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선교, 성령의 인도하심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6-10)

9월이니 무더위도 어느 정도 수그러졌겠다 싶은 기대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아직도 숨이 막힐 듯했다. 나는 울산에서 있는 총회에 참석하러 갔는데 같은 기간에 인천 송도에서 2024 로잔대회가 열렸다. 총회도 중요한 이슈가 있었지만 로잔대회에 대한 전망과 기대, 또 염려를 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송도 2024 로잔대회는 25개 주제의 <대사명선언>과 97개 단락의 <서울선언>으로 그 모든 것을 잘 말해준다.

2024 서울로잔대회
우선 25개 주제의 <대사명선언>을 보면 1)노인 2)새 중산층 3)다음세대 4)이슬람 5)세속주의 6)최하전도종족(least reached peoples) 7)디지털시대 말씀 8)디지털시대 교회 양태 9)디지털시대 제자도 10)디지털시대 전도 11)AI와 트랜스휴머니즘 12)성 정체성과 성별 13)총체적 건강 14)다중심적 선교 15)다중심적 재원동원 16)정직성과 반부패 17)통합적 영성과 선교 18)리더십개발 19)이동하는 사람(난민/이주민) 20)도시 공동체 21)디지털 공동체 22)종족주의/인종차별주의 23)기독교/급진적 정치와 종교적 자유 24)창조세계, 취약계층 돌봄 25)사회적 신뢰와 기독교의 영향력이라는 현 시대가 가져야 할 선교적 주제들을 다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날 있었던 <서울선언>은 1)복음 2)성경 3)교회 4)인간 5)제자도 6)열방의 가족 7)기술 등 7개 큰 주제 아래 97개 단락이 있다. 7개 주제는 첫 주제인 복음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복음이라는 주제는 1974년 로잔대회 이후 지속적인 세계복음화 운동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채택한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을 잘 계승하고 있다. 50년의 역사를 지닌 로잔대회가 시대가 바뀌고 흔들리는 세계 상황 속에서도 굳게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복음을 중심으로 한 선교운동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송도로잔대회를 앞두고 많은 이들이 염려했던 것이 <성 정체성과 젠더> 문제였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한국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게서 더욱 기승을 부릴 문제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성 정체성, 결혼과 독신, 동성 성관계 등 세 가지 이슈 아래 다시 15개의 단락에 걸쳐 성경적으로 잘 설명이 되었다고 본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만 창조하셨다는 것, 성적지향성(sexuality) 왜곡에 대한 탄식과 개인이 성별(gender)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거부한다는 것이 첫 번째 요약이며, 결혼의 정의는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배타적인 언약 관계임을 분명히 했으며, 동성애는 하나님의 성에 대한 뜻을 위반하고 창조주의 선한 설계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또한 이에 반하는 모든 것이 죄악이며 회개가 필요하고 성경적인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했다.


또한 이번 로잔대회는 다중심적 선교(polycentric mission), 디지털시대 선교, 이슬람 선교와 난민(이주민), 다음세대를 다루었고 한국교회와 북한의 관계 속에서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현 시대의 선교와 목회에서 연구하고 관심을 두고 집중해야 할 부분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와 과제를 남겼다고 본다.

선교와 성령 하나님
그러나 이 시점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선교는 우리 모두에게 위임된 명령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명령은 반드시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세분화된 직업과 전문성이 있는 일터 속에서 선교하는 직능별(職能別) 선교가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명제 앞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74 로잔대회 이후와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전도는 사람이, 그러나 지도자는 하나님이 만드신다! 알버트 맥킨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과 교제하는 것을 즐겼다. 한 번은 16살 난 불신 고교생을 위해 기도하고, 그에게 많은 관심을 썼다. 그런데 큰 전도집회가 열리게 되었고, 마침내 이 16살 난 학생이 결신하여 강단 앞으로 나갔다. 지금 알버트 맥킨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 소년을 모르는 자는 거의 없다. 그 소년은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었다. 만약 알버트가 없었다면, 빌리 그레이엄도 없었을 것이다.

2024 서울로잔대회가 쏟아낸 많은 주제와 과제는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교회와 기독교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들이다. 선교는 언제나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라도 그는 완벽할 수 없다. 종종 방향 감각을 상실한 사람을 지칭할 때에 우리는 으레 요나를 생각한다. 어쩌면 요나는 남의 실수를 미리 예방해 주는 타산지석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바울도 방향 감각을 잠시 잃었던 사람이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최선과 차선의 차이는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
성령은 이미 바울에게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셨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6절). 그러나 바울은 계속해서 자기의 방향을 고집한다.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6-7절).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방향은 분명히 ‘서쪽’인데, 바울은 계속 ‘북서쪽’을 고집했다.


바울의 생각도 틀린 것이 아니다. 이미 씨는 뿌려진 것, 이제 남은 것은 성실하게 거둘 일뿐이요, 조금만 더 수고하면 완전한 데까지 이를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바울에게 아시아는 최선이었지만, 하나님께는 차선이었다. 하나님의 최선은 마게도냐였다. 항상 그렇듯이 주님의 것과 내 것이 부딪히게 되면, 거의 내 것이 이기게 된다. 그러나 이기는 것 같아 보이나 곧 그 결과가 눈에 띄게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 신앙의 법칙이다. 7절,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에게 영적인 밤이 찾아온다.

드로아의 환상은 선교의 필수적 요소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8-9절)


이렇듯 영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바울은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본다. 버려진 영혼을 보는 환상이요, 아직 비어 있는 곳을 보는 환상이며,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처녀지에 가는 선교사적 안목을 가지게 하는 환상이요, 일할 사역지를 보게 하는 환상이다. 선교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환상이다.

기성 세대가 해내지 못한 일, 생각지도 못한 일이나 장소, 그리고 버려져 있던 일이나 나라를 환상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사역할 곳이 있는가? 이것을 찾아낼 줄 아는 자가 선교의 환상을 소유한 자이다. 물론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중심적 환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하시는 은혜 안에서 보는 환상이어야 한다.

환상을 실천하는 결단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0절)
바울은 위대한 종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곧 떠나기로’ 힘썼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한 결단이다. 나중에 바울이 이 때의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더라”(고후 7:5)


육체는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이요, 밖으로는 다툼이라는 말씀은 원래 각오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다는 고백은 참으로 눈물겹기까지 하다. 두려움이 있으나 ‘곧 떠나면서 주께 맡기는’ 믿음! 이런 담대함으로 모든 것을 감당함이 선교하는 자들의 자세 아니겠는가?

2024 서울로잔대회가 막을 내렸지만, 이제 시작이다. 하나님은 이때를 위해 다시 한 번 빌리 그레이엄을 찾으시기도 하신다. 그 거대한 영웅만이 아니라 작은 헌신자도 찾으시고 쓰실 것이다. 그 많은 주제를 성경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감이 선교하는 자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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