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 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서 2:1~7)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이자 절정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3절)
기독교의 본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본질이며, 핵심이며, 근간이며,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삶과 신앙의 여정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시각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 맞춰져야 하며, 또한 성경의 모든 말씀들도 예수님이란 렌즈를 통해서만 보고 해석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이자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어떤 이들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교훈과 상반된 모습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런 자신들의 생각들을 설파합니다.
기독교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교라는 말이란 사실을 다들 알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단순히 어떤 신적인 존재를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동일한 구약 성경을 믿음에도 우리가 같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유대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의 말씀은 당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던 이단적인 가르침들을 경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만연했던 영지주의라는 주장들도 있지만 이는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절기와 안식일 등을 이유로 교회를 비판하거나(2:16), 위선적인 겸손의 문제와 천사 숭배를 이유로 그들을 정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2:18). 이러한 것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골로새서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점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관없는 교훈들, 오히려 예수님의 복음을 부정하게 되는 이단적 사상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당시 교인들에게 매우 혼란스럽고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너무나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사도 바울의 해결 방안과 지침은 오히려 매우 단순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자성어 중에 현정파사 혹은 위정척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것을 세우면 사악한 것이 파하여진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이는 성경의 말씀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은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의 거짓 교훈의 문제는 바른 것을 세우지 못했기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에 골로새서 1장에는 도입 초반부터 매우 장황하면서도 아름답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서술한 이후 “오직 그 믿음 위에 굳게 설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1:23b).
여기서 ‘그리하리라’는 말씀은 22절에 명시된 대로 그들이 계속해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예수님 앞에 서 나갈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에는 세 가지 시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으며, 그리고 현재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성취해 가는 것이며, 또한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완전히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교회 중직자 중에도 믿음이 없는 경우가 수두룩해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기독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신앙 행위가 실은 오늘 날 많은 교인들에게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교인들이 정말 예수님을 믿을까요? 정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교회를 다니고 있을까요? 좀 비관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믿음의 정도 차이나 성숙의 단계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떠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는 경우도 생각보다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직분자 중에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심지어는 장로나 목사 같은 중직자 중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런 행동들이 나올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주일성수를 얼마나 빠짐없이 잘하는 가와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이 집사인지 장로인지 권사인지 목사인지와는 더더욱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적 행위로 자신의 행위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오로지 하나님과 우리 자신만 아는 영역입니다. 아니 솔직히 우리 자신도 우리의 믿음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이 있는 척, 자신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척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정말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실을 믿으십니까?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정말 믿으십니까? 진실로 믿으십니까?
여러분 자신을 정말 정직하게 깊이 있게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정말 그리스도를 향한 굳은 믿음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안에 믿음이 없음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골로새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의 믿음을 굳건히 세우십시오.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 가운데 그릇된 것들은 자연스럽게 물러갈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