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원에서 열린 그림 전시회
작년 11월 22일 수요일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경기도 용인 동백에 있는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 2층에 한두 사람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담한 크기의 2층 홀에는 벽면을 따라 대략 이 십여 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여드는 사람들은 모두가 오늘 청호(凊湖: 내 친구의 아호)의 그림 전시회에 초대받은 사람들이었다. 청호의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 부부로 줄잡아 삼십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나도 아내와 같이 그들 중에 끼어 전시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청호는 내 절친 중의 하나였다. 가난한 조국에 태어난 우리 세대의 거의가 그랬듯 청호도 땀으로 얼룩진 치열한 삶을 살았다. 사업 때문에 주로 외국에서 살았던 그가 월남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때가 약 팔 년쯤 전이었다. 오랜 이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서울 근교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부인과 같이 새로운 노년의 삶을 시작했다.
“내 평생 이렇게 한가롭게 살아보기는 처음이네. 당분간은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네. 왜 진작 이렇게 살지 못했나 후회될 정도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우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 대접을 하며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엔 행복한 모습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의 손길은 그에게 가혹하였다. 가끔씩 가슴이 답답해서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했더니 상상치도 못했던 검사 결과가 나왔다. 폐암이 이미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다고 했다. 전이가 심해서 수술은 불가했고 항암치료만 가능하다고 했다. 부인과 두 딸의 절망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당사자인 청호는 오히려 담담했다.
아내와 두 딸을 위로하며 “목숨은 하느님께 달려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으니 하느님께 기도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기적처럼 왔다 간 기적
그리고 그는 그의 말을 실천했다. 의사의 말대로 항암치료를 받고 열심히 운동을 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항암치료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는 굳은 의지로 버텨내며 고통을 잊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방사선 치료를 포함한 항암 치료의 고통을 그는 꿋꿋하게 견뎌내며 무려 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병과 싸웠다.
이러한 그의 굳건한 투병 자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병상에서도 결코 쉬지 않은 기도와 아내의 정성 어린 간호 덕분이었는지 발병 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그의 치료를 맡았던 담당 의사는 오직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병에서 완치된 청호는 자기의 남은 삶은 하느님이 주신 보너스이기에 보람 있고 좋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며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며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발병과 더불어 시작했던 그림 그리기도 계속했다.
그림에 숨은 소질이 있었는지 그가 그린 그림들은 점차 아마추어의 경지를 넘어갔다. 그렇게 행복한 세월이 약 삼 년 정도 지나갔다. 하지만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의 잔재가 언젠가부터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어느새 그의 폐를 잠식해 버렸다.
다시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효력이 없었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갔다. 담당 의사가 더 이상은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절망적인 말을 했을 때 청호도 또 부인과 딸들도 차분히 마지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던 그가 호스피스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가까운 친구들이 그를 방문했을 때 그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우리에게 그는 “내 걱정하지 말게. 진통제 덕분에 고통도 없고 또 내 마음은 평안하네. 이때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만 가득하네. 얼마 안 남았겠지만 이런 마음으로 지내다가 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네,” 라고 말했다.
병문안을 마치고 나오는 우리들이 오히려 마음 가득히 부끄러운 느낌을 갖고 우리 삶을 되돌아볼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그림 전시회를 한다고 우리들을 초대했다. 호스피스에서 그를 돌보던 간호사가 그의 스마트 폰에 저장되어 있는 그림들이 청호의 작품인 것을 알고 전시회를 열 것을 권유했다고 했다.
청호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간호사의 강력한 권유에 수락했다고 했다. 전시회를 통해서 평생에 가깝게 지내던 모든 분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전시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고 나중에 그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 그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게 된 것이었다. 평소에 그의 그림 솜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우리 친구들이지만 오늘 전시회에 나온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병마와 싸우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는지 오직 경탄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그림 전시회에서 정말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탄하도록 만든 것은 청호의 인사말이었다.
사전 장례식이 된 그림 전시회
시간이 되자 아내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전시장으로 나오는 청호의 모습은 암에 시달리는 환자의 모습 같지 않았다. 밝은 표정 맑은 눈동자의 그의 모습은 육신은 병에 시달리고 있어도 정신은 오히려 병을 압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의연한 자세였다. 전시회 시작을 위한 테이프를 끊은 뒤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가 한 말 중 가장 중요한 한 부분만 여기 옮긴다.
“오늘 저의 작은 전시회에 오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그림 실력은 결코 전시회를 열 수준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시회를 연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몸이 아파 누워있으면서 저는 장례식에 관한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장례식에는 의미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고맙게 생각하는 가장 가까운 분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장례식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병원에서 제 그림 전시회를 마련해 주시겠다는 고마운 제의에 저는 ‘아, 그렇다면 이 기회에 가까운 분들을 모시고 전시회를 열어 나의 사전 장례식으로 갈음을 하자’하고 마음먹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모두 생전에 저를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분들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어찌 들으면 무례할 수도 있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 전시회로 저의 장례식을 갈음합니다. 이 전시회가 저의 사전 장례식이고 제 사후에 장례식은 따로 없습니다. 오늘 저의 사전 장례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말하다가 입이 말라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부인이 분무기로 입을 축여주어 어렵게 여기까지 말을 마쳤을 때 장내엔 잠깐 비장한 침묵이 흐르다가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박수가 모두로부터 터져 나왔다. 잠시 후 한두 사람씩 그와 가족들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했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뜻깊은 그림 전시회는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내 장례식은 책 전시회로 갈음하고 싶소
전시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청호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장례식에 관한 그의 말은 너무도 옳은 말이었다. 우리의 장례식은 허례허식과 의미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망자(亡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누워있는데 장례식을 치르느라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바쁘기만 하고 조객들의 상당수는 인사치레로 왔다 간다.
누구나 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격식에 따른다. 이런 폐단을 알고 있기에 청호는 전시회를 빌어 용기 있게 선언했다.
“이 전시회로 저의 장례식을 갈음합니다. 이 전시회가 저의 사전 장례식이고 제 사후에 장례식은 따로 없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청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 마저도 아름답게 끝내고 간다는 생각이 들며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장자(莊子)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장자에게 죽음이 임했을 때 후한 장례식을 준비하려는 제자들에게 장자는 “나는 천지를 관곽(棺槨)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삼고 만물을 예물로 간주하기에 이미 모든 것이 갖추어졌거늘 내 장례식에 무엇을 덧붙이려 하느냐!”라고 말했다고 했다.
장자의 장례식도 뜻깊지만 그림 전시회로 스스로의 장례식을 갈음한 청호의 뜻깊은 결단은 우리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본받을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옆에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도 청호를 본받고 싶소. 내가 앞으로 몇 권이나 더 책을 낼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낸 책들로 전시회를 열어서 내 장례식을 갈음하고 싶소. 우리 애들에게도 이 말을 해줘야 하겠소.”
내 말을 들은 아내는 처음엔 무슨 벌써 장례식 이야기냐는 아연한 표정이었으나 조금 뒤 나를 쳐다보며 “알았어요. 하지만 전시회 할 만큼 책을 내려면 오래 사셔야 되겠어요,”하고 답했다.
추신: 청호는 지난 1월 18일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유족과 우리 친구들은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 없이 그의 유해를 동작동 현충원에 안치했습니다. 젊은 날 월남전에 참전해 조국을 위해 싸웠던 그는 국가 유공자였기에 보훈처에서 현충원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