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나만의 세상에서 탈출하라

작가 장석주의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에 의하면, 저자는 책 읽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독서를 해서 자신의 세상이 우주처럼 넓어졌다고 강조한다. 우리도 장석주 작가처럼 이 세상을 좁은 세상이 아닌 넓은 우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평생을 책과 벗하며 살아왔으니, 내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우주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다정함이나 너그러움, 취향의 깨끗함, 투명한 미적 감수성, 그리고 올곧은 일에 늠름할 수 있는 용기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건 다 책에서 얻은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겉은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잘 살펴보면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생각이라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에 담긴 지식이나 사상이 자신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와 생각이 확장되고, 자아가 확장되는 과정입니다.”

책 읽기는 자신의 우주를 확장해 나가는 행위
“나는 책 읽기가 ‘지적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읽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노동이라는 점에서 거기에는 인내와 수고가 따릅니다. 인내와 수고 둘 중 하나라도 회피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책 읽기입니다. 더 나아가 숙련된 책 읽기에는 학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책은 우리의 잃어버린 본성을 일깨우고, 어둠 속에 묻힌 것들에 인지의 빛을 비춥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로 하여금 무지에서 앎으로 걸음을 떼도록 인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안을 돌아보게도 하지요. 그런 까닭에 책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반성적이며 자기 성찰적인 매개물입니다.”

“무엇보다 책 읽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읽은 것들이 나의 우주를 만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기의 우주 바깥으로 나가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자기가 만든 우주 안에서만 숨 쉬고 생각하며 살 수 있어요.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우주의 경계를 더 넓게 밀어 가며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우주가 넓어지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지니 자유로워지는 것이고요. 그래서 나는 책 읽기를 자기만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책을 아주 안 읽거나 읽더라도 조금만 읽은 사람의 우주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독방같이 협소한 공간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그 사람은 어쩌면 자기의 우주가 그런 좁고 누추한 곳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책을 본다는 것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
“나는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해 인생의 저 밑바닥까지 가보았던 셈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좀 더 다양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장강명의『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 김민섭 작가의 <대리사회>,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장신모 작가의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를 감명 깊게 읽었다. 각각 대리기사, 버스기사, 경찰관으로 일한 저자가 자기 일에 대해, 그 보람과 고통에 대해 진솔하게 쓴 에세이다. 나는 이 책들을 읽고서야 대리기사들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지, 버스기사들이 왜 그렇게 퉁명스러운지, 일선 경찰관들이 얼마나 수시로 갖은 모욕을 당하는지 알게 됐다.”


“책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장소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식물과 풍경, 그리고 낯선 미지의 시간이 있어요.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지적 모험을 시작합니다.”


“책은 나 아닌 타자들의 사색과 체험이 가득 차 있는 세계요, 무궁무진한 우주입니다. 따라서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세계, 그 우주로 초대받은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책은 우리의 불안과 분노는 가라앉혀 주고, 침체된 기분은 화사하게 만들며, 삶에 대한 의욕을 북돋을 뿐만 아니라 지적 통찰력을 갖게 합니다. 아울러 학습 기억의 총량을 늘려 ‘살아가는 일’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월드 와이드 비전으로 시야를 넓혀라
저자 장석주는 독서를 통해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월드 와이드의 비전으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온 세상을 품고 살아야 한다. 나만의 좁고 안일한 동굴에서 나와 드넓은 세상으로 도전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8-29).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목격한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도 걷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나와 물 위를 걸었다. 하지만 곧 물에 빠졌다. 이 일을 두고 누군가는 베드로가 믿음이 없어 물에 빠졌다고 폄하할 수 있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배 안에 있던 제자들 중에 베드로 이외에 어느 누구도 물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다. 다른 제자들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도전하면서 그 우물 안에서 드넓은 바다로 향할 수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주님은 원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모든 민족은 불신자들도 있지만, 타 종교인들도 포함된다. 이 지상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는 교회 밖으로 나와야 한다. ‘우리끼리 좋사오니’ 하는 ‘우리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비드 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교회가 어려워졌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교회가 세상에 더 도전해야 한다. 어렵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좋은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안일함과 평안함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자. 신앙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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