과 부사무장을 제외한 승무원 중 가장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Right Four 포지션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할 일이 가장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많이 하는 장거리 노선의 경우 짧게는 11시간에서 뉴욕-오클랜드 노선의 경우 17시간까지 걸릴 때도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승무원에게 가장 고역인 것은 17시간 가까이 될 수 있는 시간 동안 기내식 서비스와 브레이크 타임을 제외하고는 대기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혹시 모를 긴급상황이나 기내 서비스를 추가로 요청하는 승객들을 위해 승무원들은 반으로 나뉘어 브레이크를 가고 반은 대기를 하는데 낮 비행은 그래도 손님들이 깨어 있어 할 일이 많은 반면 밤 비행 같은 경우 기내에서 자는 손님들 뒤로 정말 ‘대기’만 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 현존하는 비행 노선중 7번째로 긴 뉴욕-오클랜드 비행이 콴타스 항공 같은 경우 미국 저녁 시간에 출발해 오클랜드 새벽에 도착하는 밤 비행이다. 심지어 그냥 밤 비행이 아닌 비행하는 17시간 동안 태양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바아아아아암’ 비행이다. 그래서 이 대기시간을 나는 갤리 정리하면서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첫 번째 기내서비스 끝나고 다음 서비스로 넘어가기 위해 부랴부랴 정리했던 것을 다시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빈 공간을 만들어서 쓰레기가 다시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또한 다음 기내식 서비스를 최대한 깔끔하고 효율적인 동선으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생각해 보면 정말 한정돼 있는 비행기 뒷공간에 150명에서 200명 정도의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먹을 두 끼의 기내식과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포함한 간식, 음료수, 차, 커피 등이 실려 있고 이것이 승객들에게 제공되었다 다시 들어온다. 이것을 처음 세팅하는 것부터 정리될 때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Right Four라는 것에 나는 뿌듯함을 느끼고 덕분에 기내서비스가 순조롭게 끝났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한껏 올라간 나의 입꼬리를 감출 수가 없다.

17시간까지 될 수 있는 장거리 비행이 끝난 뒤 비행기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보며 모든 포지션에 있는 승무원들이 수고한 마음과 뿌듯함을 느끼겠지만,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갤리를 뒤로하고 내릴 때만큼 뿌듯하고 진짜 알찬 노동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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